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대표적인 남북 대화 전문가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전금진 전 통일전선부 부부장이 지난 9월 지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원기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지난 1970년대부터 30년 간 북한 측 대표로 남북 대화에 참가해 온 전금진 전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 부부장이 사망했다고 북한 사정에 밝은 소식통이 밝혔습니다.

이달 초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 다녀온 이 소식통은 11일 `미국의 소리' 방송에 "북한 당국자로부터 전금진이 지난 9월 중순에 사망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전금진 전 통전부 부부장은 지난 2000년부터 남북대화에서 모습을 감췄습니다. 올해 75세로 알려진 전 전 부부장은 지난 몇 년 간 지병을 앓아온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동안 전금철이라는 가명을 사용해온 전금진 전 통전부 부부장은 '70년대 초부터 남북대화에 참여해왔습니다. 지난 1972년 남북조절위원회 북측 대변인을 맡은 전금진은 '80년대 남북 국회회담에 회담 대표로 참여했습니다. 또  1995년에는 남한 측의 이석채 당시 재정경제원 차관과 협상을 벌여 쌀 15만t을 얻어가는 수완을 발휘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3년 뒤인 1998년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남북 비료회담에서는 남측으로부터 아무런 선물을 받아내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습니다. 당시 그는 평양으로 떠나면서 “자주권과 비료를 바꿀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취재기자로 베이징 비료회담을 현장에서 지켜봤던 워싱턴 소재 우드로 윌슨센터의 이영종 연구원은 전금진 씨가 서울 사정을 소상히 파악하고 있어 남측으로서는 상대하기 버거웠던 북측 대표였다고 회고했습니다.

지난 2000년 4차례 열렸던 남북 장관급 회담에 북측 수석대표로 참가했던 전금진은 그 해 9월 열린 5차 남북 장관급 회담부터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 뒤를 이어 김영성 북한 내각 참사가 대표를 맡았습니다. 이와 관련해 서울의 일부 보수 언론들은 전금진이 숙청을 당했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드로 윌슨 센터의 이영종 연구원은 전금진이 북한 내부의 세대교체 흐름과 본인의 지병 등으로   2선으로 물러났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합니다.

북한의 남북대화 1세대인 전금진 씨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실리를 중시하는 김정일 위원장의 대남 정책 기조는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