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수도 워싱턴 DC 에는 다른 나라의 수도처럼 역사를 기념하는 추모탑과 기념 건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달 13일은 그 기념물들 가운데 검은 화강암 벽으로 이뤄진 베트남 참전비가 건립된지 25주년을 맞는 날입니다.  건립 추진 당시 한 때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던 이 베트남 참전비는 이제 많은 미국인들을 치유하는 강력한 상징물이 됐습니다. 베트남 참전비 건립 25주년을 맞아 그 의미를 되짚어봤습니다.

지난 25년 동안  네번째로 베트남 전쟁에서 숨진 미군 5만 8천명 이상의 이름이  크게 호명되고 있습니다. 베트남 참전비 설립 25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들이 끝난 오랜 뒤에도  참전비 돌벽에는 여전히 참전용사들의 이름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검은 화강암으로 건립된 참전비 벽에는 전사한 참전 용사들의 이름, 그리고 베트남 전쟁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1959년과 1975년 표시외에는 아무런  표기도 없습니다. 

베트남 참전용사인 렌 푼크씨는 검은 대리석에 새겨진 5만 8천명의 이름을 볼때면 늘  마음이 뭉클해 진다고  말합니다. 푼크씨는 그러면서 베트남 참전비가 처음 건립된 25년전을 회상합니다.

푼크씨는 베트남 전쟁은 되돌이켜 보기에 어려운 전쟁이었다며 참전용사들은 철수 후 진정으로 환영받지 못했고 많은 참전용사들이 국내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베트남 참전비 건립은 그런 참전 용사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아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고 덧붙였습니다.

베트남 참전비 기금 창립자이자 회장인 장 스크루그씨 역시 베트남 참전 용사입니다.

스크루그 회장은 베트남 전쟁은 미국에서 인기있는 전쟁이 아니었다며, 이 전쟁은 미국 역사에서 매우 분열된 시기에 발발했고 워싱턴과 다른 도시에서는 대규모 반전 시위가  그칠줄 몰랐다고 회상합니다. 스크루스 회장은 그러나, 베트남 참전용사들의 희생에 대해 미국인들이 제대로 인지해야 한다고 느꼈고 그런 이유 때문에 참전비 건립을 생각하게 됐다고 말합니다.

에네마리 엠메트씨는 20년동안 베트남 참전비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했습니다.

엠메트씨는 자원봉사를 시작한지  20년이 지났지만 아직 이 곳을  처음 방문하는 새로운 베트남 참전용사들을 만난다고 말합니다.

미국 북부 미시건주 하웰시에서 온 마이크 버노우스키씨 역시 그중 한 사람입니다.

버노우스키씨는 베트남 참전비를 통해  연대감을 느끼게 됐다는 많은 동료들의 얘기를 접할 수 있었다며 참전비를 바라보는 자신 역시 그런 느낌이라고  말합니다.

많은 미국인들이 매년 베트남 참전비를 방문합니다. 그 가운데는 참전용사의 사랑하는 가족도 있지만 참전비 자체를 보려고 오는 사람도 많습니다.  엘비스 카르덴씨는 남부 조지아주 애틀란타에서 왔습니다.

카르덴씨는 이 기념비는 참전용사들의 마음속에 각기 다른 모습으로 다가가고 있다며, 모든 참전용사들에게 이 참전비는 아마도  최선의 경험과 함께 가장 큰 치유를 선물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합니다. 카르덴씨는 그런 이유 때문에 이 참전비가 자신들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입니다.

오늘날 베트남 참전비를 찾는 많은 방문객들은 베트남 전쟁을 떠올리기에는 너무 어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현재 미국이 벌이고 있는 이라크 전쟁은 전쟁에 대한 젊은이들의 관심을 높였습니다. 이에 자극받은 젊은이들중 일부는 새로운 노래를 만들기도 합니다.

한 세대 이상의 기간을 넘긴 이 베트남 참전비는, 그러나 놀랍게도 애초에는 큰 호감을 받지 못했습니다.

베트남 참전비건립기금의 스크루그 회장은  미국 의회에서 참전비 건립을 실질적으로 모두 막으려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들과 타협이 불가피했다고 말합니다.

그 타협안은 화감암 벽으로 된 기념비를 아래로 내려다 보도록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참전비는 매년 4백만명 이상의 방문객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스크루그 회장은 이런 행렬은 마지막 베트남 참전용사가 숨진 후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스크루그 회장은 이 베트남 참전비가 위대한 건축물이기 때문에 방문행렬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