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는 1950년 6.25 전쟁 당시 피난민에 대한 미군의 총격을 허용한다는 방침을 담은 ‘무초서한’과 관련해 미국 정부는 이같은 방침을 승인하거나 집행하지 않았다고 한국 정부에 통보해 왔습니다.

무초 서한은 ‘노근리 사건’이 발생할 시점에 즈음해 당시 존 무초 주한 미국 대사가  딘 러스크 국무부 차관보에게 보낸 편지로, 지난 5월 AP통신에 의해 그 존재가 확인되면서 2001년 공식발표된 노근리 사건 보고서의 결론을 바꿀만한 근거로 간주됐었습니다.  이에 관한 좀더 자세한 보도입니다.    

6·25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한국 영동군 노근리 철교 밑 터널 속칭 쌍굴다리 속에 피신해 있던 주민 수백명에게 미군들이 무차별 사격을 가해 300여 명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에 대해 한미 양국은 1999년과 2001년 사이 공동조사에 착수해 미군에 의해 피난민에게 사격이 가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미군이 조직적으로 사격명령을 내렸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증거가 없다는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미국은 보고서 외에도 당시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이 유감성명을 발표하고 미국내 추모비 건립과 장학사업을 약속했습니다. 

이처럼 국내외에 큰 반향을 일으킨 노근리 사건은 한 때 역사의 미궁으로 빠져드는 듯 했으나, 지난 5월 AP통신이 ‘무초 서한’을 공개함으로써 미국이 이 사건의 진실을 은폐했다는 강한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무초 서한은 당시 존 무초 주한 미국 대사가  딘 러스크  국무부 차관보에게 보낸 서한으로, 노근리 사건이 발생하기 하루 전인 1950년 7월 25일 대구에서 한국 정부 관계자 들이 참석한 가운데 한미 합동회의가 열렸고, 여기서 피난민들이 미군 방어선에 접근하면 사격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결정됐다는 내용을 담고있습니다. 

‘무초 서한’의 존재 확인으로 미국이 민간인에 대한 사격을 사실상 허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과 함께 2001년 한미공동조사 보고서 작성 당시 이 서한의 존재를 의도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은 미국 정부에 무초 서한이 나온 경위와 그 내용의 진위 여부와 함께 이에대한 해명을 서면으로 문의하고 당시 조사기록을 재검토 해주도록 요청했습니다. 미국은 이에 대한 검토결과를 지난 9월말 서한으로 통보했습니다.

미국은 답신에서 “무초 서한은 한국 정부 관계자와 미 8군 등이 참여한 1950년 대구회의에서 논의됐던 정책 초안에 대한 무초 대사의 인상을 담은 것”이라면서  “당시 워커 미 8군 사령관은 무초서한에 언급된 민간인 사격과 관련한 정책제안을 승인한 바 없으며 일선 군인들에게 하달된 바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미국은 2001년 한미공동조사 보고시 무초 서한의 존재를 알고도 은폐했다는 의혹에 대해 당시 미 육군 감사관실의 노근리 조사팀이 무초 대사의 서한을 검토했지만 서한 내용이 상부에 의해 승인되거나 일선 부대에 하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보고서에서 언급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미국 정부는 ‘무초 서한이 2001년 노근리 조사보고서의 결론을 바꿀 근거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음을 통보했습니다.  

한국 외교부는 30일 브리핑을 통해 한국 정부에 전달된 미국 정부의 해석에 대해  “대체로 이치에 맞는다”는 입장이라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미국 정부의 무초 서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아직 노근리 사건을 둘러싼 모든 의혹은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먼저 민간인 사격을 허용하는 내용의 정책제안을 미 8군 사령관이 집행하지 않았다는 설명은, 당시 7.25 한미 합동회의에서 민간인 사격문제가 거론됐을 여지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이는 민간인 사격 방침에 대한 제안이 있었지만 집행하달되지 않았다는 것으로, 그러한 결정이 어떤 과정으로 폐기되었는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습니다.

또한 2000년과 2001년 노근리 사건의 한미 공동조사 때 무초서한의 존재를 확인하고도 서한에 담긴 대민 사격 관련 내용이 집행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에 알리지도 않고 조사보고서에도 담지 않았다는 것은 미국 정부가 이를 의도적으로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을 아직도 강하게 제기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