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의 중앙정보국인 CIA가 1950년대부터 70년대 사이에 작성된 비밀문서들을 일반에 공개해서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이 중에는 당시 북한의 군사, 정치 상황을 분석한 문서들도 있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1960년대에 작성된 북한 관련 문서들은 김일성 당시 국가주석의 군사적 모험주의, 또 중국과 소련의 주도권 다툼이 북한에 미친 영향 등을 기술하고 있는데요, ‘미국의 소리’ 방송 김근삼 기자와 함께 이에 대한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문: 김근삼 기자, 이번에 비밀문서들이 공개된 배경에 대해서 먼저 좀 소개해 주시죠.

답: 네, 미국에서는 ‘정보공개법’에 따라 정부 기관들이 일정 기간이 지난 문서들의 비밀을 해제하고, 일반에 공개합니다. 올해는 1950년대와 70년대 CIA의 비밀정치공작에 대한 내용이 공개돼서 국내외적으로 큰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함께 당시 중국과 소련의 공산권 내 주도권 다툼에 대해 분석한 문서들이 공개됐는데요, 여기에 북한을 주제로한 문서 2건도 포함돼 있습니다.

문: 북한 관련 문서들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습니까?

답: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1968년에 작성된 ‘김일성의 신 군사모험주의’라는 문서입니다. 이번에 일반에 공개되기 전까지는 극비문서인 ‘TOP SECRET’으로 분류됐었는데요, 당시 김일성 국가주석이 한반도 주변에서 벌인 도발 행위를 치밀한 계산에 의한 군사적 모험이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문서는 특히1968년 초 한반도에 긴장을 몰고왔던 북한의 청와대 기습사건과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이 이런 군사적 모험주의의 산물이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는데요, 김일성 전 주석은 국지적인 도발 행위에 대해서는 미국이 군사적 보복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이라는 치밀한 계산 아래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문: 미국 정보수집함을 납치해도, 미국의 공격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미리 하고 있었다는 것이군요?

답: 그렇습니다. 이 문서는 김일성 전 주석이 미국에 도전함으로써 소련과 중국에 비해 대담한 모습을 보이고 싶은 열망을 갖고 있었다고 분석했습니다. 여기에 미국이 푸에블로호 납치에 따른 보복 조치로 핵 공격을 시도하지는 않을 것이고, 또 소련, 중국과 맺은 방위조약 때문에 미국의 군사행동이 억제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도발 행위라는 모험을 감행했다는 것이죠.

이 문서는 푸에블로호 납치사건 이틀전인 1월21일에 벌어진 청와대 기습사건도 같은 맥락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문: 당시 북한의 무장공비들이 한국의 대통령 관저인 청와대를 기습 공격했었지요?

답: 그렇습니다. 당시 북한은 김신조를 비롯한 31명의 무장공비를 남한에 침투시켜서 청와대를 기습공격하려고 했지만 실패로 돌아갔지요.

이 문서는 김일성 전 주석이 이런 도발 행위를 통해 군사적 행동에 대한 북한 내 반발을 어느 정도 무마하면서, 동시에 한국에서 무장봉기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분석했습니다.

특히 이 문서는 당시 북한이 무장공비를 침투시켰음에도, 사건 초기 평양 방송들은 한국 내 세력의 봉기로 언급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당시 김일성 주석은 미국과의 직접적인 대규모 군사 충돌은 피하면서도, 국지적인 군사 도발행위를 통해 북한의 대담함을 과시하고 또 한국 내 불안을 가중시켜서 장기적인 체제 전복을 추구했다는 것이 이 문서의 내용입니다.

문: 소련과 중국의 주도권 다툼이 북한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문서도 이번에 함께 공개됐다구요?

답: 그렇습니다. 1961년 4월에 작성된 ‘중국과 소련의 북한 내 경쟁’이라는 문서인데요, 당시 공산권을 대표하던 두 나라의 주도권 다툼은 북한의 외교 및 국내 정책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주된 내용입니다.

당시 중국의 마오쩌뚱 주석은 소련보다 앞선 공산혁명사회 건설을 위해 ‘대약진 운동’을 전개했구요, 또 아시아 국가들을 위한 공산화의 길을 제시하려고 했습니다. 이 문서에 따르면 북한의 김일성 전 주석도 이런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 ‘대약진 운동’을 모방한 ‘천리마 운동’을 전개했구요, 초기에는 공개석상에서도 두 운동의 유사성을 언급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1960년에 접어들면서 북한의 이런 친중국적인 성향에 대해 소련의 불만이 강해졌구요, 결국 북한은 이런 두 나라의 주도권 다툼 때문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중립적인 ‘독자 노선’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이 문서의 분석입니다.

지금까지 김근삼 기자와 함께 최근 미국 중앙정보국이 비밀해제한 문서들 중 북한관련 부분에 관한 내용을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