미국 의회의 지한파이며, 유대인 대학살, 홀로코스트에서 살아 남았던 톰 랜토스 하원 의원이 지난 11일 향년 80세로 별세했습니다.

민주당소속의  캘리포니아 주 출신   랜토스 의원은 지난 해 1월부터 하원 외교위원장직을 맡았습니다.

랜토스 의원은 지난 27년에 걸친  의회 의정 활동 중 중국과 러시아, 버마, 다르푸르와 같은 분쟁지역에 대한  강력한 인권 옹호자 였습니다.

그는 지난 해 4월 미 의회에서 처음으로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군의 종군 위안부 동원을        비난하는 결의안 통과에   앞장섰고, 북한의 핵과 인권 등 북한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는 인권기록이  열악한 나라들은 절대로  유엔 인권 위원회 회원국이 되어서는 않된다고 끝까지 주장했습니다.

랜토스 의원은 무엇보다도  직설적인 언변가였습니다. 지난 2007년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중국의 한 기자가 당국에 검거된 사건에서   야후사의  역할을  두둔했던  인터넷 검색회사, 야후사의 회장을 가리켜, 랜토스 의원은“당신은  첨단 기술과 금융면에서는 거인일지 몰라도 도덕적으로는 왜소한 피그미족”이라고  질타했습니다.

1983년에 의회인권 위원회를창설했던  랜토스 의원은 제 2차 세계대전중 나치 독일의 600만명  유대인 학살과 관련된 또 다른 홀로코스트의 재발을  막기 위해 가능한 모든곳에서  정부의 압력을 이용하도록 하는데 전념했습니다. 

랜토스 의원은 자신을 가리켜 “스스로 원했기에  미국인이 되기를 선택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1928년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으며, 1944년 나치 독일군이 헝가리를 점령했을 때 그의 나이 열여섯살이었습니다. 유럽의 다른지역과 마찬가지로 헝가리의 유대인들도 체포되어 나치의 강제수용소로 보내졌습니다. 랜토스는 강제수용소에서 탈출해 생명을 건졌습니다. 그는 나중에 제2차 세계 대전중 수많은 유대인들의 생명을 구해준 스웨덴 외교관인 라울 발렌버그 씨가 운영하는 안가로 피난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랜토스는 그의 가족 대부분이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가스실에서 사망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톰 랜토스는 1947년에 경제학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에 유학왔으며,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랜토스는  사망 직전에 발표한 성명에서 “무일푼의 홀로코스트 생존자이며 반나치지하운동의 전사였던 자신에게 교육을 받게 해주고, 가족을 부양하며, 지난 30여년간 하원의원으로 봉사할 수 있는 특권을 준 나라는 미국 뿐이었다”고 술회했습니다.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은, 랜토스 의원 유족에게 조의를 표했습니다. “톰 랜토스 의원은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미국의회 하원의원으로서 사악한 무리들에 의한 무고한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우리모두에게 일깨워주는 산 증인”이라고 부시 대통령은   치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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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 Congressman and Holocaust survivor Tom Lantos recently died at the age of eighty. Mr. Lantos, a Democrat from California, served as chairman of the House Foreign Affairs Committee.

During his some twenty-seven years in Congress, Mr. Lantos was a staunch defender of human rights in such places as China, Russia, Burma, and Darfur. He insistently argued that nations with bad human rights records had no place on the United Nations Human Rights Commission. And he was nothing if not outspoken. When executives of Yahoo Inc., appeared before the House Foreign Affairs Committee in 2007 to defend their role in the jailing of a journalist by the Chinese government, Mr. Lantos told them, "While technologically and financially you are giants, morally you are Pygmies."

As founder of the Congressional Human Rights Caucus in 1983, Mr. Lantos was intent on using government pressure wherever possible, as he put it, to "prevent another Holocaust," referring to the murder of six-million European Jews by Nazi Germany during the Second World War.

Mr. Lantos often referred to himself as "an American by choice." He was born to Jewish parents in Budapest, Hungary, and was sixteen when a German Nazi army occupied Hungary in 1944. Jews in Hungary, like those elsewhere in Europe, were rounded up and sent to concentration camps by the Nazis. Mr. Lantos survived by escaping from a labor camp. He eventually took refuge in a safe house maintained by Raoul Wallenberg, the Swedish diplomat who saved the lives of thousands of Jews during the Second World War. After the war, Mr. Lantos learned that most of his family had died in the gas chambers at Auschwitz.

Tom Lantos came to the U.S. in 1947 to study economics and earned a doctorate from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 In a statement shortly before his death, Mr. Lantos said, "It is only in the United States that a penniless survivor of the Holocaust and fighter in the anti-Nazi underground could have received an education, raised a family, and had the privilege of serving the last three decades of his life as a member of Congress."

President George W. Bush expressed his condolences to the family of Mr. Lantos. "As the only Holocaust survivor to serve in Congress," said Mr. Bush, "Tom [Lantos] was a living reminder that we must never turn a bind eye to the suffering of the innocent at the hands of evil 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