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톤 디씨 동북부 블래든스버그 가, (Bladensburg Road),  아파트 건물과 상가가 모여 있는 이 곳에 한인 정진남 씨 부부가 운영하는 세탁소가 있습니다. 맞춤 세탁소라는 뜻의 ‘커스텀 드라이 클리너스 (Custom Dry Cleaners)’,  겉 보기엔 평범한 세탁소에 불과한 곳이지만, 지난 몇 달 동안 이 곳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른바 ‘바지 소송’으로 알려진 수천만 달러 손해배상 소송의 무대였기 때문입니다.

지난 25일, 미국 워싱턴 디씨 주디스 바트노프 (Judith Bartnoff) 판사는  잃어버린 양복 바지를 배상하라며 5천4백만 달러를 청구한 원고 로이 피어슨 (Roy Pearson) 씨에게 패소 판결을 내리고,  한인 세탁업자 정진남 씨 부부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지난 2005년부터 2년 넘게 시달렸던 바지 한 벌의 악몽에서 정 씨 부부가 벗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정진남 씨 부부는 1992년 5월,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는 각오로 미국 땅에 첫 발을 디뎠습니다. 당시 정진남 씨의 나이 마흔다섯, 부인 송수연 씨는 마흔한살이었습니다. 정진남 씨는 한국에서 연탄공장을 운영하기도 하고, 호텔에서 일하기도 했었지만 좀처럼 형편이 나아지지 않았다며, 젊지 않은 나이에 이민을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정진남 씨//

“장인, 장모님이 미국에, 처남이 산다고 그랬잖아요? 거기 왔다가 미국 좋다고 그랬다구… 그리고 제가 그 때 사업하던 게 안 됐었어요. 그래서 뭘 할까 궁리하고 있었는데, 아시다시피 한국에서 그 나이 되가지고 다른 뭘 한다는 게 참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당초 3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던 이민 수속이 불과 8개월 만에 끝나는 등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면서, 정 씨 가족은 ‘어메리칸 드림’의 부푼 꿈을 안고 미국 이민길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미국생활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정진남 씨//

“처남이 뭐라고 그랬나 하면 저기 저 사람더러 ‘누나, 미국 올 결심하는 순간부터 행복 끝이야’ 그러더라구… ‘고생 시작..’ 그러더라구.. 그 때는 저 사람이나 저나 심각하게 안 받아들였어요. 쟤가 농담하는 구나 그러구 받아들였는데, 막상 미국 와보니까 한국하고 벌써 살아가는 방식이 틀리잖아요. 여기서는 일 안 하면 굶어죽어요. 진짜로 일 안 하면...”

손님이 옷을 맡기면 공장에 보내서 세탁한 후 찾아가게 하는 픽업 스토어를 한동안 운영하던 정진남 씨 부부는 지난 2000년 아는 사람이 운영하던  ‘커스텀 드라이 클리너스’를 인수했습니다.  ‘커스텀 드라이 클리너스’는 물세탁기와 드라이 클리닝 세탁기 등 직접 가게에서 세탁을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정진남 씨는 많은 한인들이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지만 세탁업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일해야 하는 긴 노동시간은 물론이고, 특히 공장시설을 갖춘 세탁소의 경우, 더운 여름철은 고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끊임 없이 열기를 뿜어내는 세탁기와 다리미 사이에서 하루 종일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민을 결심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가 자녀교육 문제였지만, 부부가 모두 긴 시간을 일하다 보니, 아이들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지나가는 날이 많았습니다. 

//정진남 씨//

“결심의 반 이상은 애들 때문에 왔어요. 그런데 와서 제가 느낀 게 그게 하나의 허구라는 걸 느꼈어요. 왜 그러냐 하면 우리 일 나가면 애들 케어 (care, 보살피다) 시간이 없어요. 우리 애들은 그런 얘기 안 했지만 뭐, 다른 부모들 얘기 들어보면 ‘내가 왜 미국을 왔는데’ 그러면 애들이 그런대요. ‘엄마, 아빠가 우리 보살핀 게 뭐 있냐고, 일찍 나가서 늦게 들어와 가지구..’”

자본금이 넉넉치 않은 한인들은 위험부담을 안고 범죄가 자주 일어나는 흑인 빈민지역에 들어가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커스텀 클리너스’ 가 있는 워싱톤 동북부 지역 역시, 주민들의 대부분이 흑인입니다. 정진남 씨는 그동안 다섯번이나 강도를 당했다고 말합니다.

//정진남 씨//

“우리가 손님인지 아닌지 어떻게 모르잖아요. 한 번은 저 사람하고 나하고 둘이 있는데 5명이 들어와 가지구, 하나는 차 안에 있고, 한 사람은 문옆에 서 있고, 하나는 여기 서 있고, 둘은 들어와 가지고 한 사람은 여기 총 겨누고 돈 내놓으라고 그래가지구..”

하지만 세탁소를 운영하면서 무엇보다 힘든 일은 손님을 상대하는 일이라고 정진남 씨는 말합니다.

//정진남 씨//

“남의 옷을 맡았다 해주는 거기 때문에 참 분쟁의 소지가 많아요. 옷을 갖고와서  맡겼는데 찾아갈 때 줘도 내 꺼 아니라면 우리가 할 말이 없어요. 더군다나 다른 손님들 있는데 와서 소리 지르면 물어주게 돼요. 어쩔 수 없이…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어떨 때는 막 섞일 때가 있어요.”

그같은 손님과의 분쟁이 법정으로까지 번진 것이 이번 바지 소송이었습니다. 소송을 제기한 로이 피어슨 씨는 굉장히 까다로운 손님이었다고 정진남 씨는 말합니다.

//정진남 씨//

“와 가지고 한번도 좋게 이렇게 웃고, 우리하고 농담하고 간 적이 없고…. 들어올 때 마다 이렇게 좀 인상을 찡그리고 들어오고…  2002년에도 한 번 이런 일이 있었어요. 옷을 좀 늦게 찾아줘가지고,  줬는데 자기 꺼 아니라고  그래서 물어준 적이 있었어요.  1백50불…  마침 우리 애가 놀러 왔다가 그 사람을 본 거에요. 저 사람 옷 맡기는 거 보고 뒤로 끌고가 가지고 ‘엄마, 저 사람 받지마, 받지마’그러더라구… ‘문제 생겨, 문제 생겨’ 했었는데 ‘손님으로 왔는데 어떻게 안 받냐’, 그래 가지고 받았는데 문제가 생겼어요, 또…”

바지 수선을 맡겼던 로이 피어슨 씨는 가게에서 찾아준 바지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바지 값으로 1천8백 달러를 물어내라고 요구했습니다.

//정진남 씨//

“우리가 수선을 해줬는데 딜리버리 (delivery, 배달)하는 사람이 딴 데 가져갔던 거에요. 1주일 정도 있다가 온 거 같아요. 찾아줬더니 자기 거 아니라는 거에요. 니 껀 도대체 뭐냐 했더니 아주 비싼 옷의, 양복 한 벌 중의 바지라는 거에요. 1천8백불 달라는데 바지 한 벌 수선에 10불 50 받았어요. 10불 50 받아놓고 1천8백불 달라는데 그냥 줄 사람 없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아규 (argue, 다툼)가 됐어요.”

워싱턴 디씨 행정판사였던 로이 피어슨 씨는 가게에 걸려있던 ‘Satisfaction Guarantee (고객만족 보장)’이란 문구를 트집잡아, 한화로 5백억원대의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습니다. ‘고객만족 보장’ 문구는 가게를 인수할 당시에 이미 걸려있었지만 그동안에는 한번도 문제가 된 적이 없었다고 정진남 씨는 말했습니다.

//정진남 씨//

“증인 나온 사람 다 그런 얘기 했어요. 그 쪽에서 내세운 증인도 그렇고, 우리 증인도 그렇고… 판사가 물어보더라구요. ‘Satisfaction Guarantee’가 뭐냐 그랬더니, ‘내 옷의 가치 만큼 해주는 거다’… 저희도 그렇게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피어슨은 아니에요. 그야말로 걸레 같은 옷을 갖고와도 ‘내 거 새 거다’ 그러면 새 거 해줘야 된다는 거에요.”

지루한 소송이 2년 넘게 계속되고 엄청난 변호사 비용을 부담하게 되면서 정 씨 부부는 몇 번이나 포기할 생각을 했다고 말합니다. 피어슨 씨가 세탁소 앞에서 유인물을 뿌리고 영업방해를 하면서 고객 수도 줄어들었고, 매상도 1주일에 1천달러 이상이나 떨어졌습니다.

//정진남 씨//

“너 다 갖고가라고 그러려고 그랬었어요. 니가 오늘 다 갖고가라, 그냥… 어차피 빈 손으로 왔는데, 다시 시작하지 뭐, 이러구… 그럴 마음도 먹었었어요. 그걸 변호사하고 얘기 한 번 해봤더니 그러지 말라고 그러더라구…”

정진남 씨는 단골 손님들과 이웃 주민들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가 없었다면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단골 손님 가운데 한 명인 동네 목사는 다른 주에 출장갔다가 증인을 서주겠다며 서둘러 돌아오기도 했다고 부인 송수연 씨는 말합니다.

//송수연 씨//

“딴 주에서 신문을 봤대요. 출장 갔다가 비행기 타고 너, 네 소식 듣고 왔다고…  자기가 동네 교회니까는 자기가 다 싸인 (sign, 서명)도 받아가지고 법정 코트 가서 증인 설 거니까 나만 불러라, 막 그 때 그랬었어요.”

이번 소송은 담당 판사가 정 씨 부부가 소비자 보호법을 위반한 일이 없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원고인 피어슨 씨가 패소한 것으로 일단락됐습니다. 판결이 나온 다음 날인 26일, 정진남 씨 부부는 축하 인사를 받기에 바빴습니다.

평소 고객이 아닌 인근 주민들까지 일부러 찾아와 축하 인사를 건네고 갑니다.

옷을 맡기러 온 여자 손님은 한번도 불만을 가질 일이 없었다면서, 서비스에 만족한다고 말했습니다.

부인 송수연 씨는 이미 피어슨 씨를 용서했다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분하고 억울한 마음 뿐이었지만 법정에서 과욕을 부리며 허황된 말을 늘어놓는 피어슨 씨를 보면서 차차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친정 어머니의 충고도 마음을 가라앉히는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송수연 씨//

“악은 악으로 하면 안된다… 그리고 항상 너네가 기도를 할 적에 끝에 그 사람을 용서한다는 말을 한번씩 넣어라, 그 얘기를 하시더라구요. 그래야 네 마음이 편하면 그 사람도 마음을 돌릴 수가 있다,얘길 하시더라구요.”

송수연 씨는 피어슨 씨가 다시 손님으로 찾아온다면 받아줄 것이라고 말합니다.

//송수연 씨//

“그 사람이 단순히 손님으로 그냥 또 오겠다면 어쩌겠어요? 솔직히 말하면 그 사람도 불쌍해졌고, 그 사람 때문에 우리도 망했고, 그 사람도 망했고, 결론은 그거에요, 지금 딱…”

정진남 씨 부부는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 나면 그동안 성금과 격려 편지를 보내준 사람들에게 감사편지를 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세탁소를 정리하고 잠시 쉬고 싶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정진남 씨는 여기서 그냥 주저앉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진남 씨 //

“다시 시작해야죠. 이제 한번 과거 끝났잖아요. 시작을 다시 해가지고 다시 잘 살아야죠, 뭐..  잘 살려고 온 건데…”

지난 일은 다 털어버리고, 새로 시작한다는 기분으로 다시 도전해 나가겠다고, 정진남 씨는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