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7년초 미국 대법원은 흑인 노예 드레드 스코트(DRED SCOTT) 재판에서 대단히 중요한 판결을 내렸습니다.

VOICE TWO: 드레드 스코트는 미조리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팔려간 다음 노예제도가 없는 일리노이와 위스컨신주에서 살았습니다. 그로부터 4년후 그는 미조리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여러해 동안 노예가 불법인 주에서 살았음으로 자신이 자유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의회는 1820년 미조리 타협안(MISSOURI COMPROMISE)에 따라 이들 주에서 노예를 불법으로 규정했었습니다. 대법원은 의회가 통치령에서 노예제를 폐지시키는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고 판결했습니다. 대법원은 미조리 타협안은 미국 헌법을 위반하고 있으며 따라서 드레드 스코트는 자유인이 아니라고 판결했습니다.

VOICE ONE: 제임스 부캐넌(JAMES BUCHANAN) 대통령은 드레드 스코트 재판이 진행중일때 대통령에 취임했습니다. 부캐넌은 대법원 판결이 노예 문제를 둘러싼 분규를 해결해줄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는 북부든 남부든 그 판결을 노예 문제에 대한 최종 선언으로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판결은 국가를 둘로 분열시켰고 분노를 더욱 가열시켰습니다.

VOICE TWO: 캔사스(KANSAS) 통치령에서는 노예를 찬성하는 정착민들과 반대하는 정착민들 사이에 새로운 위협이 발생했습니다. 그 이전 몇년동안 양측은 첨예한 논쟁을 계속해왔습니다. 이들은 심지어 두개의 주 정부를 각각 따로 수립했습니다. 노예 찬성 세력은 사법부를 장악했습니다. 노예 반대파는 아무 권한이 없는 반대 정부를 지지했습니다. 노예제 찬성자들은 캔사스를 노예 인정 주로서 연방에 가입할수 있도록 하는 제헌회의를 구성할 것을 추진했습니다. 노예제 지지파가 주도하는 의회는 그같은 회의 창설을 인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법안은 노예제 지지자들이 회의에 나갈 대표들을 조종할수 있는 모든 수단을 제공했습니다. 또 이 법안은 제헌회의가 스스로 법규를 정할수 있는 완전한 자유를 부여했습니다. 이 법안은 캔사스 주민들이 자신들의 의사를 헌법 제정 과장에 반영할수 있는 길을 완전 봉쇄했습니다.

VOICE ONE: 캔사스의 죤 기어리(JOHN GEARY) 주 지사는 그 법안을 거부했으나 의회는 표결을 통해 즉각 그 거부를 무효화했습니다. 노예제 찬성자들은 기어리 주 지사에게 캔사스를 떠나라고 요구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떠나지 않으면 그에게 총을 쏘겠다고 말했습니다. 기어리 지사는 여러달 동안 극도의 불안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캔사스의 평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기어리 지사는 연방정부로부터 아무런 지원도 받을수 없는데 분개했습니다. 그는 부캐넌 대통령에게 사람을 보냈습니다. 기어리 지사는 캔사스 정착민 모두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강조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고 공공연하게 역설했습니다. 그는 이어 소수의 강력한 인사들이 캔사스를 노예제를 인정하는 곳으로 만들기를 바라고 있으며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내전을 일으키려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VOICE TWO: 부캐넌 대통령은 새로운 캔사스 지사를 임명했습니다. 그는 새 지사에게 노예 문제는 반드시 주민의 표결에 의해 캔사스 스스로 결정토록 하라고 다짐했습니다. 부캐넌 대통령은 또 주 승격을 위한 헌법 제정은 주민들이 찬성과 반대를 나타낼수 있는 공정한 기회를 부여받은 가운데 실시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새 지사는 1857년 5월 말에 캔사스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연설을 통해 자신의 정책을 주민들에게 설명했습니다. 그는 노예제 지지 의회가 만든 법은 시행토록 하겠다고 약속하고 다만 그 법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 모든 주민은 제헌회의에 나갈 대표자 선정 투표에 참가하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는 제헌 회의가 찬성이든 반대든 주민의 의사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는 희망을 나타냈습니다. 그는캔사스 인들이 노예제에 관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는 연방의회가 캔사스를 어떤 형태의 주로든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VOICE ONE: 제헌회의 나갈 대표자를 뽑는 투표가 6월 15일 실시됐습니다. 대부분의 노예 반대자들은 노예제를 지지하는 선거 관리 요원들에 의해 자신들의 명단이 삭제돼 있었기 때문에 투표를 하지 못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선거가 공정하지 못하다며 참여를 거부했습니다. 따라서 당선된 60명의 대의원들은 모두 노예제 지지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캔사스 주법 제정 작업을 시작하기 위해 그해 가을에 만날 계획을 세웠습니다. 대부분의 대의원들은 글을 읽거나 쓰기 어려운 못배우고 거치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캔사스를 노예 인정주로 만들자는 목표였습니다.

VOICE TWO: 대표들은 헌법상의 권한중 재산권을 어느것 보다도 강력하게 만드는 법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노예 소유가 다른 어떤 유형의 재산을 소유하는 권리와도 같은 권리를 갖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른 조항들을 다루어 나갔습니다. 하나는 노예를 자유인으로 만드는 의회의 권한을 극도로 제한한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조항은 7년 동안 헌법을 수정하지 못하도록 못박은 것이었습니다.

VOICE ONE: 대부분의 제헌회의 대의원들은 헌법 초안을 의회로 직접 보내 승인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이들은 법초안의 가부에 대해 주민들이 표결할수 있는 기회를 주기 원치 않았습니다. 이들은 노예제를 합법화한 헌법을 대부분 주민들이 반대할 것이라는 점을 알았습니다. 일부 대표들은 주민들이 직접 노예제 문제를 결정하지 않은한 연방 의회가 캔사스를 주로 받아들이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타협안을 만들었습니다.

VOICE TWO: 타협안에 따라 주민들은 노예제를 인정한 헌법과 노예제를 인정하지 않은 헌법중 하나를 택할수 있게 됐습니다. 유권자들이 노예제를 인정하는 헌법을 승인한다면 캔사스 주는 새로운 노예를 받아들이는 주가 될것입니다. 만약 노예제를 반대하는 헌법을 채택한다면 캔사스는 새로운 노예를 들여오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미 캔사스에 와있는 노예는 그대로 두도록 했습니다. 이 타협안은 캔사스의 노예 반대자들로부터 심한 항의를 받았습니다. 이들은 제헌회의 대표들이 제한적 노예제냐 제한없는 노예제냐에 대한 표결만을 하는 권한을 가졌었다고 주장했습니다.

VOICE ONE: 부캐넌 대통령은 캔사스 주민들에게 헌법에 대한 공정한 표결을 할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각료들은 그 약속을 잊어버리라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부캐넌에게 미국인들이 캔사스 문제에 진저리가 나있으며 어떠한 타결도 수용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또 헌법의 승인은 캔사스 문제를 해결할 것이며 이는 남부를 만족시키고 머지않아 북부 사람들도 이 문제를 잊어버리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같은 압박가운데 부캐넌 대통령은 자신의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는 연방의회에 노예 허용 캔사스 주 헌법을 수용하라고 요구하고 캔사스를 노예주로 만들 계획이었습니다.

 VOICE TWO: 캔사스에서는 노예문제에 대한 표결이 실시됐습니다. 대부분의 반대자들은 투표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완전한 주로 승격하는 투표를 할수 있을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불법적인 투표가 많았지만 어쨋든 캔사스 관리들은 노예제가 승인을 받았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들은 연방 의회에게 노예를 허용하는 정식주로 캔사스를 승격시켜줄 것을 서둘러 요구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안돼 부캐넌 대통령도 의회에 비슷한 멧세지를 보냈습니다. 주 승격법안에 대한 부캐넌의 가장 큰 반대자는 자신의 소속당인 민주당의 스티븐 더글라스(STEPHEN DOUGLAS) 일리노이( ILLINOIS) 상원의원이었습니다. 더글라스 의원은 노예제를 반대하지는 않았으나, 그는 통치령의 주민들이 노예 문제에 대해 스스로 결정을 내릴 권한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VOICE ONE: 더글라스 의원은 다른 민주당 의원들과 노예 반대 공화당원들을 결집시켜 상원에서 법안 반대 투쟁을 벌였습니다. 상원은 캔사스를 노예제를 불법으로 하는 주로 승격시키는 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그러나 하원은 이를 부결시켰습니다. 그 대신 캔사스 주민들이 다시 한번 주 헌법에 대한 투표를 하도록 하는 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렇게 되자 상원은 하원안과의 절충안을 통과시켰습니다.

VOICE TWO: 따라서 캔사스 주민들은 노예제 찬성 헌법을 원치않는다는 자신들의 의사를 나타낼수 있는 도 한번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들은 투표를 해 큰 표차로 헌법을 거부했습니다. 노예제를 지지하는 주 헌법은 이제 사장됐습니다. 캔사스는 앞으로도 몇년동안 통치령 상태로 더 기다려야 주로 승격될수 있었으나 더 이상 노예 허용주로 만들려는 시도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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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LY IN EIGHTEEN-FIFTY-SEVEN, THE SUPREME COURT OF THE UNITED 
STATES ANNOUNCED ONE OF ITS MOST IMPORTANT DECISIONS.  THE 
DECISION WAS MADE IN THE CASE OF DRED SCOTT, A NEGRO SLAVE. 
 
THIS IS LEO SCULLY.  AND TODAY,HARRY MONROE AND I TELL ABOUT 
THIS RULING, AND THE CONTINUING NATIONAL DISPUTE OVER SLAVERY. 
 
VOICE TWO: 
 
DRED SCOTT LIVED IN MISSOURI, WHERE SLAVERY WAS LEGAL.  THEN HE 
WAS SOLD TO A MAN WHO TOOK HIM TO ILLINOIS AND WISCONSIN, WHERE 
SLAVERY WAS NOT LEGAL.  AFTER FOUR YEARS, HE WAS RETURNED TO 
MISSOURI.  DRED SCOTT DEMANDED HIS FREEDOM, BECAUSE OF THE YEARS
 
HE HAD SPENT IN PLACES WHERE SLAVERY WAS ILLEGAL.  CONGRESS HAD 
BANNED SLAVERY IN THOSE PLACES UNDER THE MISSOURI COMPROMISE ACT
 
OF EIGHTEEN-TWENTY. 
 
 
THE SUPREME COURT RULED THAT CONGRESS DID NOT HAVE THE POWER TO 
CLOSE TERRITORIES TO SLAVERY.  IT SAID THE MISSOURI COMPROMISE 
 
WAS A VIOLATION OF THE UNITED STATES CONSTITUTION, AND THAT DRED
 
SCOTT WAS NOT A FREE MAN. 
 
VOICE ONE: 
 
JAMES BUCHANAN WAS SWORN-IN AS PRESIDENT AT THE TIME OF THE DRED
 
SCOTT CASE.  BUCHANAN BELIEVED THE SUPREME COURT'S DECISION
WOULD 
PUT AN END TO THE DISPUTE OVER SLAVERY.  HE BELIEVED THAT 
AMERICANS -- NORTH AND SOUTH -- WOULD ACCEPT THE DECISION AS THE
 
FINAL WORD IN THE DISPUTE. 
 
THIS DID NOT HAPPEN.  THE DRED SCOTT DECISION DID NOT CALM THE 
STORM THAT DIVIDED THE NATION.  INSTEAD, IT INCREASED ITS FURY. 
 VOICE TWO: 
 NEW TROUBLE THREATENED TO BREAK OUT IN THE TERRITORY OF KANSAS 
BETWEEN PRO-SLAVERY AND ANTI-SLAVERY SETTLERS.  IN THE PAST FEW 
YEARS, THE TWO SIDES HAD ARGUED AND FOUGHT OVER THEIR OPINIONS. 
THEY EVEN HAD FORMED TWO SEPARATE GOVERNMENTS.  THE PRO-SLAVERY 
FORCES CONTROLLED THE LEGAL GOVERNMENT.  THE ANTI-SLAVERY FORCES
 
CONTROLLED AN OPPOSITION GOVERNMENT WHICH HAD NO POWER. 
 
SUPPORTERS OF SLAVERY WANTED TO ORGANIZE A CONSTITUTIONAL 
CONVENTION THAT COULD PUT KANSAS INTO THE UNION AS A SLAVE
STATE. 
THE PRO-SLAVERY LEGISLATURE PASSED A BILL CALLING FOR SUCH A 
CONVENTION. 
 
THE BILL GAVE SUPPORTERS OF SLAVERY EVERY CHANCE TO CONTROL THE 
ELECTION OF DELEGATES TO THE CONVENTION.  AND IT GAVE THE 
CONVENTION COMPLETE FREEDOM TO MAKE ITS OWN RULES.  THE BILL 
PROVIDED NO WAY FOR THE PEOPLE OF KANSAS TO VOTE ON THEIR OWN 
CONSTITUTION. 
  
VOICE ONE: 
THE GOVERNOR OF THE KANSAS TERRITORY, JOHN GEARY, VETOED THE 
BILL.  BUT THE LEGISLATURE QUICKLY OVER-RULED HIS VETO. 
PRO-SLAVERY MEN CALLED FOR GEARY TO GET OUT OF KANSAS.  SOME 
TALKED OF SHOOTING HIM IF HE DID NOT LEAVE. 
 
GOVERNOR GEARY HAD BEEN LIVING UNDER EXTREME TENSION FOR MONTHS.
 
HE HAD WORKED HARD TO KEEP KANSAS PEACEFUL.  HE WAS ANGRY, 
BECAUSE HE COULD GET NO HELP FROM THE FEDERAL GOVERNMENT.  HE 
SENT HIS RESIGNATION TO PRESIDENT BUCHANAN. 
 
THEN THE FORMER GOVERNOR SPOKE PUBLICLY.  HE SAID MOST OF THE 
SETTLERS IN KANSAS WERE PEACE-LOVING PEOPLE.  HE SAID ONLY A 
SMALL GROUP WAS RESPONSIBLE FOR THE TROUBLE THERE.  GEARY SAID A
 
FEW POWERFUL MEN HOPED TO MAKE KANSAS A SLAVE STATE.  IF THIS 
FAILED, GEARY SAID, THEY HOPED THEIR ACTIONS WOULD PRODUCE CIVIL
 WAR. 
 VOICE TWO: 
 PRESIDENT BUCHANAN APPOINTED A NEW GOVERNOR FOR KANSAS. 
BUCHANAN 
TOLD HIM THAT SLAVERY IN THE TERRITORY MUST BE DECIDED ON THE 
VOTES OF THE PEOPLE OF THE TERRITORY.  AND HE SAID THE PEOPLE 
MUST BE GIVEN A FAIR CHANCE TO APPROVE OR REJECT A CONSTITUTION 
FOR STATEHOOD. 
 
THE NEW GOVERNOR ARRIVED IN KANSAS AT THE END OF MAY, 
EIGHTEEN-FIFTY-SEVEN.  HE EXPLAINED HIS POLICIES IN A SPEECH TO 
THE PEOPLE OF KANSAS.  THE NEW GOVERNOR PROMISED TO ENFORCE THE 
LAWS OF THE PRO-SLAVERY LEGISLATURE...BUT ONLY THOSE LAWS WHICH 
WERE CONSTITUTIONAL.  HE URGED EVERYONE TO VOTE IN THE COMING 
ELECTION OF DELEGATES TO THE CONSTITUTIONAL CONVENTION. 
 
HE SAID HE WAS HOPEFUL THAT THE CONVENTION WOULD OFFER ITS 
CONSTITUTION TO THE PEOPLE FOR THEIR APPROVAL OR REJECTION.  HE 
ADDED THAT CONGRESS WOULD NOT ACCEPT KANSAS AS A SLAVE STATE, OR
 
A FREE STATE, UNTIL THE PEOPLE HAD VOTED ON THE QUESTION OF 
SLAVERY. 
 
VOICE ONE: 
 
ON JUNE FIFTEENTH, THE ELECTION WAS HELD FOR DELEGATES TO THE 
CONSTITUTIONAL CONVENTION.  MOST ANTI-SLAVERY MEN DID NOT VOTE, 
BECAUSE THEIR NAMES HAD BEEN KEPT OFF THE VOTING LISTS BY 
PRO-SLAVERY OFFICIALS.  OTHERS REFUSED TO VOTE, BECAUSE THEY 
BELIEVED THE ELECTION WAS UNFAIR. 
 
SIXTY DELEGATES WERE ELECTED.  ALL SUPPORTED SLAVERY.  THEY 
PLANNED TO MEET IN THE AUTUMN TO BEGIN WORK ON A CONSTITUTION
FOR 
KANSAS. 
 
MOST OF THE DELEGATES WERE WILD, ROUGH MEN WHO FOUND IT
DIFFICULT 
TO READ AND WRITE.  BUT THESE MEN WERE SURE OF ONE THING.  THEY 
WANTED KANSAS TO BE A SLAVE STATE. 
  
VOICE TWO: 
 
THE DELEGATES BEGAN THE CONSTITUTION BY CLAIMING THAT THE RIGHT 
OF PROPERTY WAS HIGHER THAN ANY CONSTITUTIONAL POWER.  THEY SAID
 
A SLAVE-OWNER HAD AS MUCH RIGHT TO HIS PROPERTY AS THE OWNER OF 
ANY OTHER KIND OF PROPERTY. 
 
THEN THEY WROTE THE DIFFERENT PARTS OF THE DOCUMENT.  ONE PART
OF 
THE CONSTITUTION SEVERELY LIMITED THE RIGHT OF THE LEGISLATURE
TO 
FREE SLAVES.  ANOTHER PART BARRED FREE NEGROES FROM ENTERING 
KANSAS.  AND ANOTHER PREVENTED THE CONSTITUTION FROM BEING 
CHANGED FOR SEVEN YEARS. 
 
VOICE ONE: 
 
MOST OF THE DELEGATES TO THE KANSAS CONSTITUTIONAL CONVENTION 
WANTED TO SEND THE DOCUMENT DIRECTLY TO CONGRESS FOR APPROVAL. 
THEY DID NOT WANT TO GIVE THE PEOPLE OF KANSAS A CHANCE TO VOTE 
ON IT.  THEY WERE SURE THAT THE MAJORITY OF THE POPULATION WOULD
 
REJECT A CONSTITUTION THAT MADE SLAVERY LEGAL. 
 
SOME DELEGATES, HOWEVER, KNEW THAT CONGRESS WOULD NOT APPROVE 
STATEHOOD FOR KANSAS UNLESS THE PEOPLE VOTED ON THE
CONSTITUTION. 
THE TWO SIDES FINALLY AGREED ON A COMPROMISE. 
 
VOICE TWO: 
 
THE CONSTITUTION ITSELF WOULD NOT BE OFFERED TO THE PEOPLE. 
INSTEAD, THE PEOPLE WOULD VOTE ONLY ON THE QUESTION OF SLAVERY. 
THEY COULD VOTE FOR THE CONSTITUTION WITH SLAVERY OR THE 
CONSTITUTION WITHOUT SLAVERY. 
 
IF THE VOTERS APPROVED THE CONSTITUTION WITH SLAVERY, THEN
KANSAS 
WOULD BE OPEN TO NEW SLAVES.  IF THEY APPROVED THE CONSTITUTION 
WITHOUT SLAVERY, THEN KANSAS WOULD BE CLOSED TO NEW SLAVES. 
SLAVES ALREADY IN THE TERRITORY COULD BE KEPT THERE. 
 
THIS COMPROMISE BROUGHT A CRY OF ANGER FROM OPPONENTS OF SLAVERY
 
IN KANSAS.  THEY SAID THE CONSTITUTIONAL CONVENTION HAD ONLY 
GIVEN THEM THE RIGHT TO VOTE FOR LIMITED SLAVERY OR UNLIMITED 
SLAVERY.  IT HAD NOT GIVEN THEM THE RIGHT TO VOTE FOR FREEDOM. 
 
VOICE ONE: 
 
PRESIDENT BUCHANAN HAD PROMISED THE PEOPLE OF KANSAS THAT THEY 
WOULD HAVE A FAIR CHANCE TO VOTE ON THEIR CONSTITUTION.  BUT 
MEMBERS OF HIS CABINET TOLD HIM TO FORGET THIS PROMISE. 
 
THEY SAID AMERICANS WERE TIRED OF THE DISPUTE IN KANSAS AND
WOULD 
ACCEPT ANY SETTLEMENT.  THEY TOLD BUCHANAN THAT APPROVAL OF THE 
CONSTITUTION WOULD END THE KANSAS PROBLEM.  IT WOULD SATISFY THE
 
SOUTH, THEY SAID, AND THE NORTH WOULD SOON FORGET ABOUT KANSAS. 
 
UNDER THIS PRESSURE, PRESIDENT BUCHANAN MADE HIS DECISION.  HE 
WOULD ASK CONGRESS TO ACCEPT THE PRO-SLAVERY KANSAS CONSTITUTION
 
AND MAKE THE TERRITORY A SLAVE STATE. 
 
VOICE TWO: 
 
IN KANSAS, THE VOTE ON SLAVERY WAS HELD.  MOST OPPONENTS OF 
SLAVERY DID NOT VOTE.  THEY WERE WAITING UNTIL THEY COULD VOTE 
AGAINST THE COMPLETE STATEHOOD CONSTITUTION. 
 
MANY OF THE VOTES WERE ILLEGAL.  STILL, KANSAS OFFICIALS
DECLARED 
THAT SLAVERY HAD BEEN APPROVED.  THEY URGED CONGRESS TO MAKE 
KANSAS A STATE UNDER THIS CONDITION.  SHORTLY AFTER, PRESIDENT 
BUCHANAN SENT CONGRESS A SIMILAR MESSAGE. 
 
BUCHANAN'S CHIEF OPPONENT ON THE STATEHOOD BILL WAS A MEMBER OF 
HIS OWN DEMOCRATIC PARTY, SENATOR STEPHEN DOUGLAS OF ILLINOIS. 
DOUGLAS DID NOT OPPOSE SLAVERY.  BUT HE BELIEVED THAT THE PEOPLE
 
OF A TERRITORY HAD THE RIGHT TO MAKE THEIR OWN DECISION TO
ACCEPT 
OR REJECT SLAVERY. 
 
VOICE ONE: 
 
STEPHEN DOUGLAS UNITED OTHER DEMOCRATS AND MEMBERS OF THE 
ANTI-SLAVERY REPUBLICAN PARTY TO FIGHT AGAINST THE BILL IN THE 
SENATE.  HE LOST.  THE SENATE APPROVED THE BILL TO MAKE KANSAS A
 
STATE WHERE SLAVERY WAS LEGAL. 
 
THE HOUSE OF REPRESENTATIVES, HOWEVER, REJECTED THE BILL. 
INSTEAD, IT APPROVED A BILL TO LET THE PEOPLE OF KANSAS VOTE 
AGAIN ON THEIR STATEHOOD CONSTITUTION.  THE SENATE APPROVED A 
COMPROMISE VERSION OF THIS HOUSE BILL. 
 
VOICE TWO: 
 
SO THE PEOPLE OF KANSAS GOT ANOTHER CHANCE TO SHOW THAT THEY DID
 
NOT WANT A PRO-SLAVERY CONSTITUTION.  THEY VOTED AND REJECTED
THE 
CONSTITUTION BY A LARGE MAJORITY. 
 
THE PRO-SLAVERY STATEHOOD CONSTITUTION WAS DEAD.  KANSAS WOULD 
CONTINUE AS A TERRITORY FOR A FEW MORE YEARS.  BUT THERE WOULD
BE 
NO FURTHER ATTEMPT TO MAKE IT A SLAVE ST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