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핵 폐기 의사를 거듭 밝히며 미국과의 협상에 적극 응하고 있는 배경과 관련해 여러 분석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 변화를 주 요인으로 지적하고 있지만, 최근 미국의 일부 전문가들은 대외적 요인보다는 경제 악화 등 내부 불안정에 따른 체제강화를 첫 번째 원인으로 꼽고 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미국 전문가들의 시각을 전해드립니다.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이달 초 제네바에서 열린 미-북 관계정상화 실무그룹 회의에서 북한 측이 연내 핵 시설을 불능화하고 모든 핵 프로그램을 신고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가운데 미국 내 전문가들은 북한이 한 때 자신들을 악의 축으로 부르며 압박하던 부시 행정부와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서고 있는 배경에 대해 다양한 분석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미국 랜드연구소에서 대외전략과 군사계획, 비핵산 연구 팀을 이끌고 있는 브루스 베네트 박사는 13일 ‘미국의 소리’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입장 변화는 체제안정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베네트 박사는 북한은 지난해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으로 국제사회의 다양한 제재를 받은 이후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며, 그런 상황을 타개하지 못할 경우 체제 불안정에 직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협상에 적극 나서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캘리포니아주립대학의 스티븐 해거드 교수와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마커스 놀랜드 박사도 최근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기고문에서, 북한이 핵 협상에 적극 나서는 이유는 외부의 경제지원으로 내부의 혼란을 안정화시키려는 의도라고 말했습니다.

두 전문가는 지난 1999년 이후 한국과 중국의 경제 지원 등에 힘입어 두 자리 수의 경제성장을 하던 북한이 지난해에는 국민소득이1.1 % 떨어졌다며, 그 배경에는 미국 주도의 제재가 일반 사람들이 느끼는 것보다 큰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습니다. 

북한은 지난 1990년대 전체 수출의 절반 가량을 미사일 등 무기수출, 불법적인 마약밀수, 위조지폐, 가짜담배 제조 등으로 전체 수출 규모의 50% 가량을 감당했지만 제재에 봉착한 이후 최근 몇 년 동안 그 비율이 15%로 크게 줄었다는 얘기입니다. 대신 북한은 전체 국가 수입의 40% 를 외국의 원조로 대체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두 전문가는 지적했습니다.

해거드 교수와 놀랜드 박사는 김정일 정권이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 조치 이후 경제 통제권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는 데다 이런 경제적 어려움까지 겹쳐 핵 협상에 적극 나서는 것이라며, 그러나 북한이 하나의 거대한 자산인 핵 계획을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북한 문제 전문가인 중국계 변호사 고든 장 씨는 북한의 이런 협상 전략은 경제 뿐 아니라 정권 승계 문제 등 불안정에 따른 것으로 과거의 전례를 답습하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장 변호사는 최근 미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에서 북한이 지난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후 3개월만에  미국과 제네바 핵 합의에 서명한 사실을 지적하며, 당시 김정일은 정권을 완전하게 장악하기 위해 핵 합의에 따른 경제지원을 이용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의 핵 대결’ 이란 책을 펴내기도 했던 장 변호사는 현재 북한은 경제난과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과 후계구도 등 복잡한 문제로 체제불안정에 직면해 있어 핵 협상에 적극 나서고 있다며, 그러나 외부의 경제 지원 등으로 체제가 안정되면 핵을 다시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진보센터의 핵 전문가인 조셉 시린치온 선임 연구원은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시린치온 연구원은 13일 ‘미국의 소리’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내부사정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요인을 내부상황으로 돌리기는 어렵다고 말하고, 그러나  미국의 정책변화 등 3가지 이유가 북한의 자세를 바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시린치온 연구원은 부시 대통령이 행정부내 논란을 접고 협상파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에 방코델타아시아 BDA 은행 문제가 풀리는 등 핵 폐기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며, 북한의 핵실험 후 중국이 대북 압박을 강화한 점, 그리고 군축 협상에서 전통적으로 강경입장을 보였던 과거 민주당 정부 보다 공화당 정부와 협상하는 것이 훨씬 이로울 것이라는 북한 정부의 계산이 핵 협상에서 북한의 적극적인 자세를 유도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국무부의 동아시아 정보분석 담당관인 존 메릴 박사 역시 지난 5월 강연회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확고한 국가안보 전략을 갖고 있으며 경제난 등 국가재건을 위한 보다 큰 그림을 위해 막판에 핵을 포기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메릴 박사는 경제부흥 없이 인민을 우선으로 하는 정책을 구사할 수 없고, 안정적인 외부환경이나 지원 없이 경제재건을 기대할 수 없는데다, 경제발전 없이 강력한 군대를 상상하기는 더욱 어렵다며,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강성대국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경제개혁과 다양한 외교전략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랜드연구소의 브루스 베네트 박사는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핵을 포기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베네트 박사는  13일 주미 한국대사관 홍보관(Korus House)에서 개최한 강연회에서 핵은 김정일 위원장의 권력을 지탱하는 핵심이라며, 북한이 이를 포기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베네트 박사는 북한이 현재 얼마나 많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몇 개를 지하 시설에 감춰두고 핵폐기 협상을 마무리 할 가능성도 있다며, 현 상황에서 우선순위는 북 핵 문제로 인한 동북아의 군비경쟁을 막기 위해 미국과 한국, 일본 등이 타협해 미사일 방어체제를 확실히 구축하고, 북한 체제의 연착륙을 유도하는 것이 최선의 접근법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