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노란 리본은 일반적으로 가족의 일원이 전쟁이나 형무소와 같은 특별히 어려운 환경속에서 오랫동안 지내다가 무사히 돌아오는 것을 환영하는 의미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요, 한국에서는 언젠가 납북된 아버지의 무사 귀환을 바라면서 딸 최우영 씨가 임진각 소나무에 만 여장의 노란 손수건을 달기도 했고 북한의 인권 개선을 염원하면서 노란 리본을 매단 풍선을 띄우는 행사가 펼쳐졌다는 소식을 접한 적도 있었습니다마는 여러가지 의미가 담긴 노란 리본은 나무나 문 앞에 매달기도 하구요.

심지어는 자동차 뒤 범퍼에 부착하는 스틱커에서도 노란 리본을 볼 수가 있는데요, 오늘날 이처럼 많이 사용되는 노란 리본이나 노란 손수건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었을까 혹시 생각해 보신적이 있으신지 모르겠네요.

대부분의 미국 음악 역사가들은 노란 리본을 사용하게 된 관습은 19세기 미국 독립전쟁 또는 남북 전쟁 시절 엔더슨빌 형무소에서 수감 생활을 끝내고 귀가하던 한 수감자의 얘기에서 비롯됐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또다른 일부인들은 지난 4백여년 동안 여러 형태로 불려지고 있는George Norton이 작곡한 노란 목도리를 맨 여인이라는 의미의 'Round her neck she wore a yellow ribbbon' 에서 노란 리본의 전통을 찾기도 하구요.

1949년에는 이와 유사한 'She wore a yellow ribbon' 이라는 존 웨인 주연의 영화가 나오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1973년에 토니 올랜도와 돈이 처음로 발표한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 '오래된 참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주세요' 라는 노래로 노란 리본은 더욱 유행하게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노래에는 전설같은 얘기가 따라다니는데요.  1900년대 초에 3년 여 동안 감옥에서 생활하다 나온 사람이 뉴욕에서 플로리다 주를 향해 가던 버스 안에서 버스 운전사에게 전해 준 실제로 벌어졌던 일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후 1971년 경에 뉴욕 포스트의 피트 해밀이라는 칼럼니스트가 자신이 들은 이 전과자의 이야기를 재구성해서 'Going Home' '귀향' 이라는 글로 신문에 발표했구요. 그 다음 해에 리더스 다이제스트라는 잡지에 게재됐고 TV 드라마까지 만들어졌는데요?  '참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주세요'라는 노래는 발매된 지 3주 만에 3백만장이나 팔리면서 그 해 최고의 힛송이 됩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게재됐던 이야기 줄거리 내용을 잠깐 살펴보면요 뉴욕 형무소에서 3년을 보내다 가석방돼 고향으로 돌아가는 빙고가 그 주인공인데요, 빙고는 가석방이 결정되자 아내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을 용서하고 받아들일 생각이면 마을 어귀 참나무에 노란 손수건을 매달아 달라고 적었습니다.

손수건이 보이지 않으면 버스를 타고 지나쳐 가겠다는 것이었죠. 그런데 버스가 마을 어귀에 이르렀을 때 버스 안에서는 일제히 함성이 터져나왔습니다. 참나무는 온통 노란 손수건의 물결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사실 부인은 처음에 노란 손수건 한 장을 매달았다가 잎에 가려 남편이 못보면 어쩌지? 라는 생각에 몇일 째 노란 손수건을 사서 나무에 매달고 있었는데요. 이를 본 아이들이 의아해서 그 부인에게 물어보니 '예전에 죄를 지어 벌을 받은 남편이 집에 돌아오는데 노란 손수건이 묶여있으면 용서해 주는 줄로 알고 집에 들어오고 손수건이 묶여있지 않으면 그냥 버스로 지나가겠대' 라는 얘기를 들려줍니다.

아이들은 이 부인이 남편을 용서한 것을 알고는 노란 손수건을 각자 하나씩 들고 나와 매달기 시작했고 이들 아이가 집에 돌아가 또 그 가족들에게 이 부인의 훈훈한 얘기를 전하자 온마을 사람들이 줄을 서서 노란 손수건을 매달아 참나무는 온통 노란 손수건으로 뒤덮이게 됐다는 내용인데요.

남편이 집으로 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부인 만이 아니라 노란 손수건이 걸려있기를 기다리는 주인공 빙고, 그리고 부부의 해후를 기다리는 버스에 탄 모든 사람들과 전체 마을 사람들이었다는 가슴 뭉클한 얘기죠.

그 이후 미국에서 노란 리본은 무사히 돌아오기 만을 빈다는 의미로 또는 다시 돌아오기 만을 기다리며 기원한다는 소원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요,  사실 미국 전역에서 노란 리본이 가장 많이 목격된 것은1980년대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에서 인질 사건이 발생한 뒤부터였는데요, 미국 대사관 직원52명이 444일동안 인질로 억류됐다가 풀려났을 때 헌신적인 애정의 상징인 노란 리본이 가장 많이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구요. 걸프 전에 미국 군인들이 대규모 참가하면서 노란 리본은 더욱 많이 등장하게 됐습니다.

세계 제 1차, 2차 대전 때만해도 노란 리본은 그다지 보이지 않았었구요. 베트남 전쟁 당시에도 참전 용사들의 무사 귀환을 빌기 위해 나무들에 노란 리본을 매달기는 했지만 오늘날 처럼 대규모로 노란 리본이 걸린 것은 아니었는데 말이죠. 지금도 계속중인 이라크 전쟁 참전 용사들을 기다리는 가족들의 노란 리본은 미 전역에서 요즘 흔히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