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부터 93년 사이에 남북조절위원회 서울 측 대변인, 남북 총리간 대화를 위한 실무접촉 대표, 남북고위급회담 정치 분과위원회 남한 측 위원장 겸 대변인, 남북고위급 회담 대표 등을 맡으며 오랜기간 남북간 협상 과정에 참여했던 북한민주화포럼 이동복 대표는 “최근 북한 땅으로부터 여러 가지 비정상적인 현상에 관한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인터뷰1] 최근 북한 땅으로부터는 여러 가지로 비정상적인 현상에 관한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북한의 곳곳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의 10대 거짓말” 내용을 담은 삐라가 살포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일본 도쿄의 고서점가에 ‘김정일 장군님의 비밀지시문’이 나돌더니 얼마 뒤에는 “‘김정일 장군님의 비밀지시문’의 유출을 단속하라”는 내용의 또 하나의 ‘김정일 장군님의 비밀지시문’이 나도는 것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대표는 “북한은 내부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밖에서는 물론 안에서도 아무도 알 수 없게 비밀의 장막에 가려진 암흑의 나라”라면서 이런 “이상한 나라 북한에 무언가 이상한 일이 생기지 않느냐는 이야기가 유포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계속해서 이동복 대표는 “북한 동포들 사이에서는 김정일을 소재로 하는 우스개 소리가 많이 돌아다닌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인터뷰2] “요즘 몸 났구먼”이라고 인사를 하면 “그래, 장군님 덕에 몸 좀 났지” 하는 대꾸가 돌아와 폭소판이 벌어진다는 이야기도 있고 “장군님은 언제까지나 숨어 다니고 인민들은 언제까지나 ‘장군님은 어디 계시냐’고 찾아다닌다”는 말도 돌아다닌다고 하며 누군가가 “장군님은 위대하다”고 하면 다른 누군가가 “맞다. 악독한 왜놈 세상을 몰아내고 악독한 왜놈보다 더 악독한 세상을 가져다주었으니까 장군님은 위대하다”고 받아친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합니다.

북한 동포들이 “단둘이 만나 대화할 때 ‘배불뚝이’니 하는 비속어로 김정일을 비아냥하는 말을 함으로 해서 서로 친밀감을 확인한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합니다.

이동복 대표는 들리는 이야기라고 전제하면서 “북한 사회에 한국산 텔레비전 연극물의 비디오테이프가 큰 인기”라고 말했습니다.

[인터뷰3] 들리는 이야기로는 지금 북한 동포사회에서는 한국산 텔레비전 연극물의 비디오테이프가 큰 인기라고 합니다. 이들 테이프들은 중국에서 만들어진 해적판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북한으로 들어가고 북한 동포들은 밧데리 발전으로 이 테이프들을 시청한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남쪽 텔레비전 연극들을 많은 북한 동포들이 시청한 결과 북한 동포들의 생각에도 많은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있다고 이 대표는 말했습니다.

이동복 대표는 “이 같은 이야기들이 사실이기를 진정으로 바란다”면서 이를 통해 북한 동포들의 생각에 변화가 생겨 1989년 루마니아의 민주화혁명을 이끌었던 라스즐로 토케스라 목사가 북한 땅에도 환생하기를 소망했습니다.

[인터뷰4] 북한 동포 여러분, 이러한 이야기들이 사실일까요? 저는 이 같은 이야기들이 사실이기를 진정으로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북한 동포 여러분의 생각에 많은 변화가 생기고 그 변화 속에서 1989년 루마니아의 티미소아라에서 차우세스쿠 타도의 거대한 물결을 일으켰던 라스즐로 토케스 목사가 북한 땅으로 환생하는 이변이 일어났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을 가져 봅니다.

한편 이동복 대표는 1990년대 초 ‘남북 고위급회담’남측 대표 겸 대변인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했을 숙소로 사용했던 영빈관 ‘백화원’에서 겪었던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인터뷰5] 북측 대표단의 한 구성원이었던 이 북한 동포는 “백화원 내부에서는 모든 대화가 도청된다”면서 저를 연못가의 덤불 속으로 끌고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그는 느닷없이 “남쪽에서 학생들이 데모를 하느냐”고 묻고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 학생들을 북반부로 보내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왜 그러느냐”고 묻자 그는 “그 학생들이 북에 와서 사흘만 있어 보면 생각들이 달라질 것”이라고 대꾸했습니다.

이 대표는 북측 대표단의 다음 말이 더 충격적이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김일성.김정일 두고 “우리는 두 사람의 김(金)가 때문에 모두 죽게 생겼다”고 말해 이 대표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 “황당한 추억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인터뷰6] 저는 얼른 “이제 멀지 않은 장래에 우리 민족에게 통일이라는 좋은 날이 올 터인데 그 때까지는 우리 모두가 살아남는 것이 필요하니까 그 동안은 자중자애합시다”라는 말로 그를 달랬었습니다. 황당한 추억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보내드린 탈북자 통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