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격 사건으로 기록된 버지니아 공과대학 총기 참사는 모두 32명의 죄없는 목숨을 앗아간 충격적이고 끔찍한 사건이었지만, 이에 대한 미국사회의 대응은 차분하고 냉정했습니다. 미국 내 한인사회는 범인이 한국인 학생으로 밝혀지면서 보복적 행동의 가능성을 우려하며 가슴을 졸였지만, 미국사회는 이번 일을 철저히 개인적인 사건으로 규정하고 원인 분석과 재발 방지에 초점을 맞췄습니다.한국인 조승희 씨가 저지른 총기 참사를 맞아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이 마련한 특별기획, 오늘은 그 마지막 순서로 이연철 기자가 미국사회의 대응 방식을 짚어봤습니다.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 희생자 애도의 날로 정해진 지난 20일, 버지니아의 주도인 리치몬드를 비롯해 미 전역에서는 촛불집회와 기도회, (Tape#2 Sneak In) 추모식이 잇따라 열렸습니다.( Up and down)  희생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유가족과 참석자들은 졸지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에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명복을 비는데 힘을 쏟았을 뿐, 내 자식을 살려내라고 오열하는 유가족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희생자에 대한 좋은 기억을 되살리려 노력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대형참사가 발생하면 의례 등장하는 집단 분향소나 정치인들의 대형 화환, 합동장례식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고, 책임자 문책이나 사과를 주장하는 진부한 목소리도 없었습니다. 

특히 가해자인 범인 조승희 씨에 대한 분노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조승희 씨를 또다른 피해자나 희생자로 받아들이는 분위기 마저 나타났습니다. 버지니아 공대 교정의 희생자 추모석 사이에는 조승희 씨의 추모석도 마련됐고, 그 옆에는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했던 조 씨를 돕지 못해 미안하다거나,  조 씨를 미워하지 않는다고 적힌 쪽지들이 놓였습니다. 

사건발생 초기에 학교와 경찰의 늦장대응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특정인의 책임을 추궁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버지니아 공대 총장이나 경찰서장이 당장 물러나야 한다는 요구가 나올 법도 했지만, 이들을 탓하는 사람은 없었고 오히려 총장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격려문이 나붙을 정도였습니다.

대신 미국사회는 상처 치유와 극복을 강조했습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깊은 슬픔에 잠긴 유가족들을 위로하면서, 모두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하자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그동안 미국인들은 서로 힘을 합쳐 많은 위기들을 극복했고, 그 과정에서 미국의 힘을 발견할 수 있었다면서, 앞으로 더 밝은 미래가 다가올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정부 당국자들에게 앞으로 유사한 참사가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팀 케인 버지니아 주지사도 독자적인 조사위원회 구성을 지시했습니다. 위원회에 소속된 톰 리지 전 국토안보부 장관은 그같은 참사가 벌어지는 것을 근절할 수는 없겠지만, 사건재발의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미국사회가 최악의 총기 참사의 상처를 보듬고 후유증을 치료하는 방식은 놀라울 정도로 차분했습니다.

흥분하기 보다는 사건의 원인규명과 재방방지 등 대안찾기에 주력하는 냉정하고 현실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총기 규제의 허점이나 정신 이상자의 총기 소유, 대학 내 치안부재, 대학생들의 정신건강 문제 같은 사회적 시스템의 문제들이 주요 쟁점으로 거론됐습니다. 특히 버지니아 공대 참사를 계기로 총기 규제에 관한 논란이 가열됐습니다.

또한 미국사회는 이번 참사가 철저하게 개인적인 사건이라며,  한국인 전체의 문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팀 케인 버지니아 주지사는 한인사회 지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버지니아 주민 가운데 이번 사건과 관련해 한인 사회가 비난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버지니아 공대 학생회도 주미 한국대사관에 보낸 전자우편에서, 한 사람의 행동이 버지니아 공대 학생들과 한국인들 간의 장벽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달라며, 이번 일은 폭력을 극복하려는 열정을 공유한 모든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단합하게 만드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한인 1.5세와 2세들로 구성된 단체인 한미연합회의 찰스 김 회장은 미국인들은 이번 사건을 철저하게 개인주의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거 보다도 미국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I Culture'기 때문에, 내가 중심이 되고 또 나 혼자 개인이 의지가 되는 문화고, 한국은 'we culture'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정신적인 대처방법도 큰 차이가 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언론들 역시 이번 참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도 범인인 조승희 씨가 한국인이라는 점은 거의 부각시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요 언론들은 조 씨의 이름 표기방식을 한국식인 조승희에서 미국식인 `승희 조'로 바꾸는 등, 조 씨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사태의 본질을 흐트리지 않도록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또한 조 씨의 외톨이 학교생활과 부적응 사례, 이민자인 조 씨 가족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국 내 한인사회의 교육열 등에 대한 언론의 특집기사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이는 사건의 원인을 냉철하게 규명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일 뿐이었지, 이번 참사를 인종이나 국적의 문제로 연결시키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희생자 유가족들과  학생들은 오히려 `NBC 방송'이 조승희 씨가 보낸 동영상과 사진을 내보내자 이에 항의해 출연을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한 지도 어느 새 열하루가 지났지만, 아직도 구체적인 범행동기는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사회는 수사결과를 독촉하는 대신 차분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번 참사의 현장이었던 버지니아 공과대학은 침묵의 추도식을 갖고 다시 수업을 재개했습니다.

미 역사상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은 정부 당국과 학교, 희생자 유가족, 그리고 언론의 냉정하고 차분한 대응 속에 이제 빠르게 치유와 사후수습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모습에서 미국사회 저변의 힘을 엿볼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