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이민사를 연구하시는 김지수 씨를 모시고 100년이 넘는 한인들의 미주 이민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국민회가 헤밋 사건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일본인 노동자 배척운동이 한참 벌어지던  1913년 남가주 지방 Hemit에 있는 미국인 살구 농장으로 한인 11명이 일하러 갔다가 일본인으로 오해받은 이들 한인이 추방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당사자들은 북미 지방 총회에 보고를 하게됩니다. 당시 북미지방총회는 그 지방 주민들과 교섭해 사건을 타결하고 북미지방총회장 이대위가 미국정부에 전보를 발송합니다.     

" '근일 한인 11명이 Hemit지방에 일하러 갔다가 그곳 주민들에게 축출 당하였는데 이 사건을 일본영사가 간섭하려고 하나 우리가 일본 관리의 간섭을 원하지 않는 이유는 귀국의 법률 밑에 사는 한인들은 대개 한일 합방 전에 한국을 떠난 사람들이고 한일  합방을 반대하며 일본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을 것이니 전시나 평시를 막론하고 한인에 관한 문제는 한인 사회에 교섭하기 바랍니다.' 라고 브라이언 미국 국무장관에게 전보를 보냈습니다."

그러자 미 국무부는 윌리엄 브라이언 장관의 이름으로 같은 해 7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전보를 대한인국민회에 보냅니다. 

" '한인은 일본인이 아니라는 대한인국민회 총회장의 전보를 받았다. 그 전보에 말하기를 재미 한인은 한일 합방 전에 한국을 떠난 사람들이고 한일 합방을 인정하지 않으며 일본 정부와 관계가 없고 일본 관리의 간섭을 받지 않겠다 하니 이제부터 재미한인에게 관계되는 일은 공이나 사를 막론하고 일본정부나 관리를 통하지 말고 한인 사회를 통하여 교섭 할 것이다.' 라는 전보를 보냈습니다."  

이같은 국무장관의 성명으로 인해 대한인 국민회는 재미 한인을 대표하는 정부 역할을 할 수 있었고 독립운동의 사업들을 할 수 있었으며 한일합방 후 중국으로 망명했던 많은 우국인사들 중 541명이 여권도 없이 국민회의 보증 만으로 망명유학생 자격으로 미국으로 입국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 주 이시간에는 미국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민간 단체 흥사단에 관해 전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