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의 난민보호 전담기구인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 (UNHCR)이 태국 내 탈북자 업무를 사실상 중단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UNHCR제네바 본부의 제니퍼 파고니스(Jennifer Pagonis) 대변인은 `미국의 소리'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태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지난 4월부터 탈북자 면담을 중단했다고 밝혔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자세한 소식 전해드립니다.

유엔의 난민보호기구인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 (UNHCR) 태국사무소는 지난 3월까지 자유세계로 가기를 원하는 탈북자들을 면담해 북한 국적 여부를 확인한 뒤 이들이 가기를 희망하는 해당국 대사관에 인도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한국이 탈북자를 자국 시민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UNHCR은 다른 난민들처럼 탈북자들에게 난민지위를 부여하거나 증명카드를 발급하지는 않았지만, 미국이나 유럽 등 제 3국행을 원하는 탈북자들은 UNHCR의 지원이 큰 도움이 됐었습니다.

UNHCR 제네바 본부의 제니퍼 파고니스 대변인은 그러나 지난 4월부터 탈북자 면담 등 관련 업무를 전면 중단했다고 확인했습니다.

파고니스 대변인은 태국당국이 복잡한 탈북자 문제를 직접 다루겠다는 방침과 함께 UNHCR에 관련 업무를 중단할 것을 공식 요구했다고 말했습니다. UNHCR은 해당국 정부의 협력을 통해서만 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4월부터 탈북자 관련 서류작업을 전면 중단했다고 파고니스 대변인은 덧붙였습니다.

기독교 지원단체인 ‘두리하나선교회'의 천기원 목사 등 탈북자를 지원하는 활동가들은 최근 UNHCR이 탈북자 면담을 거절하고 있다며, 그 배경에 대해 여러 의혹을 제기했었습니다.

천 목사는 특히 한국에 정착한 여러 명의 탈북자들이 지난 봄 미국 등 다른 나라로 가기 위해 다시 태국으로 들어가 UNHCR의 문을 두드리다 발각된 사건이 UNHCR의 업무 중단에 영향을 줬을 수 있다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었습니다.

(천기원 씨) “그런 사고가 있어서 북한사람들은 이제 자기네가(UNHCR) 관여 안한다!  태국 정부 자체는 자기네들에게 (탈북자를) 보내라고 계속 요구를 하죠. 그런 차원에서 태국 정부와 UNHCR이 서로 짜고 하는 게 아닌가? 잡히면 이민국수용소로 들어가야 하니까요.”

UNHCR의 파고니스 대변인은 그러나 이같은 의혹을 일축하며, 태국 정부의 조치가 바뀌면 업무를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파고니스 대변인은 태국당국이 최근 폭증하는 탈북자 유입 으로 치안과 국경 안보를 우려하고 있다며, 재정과 시설 문제 때문에 기존의 방콕 이민국수용소 한 곳에 있던 탈북자들을 전국 네 곳의 구금시설에 분산배치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태국 이민국에 따르면2000년대 초반에는 10명 안팎에 불과했던 탈북자 수가 2005년에는 1백여명으로 늘었고, 지난해에는 거의 4배에 달하는 3백67명으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올해 역시 지난 4월 말 현재 2백73명의 탈북자가 밀입국한 가운데, 현지 한 소식통은 누적된 탈북자까지 합치면 태국에는 현재 8백명에 가까운 탈북자가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국제난민협약 가입국이 아닌 태국은 탈북자를 난민이 아닌 불법입국자로 간주해 벌금을 부과하거나 구류처분을 한 뒤 추방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태국당국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지금까지 단 1명도 북한으로 송환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지만 탈북자 대량 유입 등을 우려해 단속과 처벌을 계속 강화하고 있습니다.

한편 UNHCR의 제니퍼 파고니스 대변인은 탈북자들의 한국행이 다른 나라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배경에 대해 한국 정부가 탈북자들을 자국 시민으로 인정하고 보호 조치를 취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등 다른 나라는 신원조회 등 여러 절차가 까다로운 데 비해 한국은 큰 결격사유가 없으면 모든 탈북자들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파고니스 대변인은 그러나 이번 UNHCR의 업무중단 조치와는 관계없이 탈북자 개개인은 언제든지 해당국 대사관을 찾아 망명신청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탈북자 지원단체들은 그러나 과거UNHCR이 발급한 수속서류를 보유하고 있으면 태국 경찰에 체포되지 않았음을 강조하며, 이번 조치로 인해 해외로 가기를 원하는 탈북자들은 무조건 이민국수용소에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행을 원하는 탈북자들은 태국당국에 의무적으로 신고를 한 뒤  이민국수용소를 거쳐 출국 과정을 밟고 있지만, 미국의 경우 대사관이 지정한 숙박시설과 지원단체들이 운용하는 숙소에 머물며 미국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