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브뤼셀에서 22일 북한인권대회가 개막했고 23일 에는 <북한인권청문회>가 열리는데 즈음해, 한국에서도 22일 서울 국가인권위 배움터에서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민간 청문회>가 열린데 관한 소식을 서울에 있는 [정세진]통신원이 전해드립니다.

청문회를 주최한 뉴라이트 전국연합의 유석춘 공동대표는 “한국 여론이 주목하지 않고 정부가 애써 외면하는 북한 인권 문제를 정면에서 제기하기 위해 청문회를 마련 했다”고 개최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유석춘] “우리 남한에서 여론이 주목하지 않는 문제, 정부가 애써 외면하는 문제를 정면에서 저희가 문제 제기를 해보려고 이런 자리를 마련 했습니다. 생생한 증언 저희들이 잘 듣고 또 여기 오신 분들이 그 증언의 내용을 전파해 주셔서 저희 사회에서 북한 인권 문제가 현안이 되도록 여러분들이 힘을 합해 주시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이날 청문회에는 1970년 8월 1일부터 8년 6개월 동안 북한 함경남도 요덕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었던 김영순(67세)씨, 사리원 도인민병원 의사 이광철씨(44세, 2004년 탈북), 한국행을 시도하다 강제북송을 당했던 문현옥씨(43세, 2002년 입국), 이현심씨(24세, 2003년 입국) 이상 4명이 증인으로 참석했습니다. 김영순 씨는 김정일의 전처인 성혜림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죄로 재판없이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었습니다.

당시 수용소에 끌려간 것은 김영순씨 만이 아니었습니다. 2살, 4살, 7살, 9살의 자녀들과 70대의 부모님 등 일가족이 연좌제로 끌려갔다고 합니다. 그렇게 끌려간 김영순 씨는 출소 전까지 살인적인 강제노동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김영순] “아침 몇 시라는 것이 없습니다. 저는 8년 6개월 동안 내내 3시반에 일어났고 하루같이 4시반이면 출근을 합니다. 해가 새카맣때부터 새카매질 때까지가 노동시간이고 하루 일과가 끝나면 하루 총화를 하는데 거기선 총화라고 하지 않습니다. 사상 투쟁회의를 합니다.” 수용소 내의 수인들은 강제노동과 함께 만성적인 영양부족, 일상적인 구타와 인격모독, 상호 감시망, 불결한 의식주 속에서 인간이하의 삶을 강요받았습니다.

이 때문에 수인들 중에는 탈출을 감행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성공한 사례는 없었다고 합니다. 김영순 씨는 “우선 경비가 삼엄하고 탈출을 기도하다 체포될 경우 처벌이 가혹하기 때문에 수인들은 탈출 자체를 생각하지 못한다”면서 “73년도에 20대 중반의 청년 2명이 탈출을 시도하다 체포되어 공개처형”된 이야기를 꺼내 놓았습니다.

[김영순] “단발로 쏴, 이런 소리에 의해서 3발, 여기 눈 싸맨데 쏘고 복부 심장도 쏘고 밑에 쏘고 이렇게 해서 죽였는데 거긴 참가한 우리들은 한마디 숨소리도 못냅니다. 누구하고 동정의 표현도 못합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같은 처벌을 받기 때문에...” 의사 출신인 이광철 씨(2004년 탈북)는 북한의 열악한 의료 환경과 불평등한 의료 실태에 대해 증언했습니다.

이씨는 선배 의사들의 말을 들어보면 “80년대에 하루 쓸 약의 양이 90년대에는 한달분 혹은 두달분 분량으로 공급된다”고 실태를 전했습니다. 부족한 약을 메우기 위해서 의사들은 본업인 진료를 제쳐두고 약초를 캐야 했다고 합니다.

[이광철] “의사들이 봄 가을 한달씩 약초 캐기를 합니다. 그 과제가 다 25킬로그램씩 이상씩 약초, 무슨 약초 무슨 약초, 도라지 황기 이렇게 이름이 다 찍어져 있습니다. 그러면 그걸 캐다가 받쳐야 된다 말이에요.” 또한 이광철 씨는 신분에 따라 의료차별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광철] “직업적 차이가 있지요. 노동자들에게는 좀 없지만 그래도 당 간부를 하거나 큰 공장 지배인을 하거나 이런 사람들은 오면 대접을 잘 받지요. 약도 제대로 받고.” 99년 1월 남편과 함께 탈북한 문현옥씨는 한국에 있는 친척의 도움을 받아 한국행을 시도하려 하다가 체포되어 함경북도 온성군 보위부 구류장에 수감되었습니다. 당시는 탈북자가 많아 구류장에 수감된 사람이 300여명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전염병이 돌아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다고 문현옥 씨는 증언했습니다.

[문현옥] “어쨌든 더 말할 것도 없어요. 그때 당시 전염병이 파라티프스 장티푸스 그 다음에 옴 그런 병이 전 감방 안에 병이 돌았어요. 그래서 하룻밤 자고 깨어나면 어쨌든 한달에 32명이라는 사람, 젊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어요.” 문현옥 씨의 남편은 한국행을 시도한 자라고 낙인 찍혀 구류장에서 계속 매질을 당했고 영양부족에 파라티푸스까지 걸려 4개월간을 앓다가 사망했다고 합니다.

이현심씨는 한국행을 위해 베트남까지 갔지만 체포되어 강제북송을 당했습니다. 당시 이씨의 나이는 17살이었습니다. 한국에 입국한 이현심씨는 보위부 구류장에서 겪었던 일이 잊혀지지 않아, 북한 형제들을 위해 작은 기여라도 하고 싶어 대학진학(2005년, 중앙대)을 하게 됐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현심] “거기는 물이라든가 그리고 소변 대변 같은 걸 제대로 자기 맘대로 못 누고 말도 제대로 못하고 정말 정신적으로 고통을 많이 주거든요. 그런 것들을 보면서 내가 먼가를, 뭔가 기술을 배워가지고 앞으로 북한에 나가서 해야 되지 않나 이런 생각에 제가 대학에 진학하게 됐습니다.” 뉴라이트 전국연합은 이번 청문회 결과를 종합해 정당, 국회, 정부에 제출해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정부의 입장 변화를 촉구하고 압박할 계획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보내드린 탈북자 통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