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점령한 프랑스에 근무하면서 국무부의 방침을 어기고 수 많은 유대인들의 생명을 구한 미국 외교관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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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당시 수많은 유대인을 구한 독일인 기업가 `쉰들러'에 비유할 수 있는 이 외교관의 이름은 해리 빙햄입니다. 미 연방정부는 빙햄씨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달에 그의 얼굴을 담은 우표를 발행했습니다.  그가 국무부의 방침에 반발해 사표를 내고 물러난 지 꼭 60년 만에 빙햄씨의 업적을 미국민들에게 널리 공표한 것입니다.

지난달 말 미 국회의사당에서는 의회 의원들과 국무부 관계자, 그리고 그가 구한 유대인 생존자 및 그 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그를 기리는 우표 발행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빙햄씨는 1939년에 국무부 외교관으로 프랑스 마르세이유에 부영사로 파견됐습니다. 이후 곧바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자 유대인 등 수많은 현지인들이 나치 독일의 박해를 피해 도피에 부심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미국으로의 이주를 희망하는 난민이 넘쳐나자 미 국무부는 해외에 파견된 영사들에게 미국행을 허용하는 난민 수를 최대한 적게 하도록 지침을 내렸습니다.

빙햄씨는 이같은 지침을 정면으로 어기고 2천명이 넘는 유대인들의 탈출을 도왔습니다. 그가 한 일은 당시 난민들의 곤경에 우려한 미국인들이 결성한 비상구호위원회 관계자들이 자신의 집에서 활동하도록 주선하고, 또 히틀러가 체포를 명령한 난민들을 자신의 집에 숨어 지내도록 했습니다. 특히 2천여명 유대인 난민들에게 프랑스를 떠날 수 있도록 비자와 여행증명서 등을 발급해 주었습니다. 이들 증명서 가운데는 일부 가짜도 들어있었습니다. 미국 정부가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빙햄씨는 이 과정에서 유명한 소설가인 라이언 푸트와그너씨가 나치의 감시망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그를 여자로 변장하게 한 뒤 검문소에서는 자신의 장모라고 속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가 도운 사람들 가운데는 유명한 화가인 샤갈,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 노벨상을 수상한 생화학자 오토 마이어프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빙햄씨의 활동은 오래가지 않아 나치 독일의 감시망에 포착됐고 독일은 미국에 강력히 항의했습니다. 그러자 미 국무부는 빙햄씨를 포르투칼로 전출하고 이어 다시 아르헨티나로 옮겨 근무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빙햄씨는 아르헨티나가 나치 독일 전범들과 그들의 재산의 안전한 은닉처로 이용되고 있는 것을 알고는 이번에는 이에 대한 조사에 나섰습니다.

빙햄씨의 이런 활동에 대해 미 국무부는 중단을 지시했고 그러자 빙햄씨는 반발해 사표를 내고 고향인 코넷티컷주로 돌아갔습니다. 그가 사표를 낸 시점은 편안한 노후생활을 위한 연금 수혜를 불과 4년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빙햄씨는 유대인을 도운 것에 그치지 않고 나치 독일의 전범들을 처벌하는데도 큰 관심을 갖고 직접 나선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빙햄씨는 1988년 85살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자신이 한 일을 가족들에게도 철저히 비밀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사망한 지 8년 뒤인 1996년에 그의 아들이 집안 창고를 정리하던 중 상자 속에 담겨진 아버지의 오래된 자료들을 발견했습니다. 이 가운데는 손녀 딸이 학교숙제로 만든 녹음테이프도 있었습니다.

빙햄씨는 이 테이프에서 손녀딸에게 "당시 나의 상관이던 총영사는 독일이 이번 전쟁에서 이길텐데 그들을 자극하는 일을 왜 하느냐고 말했다'면서 상관들이 자기가 하는 일을 알았다면 분명히 승인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같은 자료가 공개되면서 그의 도움으로 살아남은 유대인 생존자들과 그들의 가족 수천여명이 빙햄을 기리는 사업을 벌이도록 미 연방정부에 청원했고 그 결과 미국 정부는 결국 그의 사후 18년 만에 그의 얼굴을 담은 기념우표를 발행하게 된 것입니다. 

미국 정부는 이보다 앞서 4년 전인 2002년 콜린 파월 당시 국무장관이 빙햄씨를 `건설적인 반대'를 한 외교관으로 지정해 그에게 특별상을 수여했습니다. 나치의 유대인 대량학살연구소의 데이비드 와이먼 소장은 "빙햄씨는 우리가 아는 유일한 미국 외교관"이라면서 "그는 자신의 직업을 희생하면서까지 나치의 대량학살로 부터 유대인들을 구해냈다"고 말했습니다.

빙햄씨는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의 명문가 출신입니다. 부친은  1911년에 페루 마추비추의 잉카 유적지를 발굴한 유명한 고고학자로, 나중에 코넷티컷주 주지사에 이어 공화당 소속으로 연방 상원의원을 지냈습니다. 빙햄씨는 1903년에 태어나 예일대학과 하바드대 법대를 졸업한 후 미 국무부에 들어갔습니다.

빙햄씨의 아들 로버트 빙햄씨는 부친에 대해 "겸손하고 신앙심이 깊은 분이었다"면서 "아버지께서 자신이 한 일이 지금처럼 세상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을 안다면 매우 당혹해 하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로버트씨는 그러면서 자신의 가족들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이 세상을 좀더 인간적이고 사랑이 넘치는 곳으로 만드는 일에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해 아버지가 한 일을 세상에 알리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