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에 조부가 중국으로 이주해 연변에서 태어난  한인 3세로, 신앙심이 깊었던 어머니로 부터 기독교 신앙을 전수받아 기독교 전도사가 되어 10여년간 2003년까지  현지 조선족들의 신앙생활을 이끌었으나, 밀려드는 탈북자들의 구명호소를 외면하지 못해 결국 중국당국에 의해 구속영장이 발부된 상태에서 한국에 입국해 현재 망명을 신청하고 있는 김우전도사의  안타까운 사연을 서울에 있는 [정세진]탈북자 통신원이 전해드립니다.

 

[인터뷰1] “93년 12월 15일에 삼자교회로 저희 교회가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000년도에는 연변 조선족 자치주 종교국 국장이 친히 저희 교회에 와서 저희 교회에다가 인민폐 50만원을 투자해서 큰 예배당을 지어 주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사실 저도 연변에서는 아주 화려한 예배당에서 아주 멋있는 사역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당시 북한에 식량난이 심해지면서 중국으로 끊임없이 넘어오는 탈북자들 때문이었습니다.

[인터뷰2] “그렇지만 그때 당시에는 그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매일매일 저희 교회로 찾아오는 탈북자들 때문이었습니다.”

탈북자들이 늘어나면서 중국 정부의 단속이 시작됐고 탈북자를 돕는 단체나 사람들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자 옌지시 교회의 교인들의 태도도 변했다고 합니다.

[인터뷰3] “옛날에는, 탈북자들이 있기 전에는 권사님들이나 집사님들이 아주 예쁜 한복을 입고 ‘할레루야나 사랑합니다’라는 띠를 두르고 안내를 섰지만은 언제부터인지 바꿔졌습니다. 탈북자들 때문에. 이들이 문에 들어오기라도 하면 일단 얼굴색을 봐가지고 이 사람이 탈북자들 같으면 들여놓지 않습니다. 정부에서 탈북자들을 도와주면 그것 때문에 교회가 더 피해를 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김 전도사는 탈북자들을 끌어내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동상에 걸려 발톱과 발가락이 빠지는 등 굶주리고 상처 입은 탈북자들을 신앙으로서 돕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민주교회에서 도움을 받기도 했던 탈북자동지회 김성민 회장에 따르면 민주교회를 거쳐 간 탈북자들은 2만여 명에 이릅니다.

김우 전도사는 탈북자들을 품고 기도하고 도와주는 일 뿐만 아니라 “탈북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다시 북한에 들여보내는 사업”도 펼쳐 왔다고 합니다. 김 전도사를 통해 복음을 받아들이고 북한 복음화를 위해 다시 북으로 들어간 탈북자들 중에는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하다 희생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민주교회에서 1년 반 동안 신앙생활을 했던 함경북도 출신 지모 씨는 북한에 남아 있는 형님에게 복음을 전한다고 들어갔다가 보위부에게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인터뷰4] “(지씨에게) 저희들이 약도 한 꾸러미, 굉장히 없는 돈을 교회에서 모금해서 (북한에) 보냈는데 그길로 그 형제가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보위부에 잡혀서 수없이 매를 맞고 걷지도 못하고 업혀 다니면서 다녔는데 같이 감방에 있던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끝까지 예수를 믿는다고 한번도 부인하지 않았던 그런 형제였습니다.”

역시 함경북도 출신 한모 씨도 가족과 친지들에게 복음을 전달하던 중 친구의 밀고로 체포됐습니다.

[인터뷰5] “자기네 가족 한 30명을, 북한에서는 꼭 제사 때만 모입니다. 일반적으로는 형제들, 친척들이 모일 수가 없습니다. 통행증이 있어야만 다니니까. 그럴 때 모이면 복음을 전하고 다른 친구들한테도 복음을 전하고 그러다가 결국은 친구의 밀고로 잡혀서 처참한 일을 당했습니다.”

김우 전도사는 성경을 북한으로 들여보내다 적발돼 사형까지 당한 한 탈북 청년의 이야기도 전했습니다.

[인터뷰6] “한 청년은 수많은 성경을 북한에 날라가고 7남매인데 누님 여섯 명이 계시고 독자 아들인데 복음 때문에 사형까지 당한 형제가 있습니다.”

수많은 탈북자들을 지원하다 보니 탈북자들이 체포되면 그들의 입에서 민주교회라는 이름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 때문에 김우 전도사는 중국 공안에 끌려가 벌금도 당하고 고문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쏟아지는 벌금을 감당하지 못해 살림집까지 팔아야 했다는 김우 전도사, 중국 공안은 그런 김 전도사를 돈벌이 수단으로 탈북자들을 이용한다고 매도했습니다. 그리고 옌지시 종교국에 김우 전도사의 민주교회 담임전도사, 법인대표 자격을 제명하도록 통보 했습니다.

김우 전도사에게 닥쳐온 시련은 이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김우 전도사는 초청을 받아 2003년에 한국에 입국했지만 탈북자들을 도왔다는 이유로 남아 있던 김 전도사의 아내와 함께 일하던 권사까지 2년 형을 선고받고 투옥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연속되는 고통 속에서는 김 전도사는 희생된 탈북자들과 자신들의 노고가 절대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7] “저희들의 수고나 노고나 그들의 기도는 절대 헛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한 알의 한 밀알이 땅에 떨어져서 수많은 열매를 맺음과 같이 정말 이런 순교자들의 피가 지금도 이 땅에서 호소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 동안의 전력 때문에 중국으로 다시 돌아갈 경우 가혹한 처벌을 피할 수 없게 된 김 전도사는 현재 한국 정부에 망명 신청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보내드린 탈북자 통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