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중단을 일방적으로 통보한 후, 남한의 이산가족들은 상봉이 언제 재개될 수 있을지 남북경색 국면이 풀어지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남한의 대한적십자사 한완상 총재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인도주의 입장을 고수하지 못하고 이산가족상봉 중단을 통보한 북한 적십자사에 대해 유감을 표했습니다. 

(한완상, 대한적십자사 총재) “이산가족 상봉 면회소 건설, 이런 문제는 이것이 정치 문제가 아니고 군사 문제가 아닙니다. 경제 문제도 아닙니다. 순수한 인도주의 문제이기 때문에 인도주의 문제를 시장의 논리나 정치의 논리나, 더더구나 군사 논리로 본다는 것은 잘못이고요. 이것을 초월하는 숭고한 가치입니다. 이것이 안 되는 것에 대해서 정말 안타깝습니다.”

VOA: 이산가족 문제... 정치적으로나 국제적인 상황의 대응책으로 이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남한 대한적십자사의 공식 입장이군요?

서울: 북한이 금강산 면회소 건설하는 남한 근로자에게 철수를 통보한 다음날인 지난 21일 대한적십자사 한완상 총재가 남한의 KBS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대한적십자사의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습니다. 한 총재는 인도주의 차원에서 진행되었던 한민족의 숙원사업이기도 한 이상가족 상봉이 정치적인 도구도 이용되는 것에 대해 상당한 유감을 표했었습니다.  

VOA: 이산가족 상봉을 중단한다는 북측의 전통문에 대한.. 대한 적십자사의 공식적인 답변은 없었던 것으로 아는데요. 라디오 방송을 통해 입장을 밝혔군요?

서울: 한 총재는 이날 방송에서 유감을 표하는 대한적십자사의 회신을 북측에 보낼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는데.,,, 오늘까지 그런 회신을 보내지 않은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지금은 어떤 의사를 표해도 북측이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설명이었습니다.

VOA: 북한의 이산가족상봉 중단을 통보한 당시, 남한의 대한적십자사는 815 이산가족 특별 화상상봉을 준비하고 있었지요? 현재 진행상황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요? 상봉을 기대하던 이산가족들의 문의도 많지 않았을까 합니다만....

서울: 50년 넘는 세월을 기다리다 온 기회인데, 이산가족들의 당혹스러움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북측의 전통문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 이후 대한적십자사 이산가족센터에는 이산가족들의 문의가 이어졌습니다. 상봉예정자가 직접 전화를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90대 고령이기 때문에 아들 딸 등 후세들의 전화문의가 많았다고 합니다. 대한적십자사 최영운 팀장입니다.

(최영운, 대한적십자사 이산가족정보통합센터 팀장) “그 분들이  50여년 동안 서로 소식을 모르다가 생사를 확인하고 만날날만 기다리고 계시던 분들께서 ... 이렇게 상황이 상봉이 안되는 경우가 생겨버리니까 그 분들께서 전화를 많이 주시고 계신 실정입니다.”

서울: 이산가족들의 문의에 해결책 없는 답변을 해야 하는 적십자사 직원들도 답답한 마음이었다고 하는데요. 일단 예기치 못한 상황이 일어난데 대한 충분한 설명과 이해를 얻기 위해 어제 아침 상봉대상 예정자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최영운, 대한적십자사 이산가족정보통합센터 팀장) “북측에서 요청한 300명에 대해서 생사확인 작업은 계속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늘 오전에 남측 후보자 300명에 대해서 화상상봉이 중지된 사연과 저희 적십자사에서 계속 노력하겠다는 안내문을 오늘 아침에 보냈습니다.” 

VOA: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진행된 이산가족 상봉을 정리해 보지요. 평양과 서울 금강산에서 직접 만난 것이 14차례. 그리고 지난해부터 시작된 화상상봉이 4차례 였지요?

서울: 14차례의 대면상봉과 4차례 화상상봉을 통해 남한에서는 16,400명의 이산가족이 북측가족을 만났구요. 대상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예비로 작성한 명단을 통해 36000여명이 가족의 생사를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15년전인 1985년 9월, 남북한 고향방문 및 예술공연단 서울·평양 교환 방문 이라는 이름으로  이산가족 상봉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시는 분들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당시 합의서를 바탕으로 이산가족 상봉이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를 했는데 본격적인 시작은 15년 뒤 남북정상의 만남이 있은 뒤부터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 후 북측이 내부사정으로 지연을 요청했던 3차 상봉 까지는 서울과 평양을 오가는 상봉이었고 이듬해인 2002년 4월부터는 금강산에서 순차상봉을 시작했는데 이 때도 북측은 남측의 9.11 테러관련 경계태세 강화를 이유로 5개월 동안 지연시키기도 했었습니다.

VOA: 이런 이산가족 상봉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고 기대했던 것인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였지요? 지금은 건설을 담당했던 현대아산 직원들도 대부분 철수를 한 상황인데 면회소 건물이 한창 형태를 갖추어가던 상황이었다면서요? 

서울: 지난 6월말 현재,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 건설 공정은 25% 정도 진행되었구요. 철골 구조물이 9층 정도 올라간 상태였고 내년 2007년 6월말 완공 예정이었습니다. 적십자사 관계자는 단 2박3일 정도의 짧은 만남으로 다시 이별을 해야 하는 현재의 이산가족 상봉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역사적 의미의 공사였다고 강조했습니다.

(최영운, 대한적십자사 이산가족정보통합센터 팀장) “원래 면회소는 대면상봉과 화상상봉을 통해 생사 확인된 가족들이 면회소에서 북측의 가족들과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그런 장소이기도 하고 또한 더 나아가서는 남북 가족들이 서신교환도 가능하도록 한 장소라는 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서울: 이런 상황이 빚어진대 대해. 대한적십자사 한완상 총재는 이산가족 상봉문제가 하루빨리 해결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하면서 그동안 정경분리 원칙을 강조해 왔던 북측 조선적십자사가 인도주의와 정치문제의 분리를 지키지 못하고 북한 당국을 대면했다는 것에 대해 유감을 표했습니다.

(한완상, 대한적십자사 총재) “인도주의 부분은 어떤 정치, 군사 문제와는 초월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이것을 인도주의 문제도 논의할 수 없다, 하는 것을 만약 북한 당국이 이야기한다면 조금 이해할 수 있겠는데 북한의 적십자가 여과 없이 북한 당국의 이런 강경 입장을 전달하는 것은 제 마음이, 인도주의 사업을 하는 적십자인으로서는 마음이 굉장히 안타까웠습니다.”

서울: 또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인해 쌀과 비료지원을 유보한 다는 것이 남한 정부차원의 어쩔 수 없는 대응이기도 한데 만약 국민이 공감한다면 북한 주민을 위해서는 쌀과 비료를 보내는 것도 바람직 한 일 일것이라고 밝히면서 더불어 이산가족 상봉도 조속히 재개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최영운, 대한적십자사 이산가족정보통합센터 팀장) “50년 넘게 기다리시던 북측 가족 상봉이 무한정 연기되었다는 것에 대해서 적십자사인의 한사람으로써 이산가족들에게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조속한 시일내에 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VOA: 인도주의의 문제. 이것은 어떤 국가나 인종을 구분하지 않고 인간으로서 보호받아야 하은 최소한의 권리이기도 한데 말이지요. 대한적십자사에서도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 원칙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구요? 

서울: 이번 이산가족 상봉 중단과 면회소 건설 중단 등...남북관계 전반이 경색되지 않겠는가 하는 한국사회의 일반적인 반응에 대해 그러한 흐름을 고쳐나갈 수 있는 것이 인도주의 사업의 목적이라고 다시한번 강조했습니다.

(한완상, 대한적십자사 총재) “인도주의 사업은 인간의 억울한 고통을 덜어주는 일인데, 우리 역사에서 가장 억울한 고통은 분단에서 오는 고통이고, 분단의 고통을 아주 집약적으로 농축된 것이 이산가족 고통입니다. 이산가족의 고통은 남이나 북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북쪽 적십자사가 이산가족 문제를 쉽게 중단한다고 결정해서 그쪽 이산가족들의 아픔은 어떻게 할 것인가, 걱정을 함께 하면서... 이산가족의 고통을 줄이는 것은 어떤 장애에도 불구하고 지속되어야 합니다.  그와 같은 인도주의 적인 인권적인 상황을 우리가 고려해야 한다,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쉼 없이 불가학의 논리로 우리가 추구할 것입니다.”

서울: 한편 대한적십자사 이산가족통합정보센터는 북측이 요청해온 300명의 명단으로 파악한 생사확인서를 어떤 대화통로를 통해서도 반드시 북측에 전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전해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