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1951년 말부터 이듬해 초 사이에 북한군에 의해 포로로 잡혔던 한국군 수천명이 소련으로 끌려간 사실이 최근 비밀해제된 미국 국방부 보고서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국군포로들은 소련에서 도로공사 등 강제노동에 동원돼 사망률이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번 보고서는 13일 금강산에서 끝난 남북한 적십자 회담에서 국군포로 문제에 대해 아무런 합의도 이루지 못한 가운데 나온 것입니다.  보고서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전해드립니다.

1950년 한국전쟁 기간 중 수천명의 한국군 포로들이 유엔군과 함께 북한에서 소련으로 끌려가 강제노동에 동원됐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들은 1953년 7월의 휴전협정 이후 포로교환 때도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같은 사실은 최근 비밀이 해제돼  한국의 ‘한국일보’가 입수한 미국 국방부 보고서에 따른 것입니다.

‘한국전쟁 포로들의 소련 이동’이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미국과 러시아의 공동조사위원회에 의해 지난 1993년 8월에 작성됐습니다. 보고서에는 포로들의 이동 사실을 뒷받침하는 러시아 정부 문서와 관계자 증언, 그리고 북한의 강상호 전 내무성 부상 겸 군총정치국장의 진술 등이 담겨있습니다.

강상호 전 부상은 지난 92년 11월 진술에서 “수천명의 한국군 포로들을 소련에 있는 3백~4백개 수용소로 옮기는 것을 지원했다”고 밝혔습니다. 강 씨는 수용소는 대부분 타이가 (Taiga) 지역에 위치했고, 일부는 중앙아시아 지역에도 있었다고 진술했습니다.

강 씨의 진술에 따르면 포로들은 바다가 얼어있을 때와 녹아있을 때에 따라 크게 두 가지 경로로 압송됐습니다. 51년과 52년 사이 태평양 해협이 얼어있을 때는 북한과 인접한 소련의 포시에트에서 시베리아의 치타를 거쳐 몰로토프로 옮겨졌습니다.

얼음이 녹았을 때는 바다를 이용해 오호츠크 등 소련 극동항구로 이동돼 그곳에서 야쿠츠크 주변의 악명 높은 콜리마 수용단지와 추크치해로 끌려갔습니다.

보고서는 특히 “추크치해 지역으로 이송된 포로들은 적어도 1만2천명에 달했고, 도로공사와 비행장 건설 등에 동원돼 사망률이 높았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국방부는 13일 성명을 통해 보고서 내용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아직 없다고 말했습니다.

한국과 러시아 간의 관계와 러시아 사회의 개방 정도를 감안할 때 포로들의 강제연행 내용이 사실이라면 최소한 일부라도 한국 내 가족들과 연락이 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국방부는 “신뢰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국방부는 이어 국군포로들이 소련으로 이동했다는 내용은 지난 1993년 11월에도 국내 일부 일간지에 보도된 적이 있고, 당시 러시아측이 보도내용을 부인한 바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국방부는 보고서 내용을 검토해 필요에 따라 러시아와 북한측에 사실 확인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한국 정부는 북한에는 아직도 5백60명의 국군포로가 살아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북한은 이를 부인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