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계의 거장 신상옥 감독이 11일 향년 80세를 일기로 타계했습니다. 1950년대, 당시 한국사회에서는 파격적인 영화 소재를 다루면서 시대를 한발 앞서갔던 신 감독은 그러나 80년대 북한요원들에 납치돼 9년간 북한에 억류됐던 시대의 불운아였습니다.  미국의 소리,도쿄 특파원이 보내온 자세한 소식입니다.

*********

신상옥 감독의 유가족들은 신감독이 간이상등의 오랜 지병으로 11일 타계했다고 밝혔습니다. 신상옥 감독은 한국영화계에 독보적 위치를 차지한 영향력있는 영화감독중 한명이었습니다. 1952년 [악야]라는 작품으로 데뷰한 신감독은 한국 영화사상 처음으로 키스신이 들어간 1958년 작품 [지옥화]를 통해 한국 사회의 보수적 가치관을 시험하기도 했습니다.

신상옥 감독의 대표작으로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성춘향], [빨간 마후라[[ 상록수]등이 꼽히고 있습니다. 이중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성춘향은 일본과 베니스 영화제에 초대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한국인들은 신상옥 감독을 북한 지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북한에 납치됐던 영화감독으로 더 많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신상옥 감독은, 당시 최고 영화배우 최은희씨와 자신이 1978년 북한 간첩들에 의해 납치됐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신상옥 감독의 전부인이었던 최은희씨는 1978년 1월, 합작 영화 제작을 논의하기 위해 홍콩을 방문중 북한 공작원들에 의해 납치됐고, 이소식을 듣고 홍콩으로 간 신상옥 감독 역시 그해 7월 북한요원들에 의해 납치됐습니다.

신상옥 감독은, 영화광으로 알려진 김정일 위원장이 공산주의식 영화를 제작하라며 호화주택과 고급 자동차, 영화 제작비로 매해 3백만 달러를 지원하는등 극진한 대접을 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신감독은 김정일 당시 노동당 총비서의 지원아래 [불가사리]등 총 7편의 영화를 연출했고 불가사리는 후에 남한에서도 상영된 바 있습니다.

신 감독은 탈출을 꾀하는 한편으로 살기 위해 친 공산주의 영화를 제작했다고 밝혔고, 납북 8년만인 1986년 3월 오스트리아 빈 여행중 마침내 북한의 감시에서 벗어나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신감독의 납북과 관련해서는 자진 월북인지 납북인지에 관한 논란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