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자살폭탄 테러로 사망한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는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에서 여성으로는 사상 최초로 총리에 선출된 뒤 두 차례나 총리를 지낸 파키스탄의 대표적인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부토 전 총리는 두 차례나 해외로 망명하고 아버지와 두 동생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 등 개인적으로는 순탄치 않은 일생을 보냈습니다. 이연철 기자가 54살을 일기로 암살된 부토 전 총리의 생애를 정리했습니다.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는 1953년 6월 파키스탄의 신드 지방에서 부유한 정치 명문가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파키스탄 대통령과 총리를 지낸 줄피카르 알리 부토 씨가 아버지입니다.

미국 하버드대학과 영국 옥스포드대학에서 공부한 부토 전 총리는 총리로 재직 중이던 아버지가 1977년 군사쿠데타로 축출되고, 그로부터 2년 후 정적 살해를 주도한 혐의로 처형된 후 파키스탄으로 돌아왔습니다. 이후 부친이 창당한 파키스탄인민당을 물려받아 반정부 활동을 벌이다 몇 차례 옥고를 치룬 후 1984년에 영국으로 망명했습니다.

부토 전 총리는 1986년에 계엄령이 해제되자 다시 귀국해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습니다. 1988년, 군사쿠데타의 주역인 지하 울 하크 대통령이 의문의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자,  당시 35살이던 부토는 파키스탄인민당을 이끌고 선거에서 승리해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에서 사상 처음으로 여성 총리가 됐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끄는 정부는 부정부패 의혹과 강력한 군부와의 충돌로 20개월 만에 붕괴됐습니다.

부토 전 총리는 1993년 실시된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다시 집권에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남편인 아시프 자르다리가 연루된 부패 의혹에 시달렸습니다.

부토 전 총리는 1996년에 실시된 총선에서 정적인 나와즈 샤리프에게 패했고, 법원은 부토 전 총리의 부패 혐의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리고 모든 정치활동을 금지했습니다. 부토 전 총리는 1999년 두 번째 망명길에 올랐습니다.

부토 전 총리는 두 번째 망명기간 대부분을 영국 런던과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에서 보내면서, 전세계 정부 당국자들을 만나는 등 파키스탄 민주화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후 8년 간의 망명생활 끝에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으로부터 모든 부패 혐의에 대해 사면을 받은 부토 전 총리는 지난 10월 8일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부토 전 총리는 귀국으로 한껏 고무된 감정을 표시하면서 조국에 다시 돌아올 날을 오랫동안 손꼽아 기다렸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귀국 축하행사 중 자살폭탄 공격이 발생해 1백30여 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부토 전 총리는 지난 몇 달 동안 무샤라프 대통령과 권력 분점 협상을 벌였습니다. 미국도 그같은 방안을 강력하게 지지했지만 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졌습니다.

부토 전 총리는 무샤라프 대통령의 국가비상사태 선포로 정국이 소용돌이치는 가운데 과거의 정적이었던 나와즈 샤리프 전 총리와의 연대 의사를 표시하는 등 반 무샤라프 투쟁을 밀고나갔고, 샤리프 전 총리와 총선 공동대응체제를 구축한 후 전국을 돌며 선거유세를 벌였습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신변의 위협에 관한 파키스탄 보안 당국자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대중집회를 계속 강행했습니다.

부토 전 총리는 파키스탄 국민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면서, 런던 지하철 폭탄 테러나 독일 등 다른 나라에서의 테러공격 기도가 파키스탄과 연관이 있다는 말이 있지만, 그것은 파키스탄의 진짜 이미지가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부토 전 총리는 귀국할 경우 개인적으로 직면하게 될 위험에 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부토 전 총리는 귀국 전 집필한 자서전에서 파키스탄의 모든 어린이들을 위해 그같은 위험을 감수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부토 전 총리는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아버지와 두 동생이 묻혀 있는 고향 신드 지방에 안장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