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은 오는 27일 부터 사흘 간 제5차 이산가족 화상상봉 행사를 열 예정입니다. 오늘, 21일 대한적십자사에서는 화상상봉 최종 확정자를 대상으로 상봉 절차에 대한 설명회가 있었습니다. 북한의 가족과 친지들을 만나게 될 이산가족들에게는 갖가지 사연도 많았습니다. 자세한 소식 서울의 도성민 기자 연결해 알아보겠습니다.

문: 화상으로 만나는 이산가족 상봉, 오늘로 일주일이 남았군요. 대한적십자사에서 사전 교육이 있었다구요?

답: 그렇습니다. 오늘 오후 3시부터 화상상봉이 진행될 9개 도시 적십자사 지사에서 상봉시 준비와 주의사항에 대한 교육이 있었는데요. 화상상봉 최종대상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긴가민가했던 이산가족들이 이제야 조금씩 실감이 난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문: 전쟁으로 가족과 헤어진 이산가족들이 헤어지게 된 사연과 그동안 가족들을 그리워 한 이야기들도 참 다양한 것 같습니다. 오늘 몇몇 이산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셨다구요?

답: 네. 먼저 인천에 사는 김상현씨 가족입니다. 아버지 김두호씨가 상봉신청자이구요, 이번에 북한에 있는 아내와 아들, 딸들을 만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부인과 아들은 이미 사망했고, 막내딸과 그 가족들이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김상현씨에세는 한번도 보지 못한 누님이 되는 것입니다.

“ 실감나지요, 뭐 아버지 생각도 없으셨거든요, 여때까지 말한 마디 없으셨거든요. 지난 구정.... 아무래도 아리 이념 시외주의가 무언지 아시겠어요, 무서우니까.. 남자들 다 끌어서 의용군 데리고 피하신다고 열흘만 있다고 올라오마 하고 내려왔는데 .그것이 아주 돌아가실 때까지 얼굴 한번 못 보시게 된 거지요”.

문: 열흘 정도만 피했다가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이 반평생 넘은 지키지 못할 약속이 되었던 것이군요.

답: 그렇습니다. 아버지 김두호씨 올해 86입니다. 가족들은 최종 상봉대상자라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가 충격을 받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담담한 모습을 보이셨다고 합니다. 대면상봉이었으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아버지 김두호씨의 건강문제도 있고 해서 화상상봉으로도 만족한다고 말했습니다.

문: 어디 이런 사연을 가진 이산가족이 한 두 분이겠습니까? 갑작스러운 전쟁 소식에 하루이틀 피한다는 것이 평생의 헤어짐이 된 가족들이 많겠군요. 

답: 그렇습니다. 경기도에 용인에 사는 91살의 신연균 할머니. 1950년 전쟁이 나면서 마침 방학을 이용해 친척댁에 가 있던 큰 아들 박성우씨와 헤어져 57년만에 만나게 되는데...큰 아들만 두고 남편과 다른 자식들과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함께 오지 못한 미안함으로 평생을 살았다고 했습니다. 당시 국민학생이었던 큰 아들 박성우씨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노인이 되었는데 뭐라고 말을 시작해야 할지 가슴이 떨린다고 합니다.

“ 아휴..참말로 말할 수 없이 좋지요, 살았다는 것이 얼마나 또 기쁘고...기분이 ..어떻게 갑자기 된 일이라서.. 꿈같고... 이상하더라구요. 쓰러질 것 같아.. 11살 때 피난 나와서 떨어진 것이예요. 글쎄.. 뭐라고 말문이 막힐 것 같아요. 11살때 떨어져 이제야 만나니 글세.....만나도 직접 못 만나고 그림으로 만나니.. 그렇게 만나도.. 나는 살았다는 소식이라고 들었으면 했는데.... 반갑지요 뭐.... ”

문: 앞의 두 가족처럼 아버지와 아들 딸, 또 어머니와 아들 딸, 이렇게 부모자식 사이에 만나는 경우도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답: 그렇습니다. 이산가족 1세대들의 고령화는 누구도 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헤어질 당시 30대의 부모라면 이제 90대가 되어 있는 것이 당연하고, 그 이상의 연배라면 거의 대부분 사망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남쪽에서는 최고령 상봉자가 102살의 최병욱 할아버지인데요. 1.4후퇴 당시 큰 아들 지천씨만 데리고 나오면서 ‘곧 오마’라고 했지만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이산가족이 되었습니다. 또 4년전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만 해도 북에 두고 온 아내와 세자녀를 만난다는 것은 꿈에도 그리지 못했다고 하는데요. 최 할아버지는 수원 상봉장에서 큰 아들에게서 난 3명의 손자와 손자며느리와 함께 북에 두고 온 둘째 아들 70살 지호씨 셋째딸 정은. 넷째딸 정녀(60) 씨를 만나게 됩니다.

문: 형제남매 간 상봉대상자를 보면 부모자식 보다는 형제 사이의 만남이 더 많아지고 있지 않습니까?

답: 그렇습니다. 형제지간의 만남에도 서로 함께 살았던 형제나 남매의 경우 어린시절 기억이라도 남아있는 경우지만, 남과 북으로 헤어진 뒤, 후에 태어난 형제 자매라면 상봉에서의 기쁨보다 서먹함 안타까움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이번에 소개해 드릴 가족은 북한에 있는 오빠를 만나는 남쪽의 여동생들인데요. 동생들에게 무척이나 잘해줬던 오빠가 의용군으로 끌려간 뒤 78살이 되어 만나게되어서 오빠가 어떻게 변해있을지 뭘 하고 살았을지 너무나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남쪽의 동생 전계자씨입니다.

“ 생활력이 강한 오빠.. 한마디로 생활력이 강하고 신용이 강한 오빠..너무 기쁘지요. 뭐.. 말도 못하지요, 너무 반갑고 기쁘고 너무 좋아요. 돌아가신 줄 알았는데 살아계셔서.. 그쪽에서 먼저 신청을 하셔서... 그 쪽애서 뭐하시는 분인지..가족이 어어떻게 되는지 통 물어볼 수가 없어서... ”

오늘 두 자매가 사전 교육을 다녀왔는데. 대한적십자사에서 북한에 있는 가족들 만나서 하지 말라는 말이 많아서 아쉬운 마음이 컸다고 합니다.

“오늘 교육 받고 지금 가는 길인데.. 말도 뭐.. 조심하라고 하고...만나면 그냥 얼굴만 보고 ..그렇게.. 그렇습니다. 뭐 ..고생했느냐 소리라든가. 등등. 종교에 대해서 교회나갔냐... 그런것들이지요. 정치에 대해서 말하지도 말고... 그거야 기본이지요. ”

문: 전혀 모르는 친척들 간의 만남도 예정되어 있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지요?

답: 그렇습니다.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촌지간이나 또 나이차이가 많아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그런 것 같습니다. 북한에 있는 민영출씨가 남한에 있는 가족들 찾았는데요. 부모나 형제 모두가 사망한 상태여서 사촌동생인 민병권씨가 가장 가까운 친지로 상봉장에 나가게 된 경우입니다. 하지만 625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병권씨는 한번도 민영출씨를 본 적도 없었고 오히려 자신이 젊었을 때 의용군으로 끌려간 사촌 형 때문에 연좌제에 묶여 어려운 상황이 많았다면서, 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오히려 당황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아직까지 한번도 만난 본 적이 없고 ...이런 관계로 사실상 살아있다는 것 아무런 생각 못하고.. 그러니까 백모지요, 자기 엄마가 살아계실 때 사망신고를 했어요, 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20년이 흘렀는데...이제가 연락이 오니까.. 자기가 만나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

문: 상봉을 불과 며칠 앞두고 어제 세상을 떠난 가족이 있군요.

답: 네. 88살의 변경천 할아버지. 어제(20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족들은 몇일만 더 기다리셨으면 평생의 소원을 풀텐데 하고 안타까워했는데요. 평소 건강하셨던 변 할아버지가 몇일전 쓰러지면서 계속 엊그제 엊그제 하셨답니다. 변 할아버지의 아들 길제씨에 따르면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사...자를 되뇌이는 변 할아버지’가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몰랐었는데 이산가족 상봉대상자에 확정되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고 . 엊그제 전화가 왔었다. 상봉을 할 수 있다‘ 라는 말씀을 하시려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변 할아버지는 평소 소원하신대로 실향민들의 안식처인 파주동화경모공원에 모실 예정이고. 유가족들은 화상상봉장에 나와 아버지 변경천씨의 사망소식과 평소 가족들을 그리워한 마음을 전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한편 이산가족통합 정보센터는 지난해 7월 화상상봉 대상자 300명 가운데 약 20명이 사망했다고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