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간의 세계 주요경기 소식과 각종 스포츠 화제를 전해 드리는 스포츠 월드 시간입니다. 오늘도 이연철 기자 나와 있는데요? 먼저 한주간의 스포츠 주요 소식부터 정리해 주시죠?

- 2016년 하계 올림픽 유치를 위한 미국 대표도시로 시카고가 선정됐습니다.

- 캐나다가 미국을 5-1로 물리치고 2007년 세계 여자하이스하키 선수권 대회 9번째 우승컵을 품에 안았습니다. 

- 미국 여자프로골프 LPGA 투어 진 오픈 대회 우승컵은 올해 21살의 미국의 브리타니 린시컴에게 돌아갔습니다.

한국의 박세리는 선두에 5타 차로 최종일 경기에 나서면서 역전 우승을 노렸지만, 공동 6위에 그쳤습니다.

-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입장권 예매가 15일부터 시작됐습니다.

왕웨이 베이징 올림픽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은 국제적 관행과 올림픽 운영 기준, 그리고 중국의 상황을 고려해 공정하게 투명하게 입장권 판매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문: 지난 15일 열린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로스엔젤레스 다저스와 샌디에고 파드레스 경기에서, 다저스 선수들 모두 42번의 등번호가 적힌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치루는 진풍경이 연출됐는데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서 였다면서요? 

답: 그렇습니다. 지난 15일은 부르클린 다저스 소속의 재키 로빈슨이  흑인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경기에 출전함으로써, 메이저리그에서 흑인에 대한 차별이 공식적으로 철폐된 지 꼭 60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부르클린 다저스의  후신인 로스엔젤레스 다저스의 모든 선수들은 바로 이  날을 기리기 위해 대 선배의 등번호인 42번을 달고 경기에 나선 것입니다. 이날 메이저리그 경기가 열린 다른 9개 구장에서도 200명 이상의 각 팀 선수나 감독들이 등번호 42번이 적힌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펼쳤습니다.  버드 셀릭 메이저리그 총재는 이날 경기 전에 열린 기념식에서, 로빈슨은 미국의 영웅이자 인종 장벽 철폐의 선구자라고 칭송했습니다.

로빈슨의 등번호를  달고 경기를 하자는 구상을 맨 처음 내 놓은 것은 신시내티 레즈의 강타자인 켄 그리피 주니어입니다.  로빈슨 데뷔 50주년이었던 지난 1997년에도 42번 등번호가 적인 유니폼을 입고 뛰었던 그리피 주니어는 만약 로빈슨이 없었다면 흑인인 자신이 어떻게 메이저리그에서 뛸 수 있었겠느냐고 말했습니다.

문:  이처럼 60년 전에 미국 메이저리그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재키 로빈슨은 과연 어떤 선수였을까 궁금한데요? 

답:  네, 1919년에 미국 남부 조지아 주 카이로에서 태어난 로빈슨은 1년 뒤 가족과 함께 서부 캘리포니아 주 패사디나로 이주해 그 곳에서 자랐습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로스엔젤레스 캠퍼스 UCLA 에 진학한 로빈슨은 대학 야구팀과 농구팀, 풋볼팀, 그리고 육상팀에서 만능 스포츠 선수로 크게 명성을 떨쳤습니다.

1942년부터 1944년까지 군 복무를 한 후, 니그로리그 야구팀 선수로 있던 로빈슨은  흑인 선수를 메이저리그에서 뛰게 하겠다는 브랜치 리키 브루클린 다저스 단장의 선구적인 결심에 따라, 1947년 4월15일에 흑인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경기에 출전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메이저리그는 오직 백인 선수들로만 구성돼 있었고, 흑인들은 별도로 니그로리그에서 경기를 펼치고 있었습니다.

로빈슨은 이후  온갖 방해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실력으로 능력을 입증했습니다. 로빈슨은 1947년부터 1956년까지 10년 동안 1382경기에 출전해 통산 타율 3할1푼1리, 홈런 137개를 기록했습니다.

데뷔 첫 해인 1947년에 내셔널리그 신인왕에 올랐고, 49년에는 내셔널리그 타격왕와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했으며, 여섯 차례나 올스타에 뽑혔습니다.  로빈슨이 활약한 10년동안 다저스는 여섯 차례 월드시리즈에 진출했고, 1955년에는 우승까지 거머쥐었습니다. 

1962년에 흑인 최초로 프로야구 명예의 전당에 오른 로빈슨은 흑인 사상 첫 메이저리그 감독을 꿈꿨지만 뜻을 이루지는 못하고, 대신 민권 운동에 나섰습니다.  로빈슨  1972년, 53살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심장병과 당뇨병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로빈슨은 사후에 미국 의회와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받았습니다.

문: 로빈슨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1947년은 미국 민권 운동의 지도자인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내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워싱턴 링컨 기념관 앞 연설로 미국의 흑백 차별 철폐 운동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 1963년보다 무려 16년 전이었는데 그같은 상황에서 최초의 흑인 선수인 로빈슨이 얼마나 큰 어려움을 겪었을 지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답: 네, 로빈슨이 경기 때마다 겪은 인격적 모욕과 부상의 위험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로빈슨이 타석에 들어서면 투수들은 머리를 향해 공을 던졌고, 포수들은 로빈슨에게 침을 뱉았습니다. 수비를 할 때는 상대팀 선수들이 로빈슨의 얼굴을 향해 슬라이딩을 했습니다. 백인 관중들은 로빈슨에게 야유를 보냈고, 원정 경기에서는 호텔로부터 잠자리와 식사를 거부당했고, 심지어는 살해위협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로빈슨은 결코 이에 물리적으로 맞서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렇게 했다면 지금과 같은 위대한 업적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브루클린 다저스의 리키 단장은 스카우트 담당자들에게 실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대학을 졸업한 지적인 흑인 선수를 찾아라고 지시했고, 이렇게 해서 고른 선수가 바로 로빈슨이었습니다.

리키 단장은 로빈슨과 계약하면서 만일 로빈슨이 차별에 직접적으로 맞서 싸운다면 흑인들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것이 20년 이상 후퇴할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모든 굴욕을 참아낼 것을 요규했고,  이 말의 의미를 잘 알고 있던 로빈슨은 리치 단장의 요구를 받아 들였습니다.

로빈슨은 그 후 10년동안  끝없이 인내하면서, 아직까지 메이저리그 홈런왕 기록을 갖고 있는 행크 아론이나 메이저리그 사상 첫 양대리그 최우수선수로 선정된 프랭크 로빈슨 같은 흑인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문: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지금 메이저리그에는 흑인은 물론 히스패닉과 한국과 일본, 타이완 등 아시아 선수들도 뛰고 있죠?

답:  그렇습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 자료에 따르면, 올해 출전 선수 명단에 오른 849명의 선수들 가운데, 29%인 246명이 외국 출신 선수들입니다.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이 98명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베네수엘라 51명, 푸에르토 리코 28명, 캐나다 19명, 일본과 멕시코가 각각 13명을 기록했습니다. 이밖에 파나마 7명, 쿠바 6명, 한국 3명, 콜롬비아와 타이완 각각 2명, 그리고 아루바와 호주, 니카라과가 각각 1명 이었습니다. 플로리다 말린스의 프레디 곤잘레스 감독은 메이저리그가 점차 국제적인 스포츠가 돼 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곤잘레스 감독은 메이저리그가 세계를 향해 문을 열고 전 세계의 유능한 선수들을 받아 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오히려 흑인 선수 비율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주목을 끌었습니다. 1975년에 전체 메이저 리거의 28%를  흑인이 차지해 절정을 이룬 이래, 올해의 경우 개막전 출전 선수를 기준으로 흑인이 차지하는 비중을 9%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오히려 남미와 아시아 출신 선수들의 비중이 40%를 넘고 있는 실정입니다.

메이저리그 출전 선수들 가운데 외국 태생 선수들이 점점 더 많아지게 되면 미국 사회를 이루고 있는 각국의 여러 인종들이 메이저 리그에 더욱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