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기아 문제에 대해 연구해 온 미국의 앤드류 나치오스 전 국제개발처 처장은 20일, 북한은 사회체제와 군사력 유지를 위해 2차 기아사태를 최대한 막으려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현재는 부시 대통령의 수단 특사로 활동하고 있는 나치오스 전 처장은 또 북한은1990년대 대량 기아사태를 겪으며 일종의 '내부 진화'를 겪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서지현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부시 대통령의 수단 특사로, 미국 국제개발처 USAID의 처장을 역임한 앤드류 나치오스 씨는 20일 수해 등 자연재해 위기상황에 대한 북한 당국의 시각이 내부적으로 진화했다고 말했습니다.   

나치오스 특사는 이날 미국 워싱턴의 평화연구소와 전략국제문제연구소가 '북한의 최근 내부상황'을 주제로 개최한 토론회에서, 대량 기아사태를 겪게 되면 어느 나라나 문화와 사회질서, 역사의 대변혁을 겪는다고 말했습니다.    

나치오스 특사는 지난 1989년부터 1993년까지 미국 정부의 대외 원조를 관장하는 국제개발처, USAID의 해외재난 구호국장과 식량-인도주의 지원 담당 부처장을 지낸 기아 문제 전문가입니다. 그는 이후 국제 구호단체인 월드비전의 부총재를 거쳐 다시 USAID 처장을 역임하며 북한의 기아사태를 현장에서 직접 조사하는 등 북한사회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왔습니다.

나치오스 특사는 이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2001년 '북한의 대량 기아'(The Great North Korean Famine)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하기도 했습니다.

나치오스 특사는 북한의 시각이 변화한 증거로 지난해 수해 이후 북한 당국의 달라진 대응을 예로 들었습니다.

자신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1990년대 대량 기아사태 때의 생존자들은 대부분 비공식적인 농산물 시장을 통해 식량을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인데, 지난해 수해 때 북한 당국이 나서 이 농산물 시장을 통해 식량가격을 안정시켰다는 것입니다.

나치오스 특사는 당시 북한 정부는 국고로 비축해 뒀던 식량을 시장에 내놓아 급등했던 식량가격을 안정적으로 낮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나치오스 특사는 5년 전만 해도 북한 당국이 재난사태에 이렇게 대응하지 않았다며, 이는 북한을 둘러싼 세계가 변모하고 있고, 일종의 시장경제 체제가 북한 내부에서 비공식적으로 자라나는 등 여러 요인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나치오스 특사는 북한 중앙정부는 1990년대 대량 기아사태를 겪으며 다른 체제의 나라와 마찬가지로 국가가 직접 개입함으로써 식량위기 상황을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 배운 것 같다고 분석했습니다.

나치오스 특사는 그러나 이같은 북한의 '진화'가 시장경제나 민주주의 체제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며, 북한은 여전히 전제적인 국가이며 사회적 제재가 많은 국가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나치오스 특사는 이어 북한이 식량과 안보 문제에 대해 왜 이렇게 공격적인 성향을 나타내는지에 관해 잠재적인 동기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북한은 '2차 대량 기아'에 대한 공포심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북한 정부는 2차 기아사태가 불러올 군사적 동요와 사회체제 변화를 두려워 한다는 것입니다.    

나치오스 특사는 지난 1996년 함흥시에서 발생한 군부 쿠데타와 이후 북한 정부가 수백명의 병사를 숙청한 사건을 예로 들면서, 기아 사태와 군사력 유지는 직접적인 상관 관계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함흥은 1993년 기아사태 이후 인구의 40%가 아사한 것으로 알려진 지역으로, 쿠데타 발생 전 날에도 아사자들의 시체를 실어날으는 트럭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나치오스 특사는 또 사회체제를 유지하려는 북한 당국의 의지와 관련해 1990년대 대량 기아사태로 북한주민들은 국가체제 형성 이후 처음으로 외부세계와 맞닥뜨렸다고 설명했습니다.  

굶주림에 지쳐 중국 국경을 넘나든 2백만 명이 넘는 북한주민들은 비로소 북한 정부의 선전 선동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이웃들에게 이런 사실을 전파하면서 북한사회의 체제 기반과 국가의 가치관이 완전히 훼손됐다는 것입니다. 

나치오스 특사는 주민들의 가치관과 인식에 대한 북한 당국의 제재는 완전히 망가져 앞으로도 다시 복구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나치오스 특사는 북한에 대한 식량 등 원조와 관련해 북한 정권의 주민들에 대한 인권탄압 등을 이유로 그대로 붕괴하도록 내버려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윤리적인 측면을 간과해선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기아로 인해 어린아이와 노인, 임산부 등이 계속 죽어나가는 상황에서 북한체제가 싫다고 이들 취약계층이 그대로 죽게 방치하는 것은 안된다는 것입니다.  

나치오스 특사는 그러나 대북 지원품이 군부로 전용되는 데 대한 우려는 정당하다면서, 국제사회는 자신들의 원조가 다른 면에서 쓰일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나치오스 특사는 지원 물자의 전용을 막고, 현재 북한을 가장 현실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으로 첫째, 구조적인 북한의 식수 개선을 도와주고, 둘째, 시장경제와 농산물을 접목시키는 등 농업 분야의 원조를 제안했습니다.  

깨끗한 물의 경우, 주민들이 먹는 것이지 다른 목적으로 쓰일 수 없으며, 옥수수는 북한 내에서도 취약 계층이 주로 먹는 곡물로 향후 계층별 식사 습관 등을 연구하면 식량가격을 낮추거나 필요량을 충족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설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