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주 대륙의 영국 식민지 13개주가 발표한 독립선언이 1776년 7월4일 대륙회의에서 공식 승인됨으로써 신대륙 미국이 식민통치자 영국으로부터 정치적 유대를 단절하고 신생 독립국가로 출발한지 올해로 230년이 됩니다. 미국의 독립선언은 그 역사적 중요성을 넘어서 선언문의 감동적인 표현들의 힘은 도리어 계속해서 커지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미국 독립 기념일, 7월4일의 의미를 되새겨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그들의 창조주로부터 생명과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명백한 양도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다는 진실을 지켜나갈 것입니다."

이 문구는 미국 독립선언문 내용 가운데 중요한 부분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문구를 포함 한 미국 독립선언문은 230년전 당시 서른 세 살의 독립운동 지도자, 토마스 제퍼슨이 작성한 것으로 1776년 7월4일 대륙회의에서 승인됐습니다. 그러나 당시 미국 독립선언문은 전쟁을 선포하는 것도 아니었고 영국 식민통치로부터 미국의 독립 출발을 뜻하는 것도 아니었다고 버나드 대학교 허버트 슬로안 역사교수는 지적합니다.

그 것은 이 독립선언문이 공식 승인되기 이전에 미국은 이미 독립국가로서 행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미국은 1776년 7월4일까지 독립국가로서 행동하는 것을 기다리지 않았었다는 것입니다. 그보다 1년 몇 개월 앞서 영국 군주에 대항하는 실질적인 내전이 진행되고 있던 가운데 독립선언이 공식 승인된 7월4일은 당시 식민지인들이 더 이상 돌아설 수 없고 화해를 위한 희망을 더 이상 갖지 않고 있음을 선언을 공포한 날이었다고 슬로안 교수는 해석합니다.

그 것은 ‘우리가 말하면, 그렇게 될 뿐이다.’ 라는 의미이며 독립약속을 실천하고 이 같은 극히 진지한 의지를 세계 다른 지역에 알리기로 서명한 13개주 사람들의 실질적 행동이었다는 것입니다. 미국인들은 그 이래 줄곧 자유에 대해 극히 진지했다고 컬럼비아 대학의 에릭 포너 역사교수는 말합니다.

자주독립과 자유는 미국의 역사를 통해 국가적 슬로건이 되어 왔으며 링컨 대통령이 남북전쟁때 선포한 새로운 자유나, 루즈벨트 대통령이 제2차 세계대전때 선포한 표현과 종교의 자유,빈곤과 공포로부터의 자유 등 4개 자유이던 간에 똑 같은 맥락의 자유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죠지 부시 현 대통령이 자유의 이상을 펴기위해 일부 군사적 모험을 감행한 군사개입을 ‘이라크자유작전’이라고 선포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미국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기 위한 오랜 관행의 하나라고 포너 교수는 지적합니다. 

 한편, 버나드 대학교의 허버트 슬로안 교수는 미국은 많은 다른 나라들과 달리 미국 독립의 기원을 군사적 승리과 연관시키지 않ㄴ느다고 말합니다. 미국의 독립선언이 1776년에 공식승인되기는 했어도 영국의 항복을 가져온 군사적 승리는 그로부터 6년 남짓 지난뒤에야 성취됐음을 슬로안 교수는 상기합니다.

미국 건국 창시자의 한 사람인 죤 아담스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중요한 것은 군사적인 부분이 아니라 개혁으로서 1775년 이전 아메리카인들의 정신과 마음 속의 개혁이다.’라고 강조한 점이라는 것입니다. 미국인들에겐 독립출범 이래 7월월4일이 자유를 상징하는 기념일로 되어왔지만 독립기념일이 연방 국경일로 공식 제정된 것은 거의 백년이 지난 1870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때까지 7월4일은 자유의 상징으로서 여 러 가지 그리고 의외의 방식으로 미국인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미국 웨스트포인 육군사관학교, 로버트 맥도널드 교수는 1800년대 미국의 사상가이자 저술가인 헨리 데이빗 소로의 역할을 지적합니다.  소로는, 1845년 7월 4일에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는데 그의 저서 월든의 배경인 월든 호숫가에 독립기념일에 오두막을 지은 것은 그저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치열한 경쟁사회로부터 자신의 개인적인 독립을 선언한 것이었다고 맥도널드 교수는 설명합니다.

그런가 하면 1881년 7월4일에는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유별낫던 앨라바마주에서 전노예들에 관한 트스키지지 기념관이 설립된 것도 독립기념일이 또 다른 자유의 상징임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19세기에 들어서는 7월4일이 애국적인 그리고 정치적 연설의 기회가 되고 했습니다. 그런 연설중 어떤 것들은 굉장히 분노에 찬것이기도 했습니다.

1852년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 노예제도 폐지 운동가였던 프레드릭 더글라스의 ‘흑인들에 대한 7월4일의 의미’라는 연설이 그런 연설 가운데 하나입니다. ‘미국의 자유의 이야기’ 저자인 에릭 포너 컬럼비아 대학 교수는 당시 ‘오늘이라는 말은 백인 미국의 날이었다고 지적했습니다. 프레드릭 더글라스는 흑인들에겐 7월4일이 미국인들의 위선의 날이라고 지적하면서 백인들을 향해 당신들은 자유에 관해 얘기하지만 300만 명 이상의 미국인들을 아직도 노예로 삼고 있지 않느냐고 물으면서 이런 것이 도대체 무슨 형태의 자유냐고 질책했던 것입니다.

그 후 노동조합 단체는 7월4일을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인상을 위한 이른바 근로자들을 위한 독립선언의 날로 삼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독립기념일은 해외에서도 강한 상징이 되어왔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식후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식민지 해방운동이 전개되면서 미국은 제국주의의 멍에를 벗어던진 최초의 국가로 칭송받곤 했습니다. 심지어 공산주의 지도자 호치민도 1945년에 베트남의 독립을 선언하면서 그의 조국을 강점하고 있던 프랑스에 대한 혁명운동의 정당성을 미국의 독립과정에 두고 강조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날 많은 미국인들은 7월4일을 일종의 애국적인 성격의 추수감사절처럼 조용한 가운데 보내고 있기도 합니다. 다시 웨스트 포인트 육군사관학교, 맥도널드 교수는 7월4일이 의미하는 원칙들이 가벼이 여겨진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인들은 이 날을 맞아 가족들과 친지들과 그리고 지역사회 공동체의 여러 이웃들과 함께 집뜰에서 고기, 바베큐를 구워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누어 먹으며 미국 독립의 또 한 가지 상징인 불꽃놀이를 즐기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맥도널드 교수는 어쩌면 이 같은 방식으로 7월4일을 보내는 것이야 말로 자유로운 사람들이 진정으로 삶을 향유하는 방식일런지 모른다고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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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fourth is Independence Day in the United States, a day when Americans commemorate the signing, in 1776, of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a document that formally severed political ties with Britain, then America's colonial ruler.

"We hold these truths to be self-evident,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that they are endowed by their Creator with certain unalienable Rights, that among these are Life, Liberty and the pursuit of Happiness."

Those words, written by a 33 year-old activist named Thomas Jefferson and published by the Continental Congress on July 4th, 1776, are but a few the significant phrases in America's Declaration of Independence. Barnard College history professor Herbert Sloan  reminds us that it was neither a declaration of war nor even the beginning of American independence from the British crown.

"It's not as if we were waiting for July 4, 1776 to act as an independent country. For the previous year and a quarter or so, there had been an active civil war against the British overlord going on," he says. " July 4, 1776 is the moment when there is the official statement that there is no turning back; we're not going to hope any more for a reconciliation."

In a sense,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represented "a kind of a wishful thinking that 'if we say it is so, it will be so!'" Sloan says. "It was an investment by those who signed it to actually make good on the promise of independence and to let the rest of the world know 'we're extremely serious about this.'"

And Americans ever since have been extremely serious about freedom, says historian Eric Foner, of Columbia University, and the author of The Story of American Freedom

"Liberty and freedom have been rallying cries throughout our history, whether it's 'a new birth of freedom' of Lincoln in the Civil War, or 'The Four Freedoms' of Roosevelt in World War II," Foner says. "It's no accident, that President Bush gave the name 'Operation Iraqi Freedom' to the war in Iraq because somehow associating a military venture with the ideal of freedom is a time-honored way of mobilizing popular support for that effort."

Herbert Sloan notes that unlike many nations, the United States does not link its origins to a military victory. In 1776, when independence was declared, the British surrender was more than six years off.

He says that founding father "John Adams is famous for saying it wasn't the military part that mattered but it was 'the change,' as he put it, 'in the hearts and minds of Americans before 1775. That was the real revolution.'"

While July 4th has been American freedom's symbolic anniversary since its founding, the U.S. Congress did not make Independence Day a federal holiday until 1870. By then, says Robert McDonald, a Jefferson scholar who teaches at the United States Military Academy at West Point, the date had already come to symbolize freedom in unanticipated ways.

"Henry David Thoreau walked out to Walden Pond and set up camp on July 4, 1845. That was no coincidence," McDonald says. "He was declaring his personal independence from the 'rat race' then going on. And The Tuskegee Institute for the education of former slaves opened in Alabama on July 4, 1881."

In the 19th century, July 4th was often a day for patriotic and political speeches - some of them quite angry. Eric Foner points to an 1852 address by the great African American orator and ex-slave, Frederick Douglass entitled "The Meaning of July Fourth for the Negro."  

"In effect," says Foner, "Douglass said 'this day is white America's day. To black people, July 4th is a symbol of American hypocrisy. You talk about freedom, and yet you hold over three million Americans in slavery. What kind of freedom is this?'" Later on, the labor movement would pick up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in the movement for shorter hours or higher wages."

American Independence Day has also been a powerful symbol abroad. For example, during the decolonization of Asia and Africa following World War II, America was often praised as the first nation to throw off the imperial yoke. Even Ho Chi Minh, the communist leader, modeled Vietnam's 1945 Declaration of Independence on the American one, declaring it to be, in effect, a justification for revolution against the French occupation of his homeland.

But Robert McDonald likens July 4th to a sort of patriotic Thanksgiving, best savored in a tranquil mode. "July 4th marks the ratification of the document that celebrated not death and war, but life and liberty and the pursuit of happiness," McDonald says.

Despite the solemn principles embodied in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McDonald believes its commemoration should be joyful. "I think it's somewhat appropriate that Americans gather together with family and friends and other members of the community and shoot off fireworks and have backyard barbeques." Professor McDonald suggests that that is what being a free person may really be all about - celebrating life -- and giving thanks to all those who've contributed to our freed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