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3년 제1차 북 핵 위기 당시 미국 측 수석대표로 북한과의 협상에 나섰던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학 외교대학장은 경수로는 북한의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갈루치 학장은 경수로 보다는 석탄연료나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북한에 짓는 편이 훨씬 효율적인 에너지 공급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조은정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지난 1994년 북한의 핵 시설 동결에 대해 중유와 경수로 제공을 맞교환키로 한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 냈던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차관보는 경수로가 에너지 효율 면에서 북한에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행정부를 물러난 뒤 지금은 워싱턴 소재 조지타운대 외교대학장으로 재직 중인 갈루치 전 차관보는 15일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 연설에서, 경수로는 건설기간이 길고, 북한의 노후화된 송배전망이 1천 메가와트 규모의 전력을 감당할 수 없을 뿐더러 북한의 전력 수요 자체가 그에 훨씬 못 미친다며 이같이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경수로와 같은 원자력발전소의 건설기간은 최대 12년이 걸린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KEDO는 제네바 합의에 따라 1997년부터 함경남도 신포에서 1천 메가와트 급 경수로 2기를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제2차 북 핵 위기가 발발하면서 2003년에 공사가 중단되기까지 15억 6천만 달러 정도가 들어갔지만 공정률은 34.5%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북 핵 6자회담에서 핵 폐기에 따른 상응조치로 경수로 제공을 꾸준히 요구하고 있으며, 이는 2005년의 9.19 합의에도 명시돼 있습니다.

갈루치 학장은 자신은 '90년대에 미국 정부 대표로 북한과 협상 당시 경수로가 에너지 효율 면에서 북한에 전혀 맞지 않는 해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북한 측 협상대표였던 강석주 외무성 부상은 북한이 갖고 있던 흑연감속로를 이용한 원자로가 구형이라는 것을 알고 최첨단 핵 원자로인 경수로를 원했으며, 미국은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북한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었다고 갈루치 학장은 설명했습니다.

갈루치 학장은 북한 정권은 에너지를 공급받는 방법을 택할 때 경제적 이익의 극대화 보다는 그같은 선택을 통해 형성될 중국, 한국, 미국 등과의 정치적 관계를 더욱 고려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갈루치 학장은 경수로 보다는 수력이나 조력,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소나 석탄연료 발전소 등을 북한에 짓는 편이 훨씬 값싸고 효율적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남는 재원으로는 북한의 전력망을 개선하고 에너지 관련 인적자원에 투자해 효과를 증대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경수로 제공 문제는 그동안 북한 핵 협상에서 여러 차례 걸림돌로 작용해 왔습니다. 2005년 9.19 공동성명에 포함된 ‘적절한 시점에 경수로 제공을 논의한다’라는 애매한 문구를 둘러싸고 그 시점이 언제인지에 대해 북한과 미국이 다른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비핵화 완료 후 핵확산금지조약 NPT 복귀 이후로 시점을 잡는 반면, 북한은 비핵화와 경수로 제공이 동시 진행돼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경수로 문제는 지난 10월 비핵화 2단계 합의가 도출될 당시에는 북한 측이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아 핵 협상에 큰 변수로 작용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핵폐기 단계로 이행하는 과정에서는 주요 걸림돌로 떠오를 것이라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