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75년 동해상에서 납북된 남한 어선 천황호의 선원 이한섭씨가 32년 만에 탈북해 현재 중국 내 한국 공관에 머물며 일련의 조사를 받고 있으며 조만간 한국행이 이루어질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시간에는 이한섭씨의 탈북을 지원했던 한국의 ‘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 대표로부터 이씨의 근황과 천황호 납북선원들의 생사 등 납북자문제 해법에 관한 견해를 들어봅니다.

대담에 서울의 VOA 박세경 기자입니다.

문) 납북어부 이한섭씨가 지금 한국에 입국했나요?

답) 아직은 중국 공관에 계십니다.

문) 그럼 언제 한국에 들어 옵니까?

답) 지금 중국 정부의 조사로 한국 공관내에서 조사를 받고 있으며 조사가 끝나면 한국으로 귀국할 것입니다.

문) 이씨의 건강은 어떻습니까?

답) 탈북한 후 제가 몇번 전화통화를 했는데 건강하십니다. 그런데 이분이 눈이 좀 안좋으셨다고 합니다. 그외 건강에 이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 천황호는 언제 납북이 된거죠?

답) 1975년 8월 8일로 알고 있습니다.

문) 통계를 살펴보니 1970~1980년대에 납북자들이 상당수가 있던데 왜 그런 겁니까?

답) 그때 당시 어선들을 많이 북한이 나포해 갔습니다. 그래서 선박을 이용한 나포가 많았기 때문에 당시 인원이 제일 많았던 것 같습니다.

문) 천황호 선원은 당시 몇명이 납북이 되었습니까?

답) 한국 정부가 공식발표한 명단에는 32명으로 되어 있는데요 정확한 숫자는 1명 정도가 좀 차이가 있어요 따라서 한국 정부도 통일부 발표와 국정원하고 1명이 차이가 나고 있습니다.

문)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겁니까?

답) 원래 천황호가 2000년까지는 납북자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었습니다. 1명만 포함이 되었다가 천황호 선원들이 편지도 보내오고 해서 그것을 제가 가족들과 제시하여 지금 오늘날의 납북자 명단에 다 포함이 되어 있는 겁니다.

문) 이한섭씨가 천황호 선원으로는 세 번째로 탈북했다고 했는데 그럼 앞서 두 분은 한국내에 정착하고 있나요?

답) 그렇습니다 2005년에 공명섭씨가, 올 1월에는 최욱일 선생님이 오셨고 지금 중국 공관에 이한섭씨가 계시고 그래서 3명입니다.

문) 30여명의 천황호 납북자들이 여전히 북한에 있는데요 이분들의 생사는 들어 보셨습니까?

답) 우선 3명이 고국에 오셨기 때문에 천황호 선원은 거의가 생사확인을 했다고 보면 됩니다.

문) 생존해 계신 분은 몇 명입니까?

답) 3분의 1 정도는 사망했고 3분의 2 정도는 생존해 계십니다.

문) 이한섭씨가 북한에서는 어떤 일을 하시다 오신 겁니까?

답) 광산에 계셨어요 ‘회창광산’이라고 광산에서 금을 캐는 일을 하셨습니다.

문) 금광에서 노동자로 근무하셨으면 고생도 많이 하셨을 것 같군요?

답) 네 많이하셨죠.

문) 지금 이한섭씨 가족은 못오셨다고 들었는데 납북될 때에는 미혼인 상태였죠?

답) 그렇습니다.

문) 그러니까 북한에서 결혼을 하신거죠?

답) 네 결혼해 자녀 남녀 두 명을 두었는데 저도 이런 일을 하면서 제일 아쉬운 것이 이제 그분이 고국땅을 밟는 것은 좋지만 북한에 있는 자식을 놓고 오는 것이 아마 제일 가슴이 아플 것 같습니다.

문) 이씨가 탈북할 때에 망설였다고 들었는데 이런 가족 문제 때문에 그랬습니까?

답) 탈북을 망설인 것이 아니고 탈북한 상태에서 가족하고 같이 못오는 부분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고심을 하고 있던 차에 제가 올초 모시고 온 최욱일 선생님하고 통화를, 그 다음 제가 좀 그런 부분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어요.

또 이한섭씨 동생과의 통화 그런 것들이 그분한테는 좀 마음이 가라앉히게 하는 부분이 있어서 제가 지금 현재 다 밝히지는 못하지만 그분한테 제일 가슴 아픈 것은 가족 문제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제일 아쉽습니다.

문) 그런데 이렇게 이씨 신원이 노출이 되면서요 북한에 있는 가족들이 어려워지는 것은 아니겠습니까?

답) 우리가 아셔야 할 부분이 있어요 중국과 북한은 조약이 되어 있어요 그러므로 인해서 납북자나 국군포로가 한국 공관에 들어오면 한국 정부는 중국 정부에 통고를 합니다. 그러면 중국 정부는 바로 북한 정부에 통보를 해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언론에 나오냐 안나오냐를 떠나 북한은 이한섭씨가 되었든 국군포로가 되었든 납북자들이 공관이 들어가면 자동으로 중국에 통고해주기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다 알고 있다는 얘기죠 그것이 각 언론에 나가서 비쳐지는 것을 한국 정부가 언론에 나가면 외교적인 문제 또 북한과의 문제 이런 것들 때문에 언론에 나가는 것을 싫어하는 차원에서 혹시 있을 수도 있는 가족얘기를 하는 것이지 북한은 다 알고 있습니다.

문) 납북자 문제를 앞으로 어떻게 푸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답) 북한한테 예를 들어 요즘 발생되는 비전향장기수 이런 분을 보낼 때도 납북자 문제를 좀 거론해가면서 협상을 해가면서 했으면 지금쯤이면 많은 효과를 보았을 것이지만 오히려 2000년에 안하던 얘기가 나오고 있잖아요. 이제 ‘납북자’라는 표현도 기자들이 납북자라는 표현을 써도 막 내쫓고 어떻게 보면 더 잘못되어 있어요. 그것은 우리 한국 정부가 대단히 실수를 했다고 봅니다.

2000년부터 납북자 문제를 과감하게 요구하고 햇볕정책을 하려면 이 문제부터 해결하자! 이런 식으로 했어야 하는데 여기서 편리한 인권문제만 자기네가 풀어가고 비전향장기수 자기네가(북한이) 다 모시고 갔지 않습니까? 남한은 하나 요구도 못하고 북한이 납북자를 인정 안한다 이런 것이나 북한 대변인하듯이 하고 있지 그래서 이게 해결이 안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