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대의 전반기중 미 합중국에서는 노예문제가 하나의 중대한 쟁점으로 화했습니다. 미 합중국 지도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멕시코와의 전쟁으로 미국이 캘리포니아와 뉴멕시코를 미국영토의 일부로 편입시키면서 노예문제를 둘러싼 논쟁은 더욱 가열 되었습니다. 북부는 새로 편입된 캘리포니아와 뉴멕시코에 노예제를 도입하는데 반대했습니다. 남부는 새로운 주에 노예제를 도입하는 것은 헌법에 명시된 권리라고 선언했습니다. 남부는 미 합중국에서 탈퇴할 준비태세를 갖추었습니다.

1850년 켄터키 주 출신의 헨리 클레이 상원의원은 미 합중국의 분열로 인해 종국에는 북부와 남부의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기에서 국가를 구하기 위해 타협안을 제시했습니다. 클레이 의원은 합중국에서 탈퇴할 권리가 있다는 남부의 주장을 공박했습니다. 클레이 의원은 미 합중국은 영원하며, 모든 미래의 미국인들을 위해 건국되었다고 말했습니다. 클레이 의원은 남부의 탈퇴가 가져올 전쟁은 장기적인 것이 될 것이며, 유혈의 참극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당시 미 합중국, 남부와 북부, 양측의 극단주의자들은 클레이 의원의 타협안에 반대했습니다. 테일러 대통령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테일러 대통령은 캘리포니아에 대해 제한적으로 주의 지위를 부여하는 그의 계획에 웹스터와 클레이와 다른 휘그당 지도자들이 지지해주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러나 휘그당의 어느 지도자도 대통령의 그같은 생각이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려 들지 않게 테일러 대통령은 상심에 빠졌습니다.

테일러 대통령의 최고보좌관인 뉴욕주 출신의 시워드 상원의원도 클레이 의원의 제안에 반대했습니다. 시워드 의원은 노예제에 강하게 반대했고, 여기에 타협할 권리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클레이 의원의 타협안이 나온지 1주일만에, 미주리 주 출신의 제퍼슨 데이비스 상원의원이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습니다. 데이비스 상원의원은 클레이 의원이 제안한 타협안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데이비스 의원은 이 타협안으로는 좋은 결과를 이끌어낼 수 없고, 도망 노예의 복귀에 관한 보다 강력한 법률도 별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데이비스 의원은 이런 법률들은 주민들이 노예제를 반대하는 주에서 구속력을 가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데이비스 상원의원은 필요한 것은 남부에 대한 북부의 정책 변화라고 말했습니다. 데이비스 의원은 북부는 남부의 권리, 특히 미 합중국의 준주에서 노예제를 도입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데이비스 의원은 국회는 이같은 권리를 파기하거나 제한할 수 있는 어떤 권한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1820년의 구 미주리 타협안이 준주에 노예제를 도입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했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는 1820년의 타협안이 실효를 거둔것은 국회가 이것을 통과시켰기 때문이 아니라, 주정부들이 그에 동의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데이비스 상원의원은 북부가 남부를 통제하려 하고 있기 때문에 분열을 조장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만약 이같은 노력이 중단되지 않는다면 북부는 언젠가는 헌법과 노예제를 바꿀 수 있을만큼 강력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데이비스 의원은 남부는 이것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3주 후, 상원은 또다른 남부 지도자 존 C. 칼훈 의원의 연설을 들었습니다. 오래동안 칼훈 의원은 남부의 대변인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는 68세의 고령인데다가 또 병중이었습니다. 그는 한달 앞에 죽음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칼훈 의원은 병이 너무 위중해서 클레이 의원의 연설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칼훈상원의원은 남부의 진정한 입장에 관한 원고를 집필하면서 2월 마지막 주를 보냈습니다. 3월 3일 일요일, 칼훈 의원이 그 다음 날인 3월 4일에 상원에서 연설할 것이라는 발표가 나왔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이 그의 마지막 연설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칼훈 의원이 입장했을 때, 상원에는 많은 방청객들이 자리를 메우고 있었습니다. 동료 의원들이 한사람 한사람씩 인사하기 위해 그에게 나아갔습니다. 칼훈 의원의 긴 갈색의 머리칼이 어깨까지 늘어졌습니다. 그의 얼굴은 파리하고 창백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눈은 형형하게 빛났고 턱은 굳었습니다. 칼훈 의원은 너무 쇠약한 나머지 그의 연설문을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메이슨 상원의원에게 그 원고를 대독해 줄것을 당부햇습니다.

칼훈 의원은 만약 노예제를 둘러싼 분쟁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결국 미 합중국은 분열의 길을 걷게 될 것으로 오래동안 믿어왔다고 말했습니다. 칼훈 의원은 미 합중국은 해체되고 있으며, 북부와 남부를 하나로 묶어주던 끈은 하나하나 끊어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때 합중국으로 통일되었던 3개의 교회들이 북부와 남부로 분열되었습니다. 양 정당도 같은 방법으로 분열되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칼훈 의원은 북부는 정치적 균형을 파괴했기 때문에 이같은 결과에 책임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북부의 인구가 늘어나면서 북부는 남부를 정치적, 경제적으로 통제하게 되었다고 칼훈 의원은 지적했습니다. 북부는 남부가 반대하는 관세법안을 통과시켰고 연방정부 공무원들은 대부분이 북부출신이었다고 칼훈의원은 지적했습니다. 북부는 남부 노예주들의 새 변경지역에 대한 진출을 거부했다면서 칼훈의원은 북부는 남부의 노예제도를 사악하게 공격했다고 말했습니다.

사태는 너무나 심각했기 때문에 남부는 합중국내에서 더 이상 명예롭고 안전하게 남아 있을 수 없게 되었다고 칼훈 의원은 말했습니다.

합중국이 어떻게 구제될 수 있단 말입니까고 칼훈 의원은 물었습니다.

"켄터키 주 출신의 클레이 의원이 제안한 타협안으로는 안됩니다. 오직 한가지 방법이 있을 뿐입니다. 그동안 남부와 북부가 다투어온 문제들을 법대로 완전히 최종적으로 끝장내는 겁니다.”

“남부는 법을 , 아주 단순한 법을 요구합니다. 남부가 이제 하지 하지 못할 일은 없습니다. 남부가 제시할 것은 타협이 아니라 헌법입니다. 더 이상 양보할 것도 굴복할 것도 없습니다. 남부는 이미 많은 것을 굴복했기 때문에 더 이상 굴복할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나서 칼훈 의원은 북부가 남부를 충족시켜야 할 사항들을 열거했습니다. 칼훈 의원은 서부의 새로운 준주들에서 남부에게도 동등한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사람들이 도망 노예의 복귀에 관한 법률을 준수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또 북부와 남부의 정치적 균형을 되찾을 수 있도록 헌법 수정에 동의해야 합니다. 또 북부는 노예제에 대한 공격을 중단해야 합니다. 만약 이런 사항들에 대해 아무 조치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남부와 북부는 평화적으로 분리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칼훈 의원은 말했습니다. 그러나 만약 북부가 평화적인 분리에 반대한다면 남부는 결국 굴복이냐 싸움이냐의 양자택일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남부는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것인지 잘 알고 있다”고 칼훈 의원은 말했습니다. 

 칼훈 의원이 상원에서 연설을 마치자 남부 출신 의원들은 이 노 의원을 둘러싸고 그를 축하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대부분은 그의 극단적인 요구와 그의 과격한 표현에 동의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호소는 너무 때늦은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남부주들은 클레이 의원의 제안이 남부와 북부의 견해 차이를 해결하고 미 합중국을 지킬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믿었습니다. 클레이 의원은 그의 타협안이 상원 표결에서 부결되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대부분의 북부주들은 노예제는 잘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북부주들은 클레이 의원의 타협안이 새로 편입된 뉴멕시코 준주에서 노예제를 허용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이유로 또한 북부로 도주한 노예들의 복귀에 관한 보다 엄격한 법류를 촉구했기 때문에 그 타협안에 반대했습니다.

클레이 의원이 처음 타협안을 제안하기 8일 전, 클레이 의원은 매사추세츠주 출신의 다니엘 웹스터 상원의원을 방문했습니다. 웹스터 의원의 한 친구는 이 만남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클레이 의원이 웹스터 의원의 집을 찾아와서 장시간 노예제와 새로운 준주들에 관한 가중되는 의견차이를 조정할 최선의 방안에 관해 얘기를 나누었다. 그 대화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클레이 의원은 한시간 후에 돌아갔다. 웹스터의원이 나를 부르더니 아주 다정하게 클레이 의원에 대해 얘기해 주었다. 웹스터 의원은 클레이 의원의 생각이 아주 훌륭하고 애국심에 불타는 것으로 느꼈다고 소감을 털어놓았다.' 웹스터의원은 클레이 의원이 몸이 쇠약해 보였고, 심한 감기에 걸려 있었으며, 그래서 클레이 의원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조국을 위해 무언가 헌신해야겠다는 각오로 있었다고 말했다. 웹스터 의원은 클레이 의원의 계획은 북부와 남부의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납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웹스터 의원은 클레이 의원의 제안을 지지하고 상원에서 이것이 통과될 수 있도록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웹스터 의원은 클레이 의원의 제안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공개 선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기다리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는 칼훈 의원의 연설이 상원에서 낭독된지 3일 후인 3월 7일에 지지발언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때 웹스터 의원은 칼훈 의원과 마찬가지로 68세의 고령이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연설은 젊은 시절 못지 않게 우렁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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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RING THE FIRST HALF OF THE EIGHTEEN-HUNDREDS, THE QUESTION OF SLAVERY IN THE UNITED STATES REMAINED A PROBLEM. THE NATION'S LEADERS FOUND NO WAY TO SETTLE THE ISSUE. AFTER THE WAR WITH MEXICO IN EIGHTEEN-HUNDRED-FORTY-NINE, WHEN THE UNITED STATES GOT CALIFORNIA AND NEW MEXICO, THE DISPUTE OVER SLAVERY BECAME MORE THREATENING. THE NORTH REFUSED TO PERMIT SLAVERY IN THESE NEW TERRITORIES. THE SOUTH DECLARED THAT IT HAD A CONSTITUTIONAL RIGHT TO BRING SLAVES INTO THE NEW LANDS.

THE SOUTH WAS READY TO SECEDE -- LEAVE AND BREAK UP THE UNION OF STATES. THEN, IN EIGHTEEN-HUNDRED-FIFTY, SENATOR HENRY CLAY OF KENTUCKY OFFERED A COMPROMISE TO SAVE THE NATION FROM A SPLIT, AND PROBABLY A WAR BETWEEN THE NORTH AND THE SOUTH. HE ATTACKED THE SOUTH'S CLAIM THAT IT HAD THE RIGHT TO LEAVE THE UNION. HE SAID THE UNION OF STATES WAS PERMANENT, CREATED FOR ALL FUTURE AMERICANS. HE WARNED THAT THE WAR WHICH WOULD FOLLOW SOUTHERN SECESSION WOULD BE LONG AND BLOODY.

VOICE TWO: EXTREMISTS ON BOTH SIDES OPPOSED CLAY'S COMPROMISE PROPOSALS. SO DID PRESIDENT TAYLOR. THE PRESIDENT HAD HOPED THAT WEBSTER, CLAY, AND OTHER WHIG PARTY LEADERS WOULD SUPPORT HIS OWN LIMITED PLAN OF STATEHOOD FOR CALIFORNIA. THE PRESIDENT'S FEELINGS WERE HURT WHEN NONE OF THE PARTY LEADERS THOUGHT THAT HIS IDEA WAS IMPORTANT. THE PRESIDENT'S CHIEF ADVISER, SENATOR SEWARD OF NEW YORK, WAS ALSO AGAINST CLAY'S PROPOSALS. SEWARD STRONGLY OPPOSED SLAVERY AND DID NOT BELIEVE IT WAS RIGHT TO COMPROMISE ON IT.

ONE WEEK AFTER CLAY SPOKE, SENATOR JEFFERSON DAVIS OF MISSISSIPPI EXPLAINED HIS POSITION. HE DID NOT SAY MUCH ABOUT CLAY'S PROPOSED COMPROMISE. DAVIS WAS SURE THAT NO GOOD WOULD RESULT FROM IT, NOT EVEN FROM STRONGER LAWS ON THE RETURN OF ESCAPED SLAVES. HE SAID THESE LAWS WOULD NOT BE ENFORCED IN STATES WHERE PEOPLE OPPOSED SLAVERY. VOICE ONE: SENATOR DAVIS SAID THAT WHAT WAS NEEDED WAS A CHANGE IN THE NORTH'S POLICY TOWARD THE SOUTH. HE SAID THE NORTH MUST RECOGNIZE THE RIGHTS OF SOUTHERNERS, ESPECIALLY THE RIGHT TO TAKE SLAVE PROPERTY INTO TERRITORIES OF THE UNITED STATES.

DAVIS SAID CONGRESS HAD NO RIGHT TO DESTROY OR LIMIT THIS RIGHT. HE ADMITTED THAT THE OLD MISSOURI COMPROMISE OF EIGHTEEN-HUNDRED-TWENTY HAD LIMITED THE RIGHT TO TAKE SLAVES INTO THE TERRITORIES. HE SAID THE EIGHTEEN-HUNDRED-TWENTY COMPROMISE WORKED -- NOT BECAUSE CONGRESS PASSED IT -- BUT BECAUSE THE STATES AGREED TO IT. SENATOR DAVIS SAID THE NORTH WAS RESPONSIBLE FOR THE GROWING SPLIT, BECAUSE THE NORTH WAS TRYING TO GET COMPLETE CONTROL OF THE SOUTH. HE SAID IF THESE EFFORTS WERE NOT STOPPED, THE NORTH SOME DAY WOULD BE POWERFUL ENOUGH TO CHANGE THE CONSTITUTION AND END SLAVERY EVERYWHERE. DAVIS WARNED THAT THE SOUTH WOULD NEVER ACCEPT THIS.

VOICE TWO: THREE WEEKS LATER, THE SENATE HEARD ANOTHER SOUTHERN LEADER, SENATOR JOHN C. CALHOUN. FOR YEARS, CALHOUN WAS THE VOICE OF THE SOUTH. HE NOW WAS SIXTY-EIGHT YEARS OLD AND A SICK MAN. HE WOULD DIE WITHIN A MONTH. CALHOUN HAD BEEN TOO ILL TO HEAR CLAY'S SPEECH. HE SPENT THE LAST WEEK IN FEBRUARY WRITING WHAT HE BELIEVED TO BE THE TRUE POSITION OF THE SOUTH. ON SUNDAY, MARCH THIRD, IT WAS ANNOUNCED THAT CALHOUN WOULD SPEAK IN THE SENATE THE NEXT DAY. MOST UNDERSTOOD THAT IT WOULD BE HIS LAST SPEECH. THE SENATE WAS CROWDED WHEN CALHOUN ENTERED. ONE BY ONE, FRIENDS CAME UP TO SPEAK TO HIM.

THE OLD MAN'S LONG, GRAY HAIR FELL TO HIS SHOULDERS. HIS FACE WAS THIN AND WHITE. BUT HIS EYES WERE BRIGHT AND HIS JAW FIRM. CALHOUN WAS TOO WEAK TO READ HIS SPEECH. HE ASKED SENATOR MASON TO READ IT FOR HIM.

VOICE ONE: CALHOUN SAID THAT FOR A LONG TIME HE HAD BELIEVED THAT THE DISPUTE OVER SLAVERY -- IF NOT SETTLED -- WOULD END IN DISUNION. CALHOUN SAID IT WAS CLEAR NOW TO EVERYONE THAT THE UNION WAS BREAKING APART...THAT THE TIES THAT HAD HELD THE NORTH AND SOUTH TOGETHER WERE BREAKING, ONE BY ONE. THREE CHURCHES, ONCE UNITED ACROSS THE NATION, NOW WERE SPLIT BETWEEN NORTH AND SOUTH. THE TWO MAJOR POLITICAL PARTIES, HE DECLARED, WERE DIVIDED IN THE SAME WAY.

CALHOUN SAID THE NORTH WAS RESPONSIBLE FOR ALL THIS, BECAUSE IT HAD DESTROYED THE POLITICAL BALANCE BETWEEN THE TWO PARTS OF THE COUNTRY. AS THE POPULATION OF THE NORTH HAD GROWN LARGE, HE NOTED, THAT PART OF THE COUNTRY HAD SEIZED POLITICAL AND ECONOMIC CONTROL. THE NORTH HAD PASSED TARIFF BILLS THAT THE SOUTH OPPOSED. IT HAD FILLED MOST OF THE OFFICES IN THE FEDERAL GOVERNMENT. IT CLOSED THE NEW TERRITORIES TO SOUTHERN SLAVEHOLDERS. AND, SAID CALHOUN, IT HAD VICIOUSLY ATTACKED THE SOUTHERN INSTITUTION OF SLAVERY.

VOICE TWO: THE SITUATION WAS SO BAD, CALHOUN SAID, THAT THE SOUTH COULD NOT -- WITH HONOR AND SAFETY -- REMAIN IN THE UNION. "HOW CAN THE UNION BE SAVED?" HE ASKED. "NOT BY THE COMPROMISE PROPOSED BY THE SENATOR FROM KENTUCKY. THERE IS BUT ONE WAY. A FULL AND FINAL SETTLEMENT, WITH JUSTICE, OF ALL THE QUESTIONS DISPUTED BY THE TWO SECTIONS.

"THE SOUTH ASKS FOR JUSTICE, SIMPLE JUSTICE, AND LESS SHE OUGHT NOT TO TAKE. SHE HAS NO COMPROMISE TO OFFER BUT THE CONSTITUTION, AND NO CONCESSION OR SURRENDER TO MAKE. SHE HAS ALREADY SURRENDERED SO MUCH THAT SHE HAS LITTLE LEFT TO SURRENDER."

THEN CALHOUN LISTED THE THINGS THE NORTH MUST DO TO SATISFY THE SOUTH. HE SAID IT MUST GIVE THE SOUTH AN EQUAL RIGHT IN THE NEW TERRITORIES OF THE WEST. IT MUST MAKE PEOPLE OBEY THE LAWS ON THE RETURN OF RUNAWAY SLAVES. IT MUST AGREE TO AN AMENDMENT TO THE CONSTITUTION THAT WOULD RETURN POLITICAL BALANCE TO NORTH AND SOUTH. AND IT MUST STOP THE ATTACKS AGAINST SLAVERY. IF ALL THESE THINGS WERE NOT DONE, CALHOUN SAID, THEN IT WOULD BE BETTER TO SEPARATE, TO PART IN PEACE. BUT IF THE NORTH REFUSED A PEACEFUL SEPARATION, THEN THE SOUTH WOULD BE FACED WITH THE CHOICE OF SURRENDER OR FIGHT. "THE SOUTH WILL KNOW WHAT TO DO," SAID CALHOUN.

VOICE ONE: WHEN CALHOUN FINISHED HIS SPEECH TO THE SENATE, SOUTHERN LAWMAKERS CROWDED AROUND THE OLD MAN, CONGRATULATING HIM. BUT MANY OF THEM COULD NOT AGREE WITH HIS EXTREME DEMANDS AND THE VIOLENCE OF HIS WORDS. HIS APPEAL WAS TOO LATE. MOST SOUTHERNERS BELIEVED THAT CLAY'S PROPOSALS WERE A REASONABLE WAY TO SETTLE THE DIFFERENCE AND PROTECT THE UNION. CLAY WAS WORRIED THAT HIS COMPROMISE MIGHT BE DEFEATED BY NORTHERN VOTES.

MANY IN THE NORTH FELT SLAVERY WAS WRONG. THEY OPPOSED THE COMPROMISE, BECAUSE IT MIGHT PERMIT SLAVERY IN THE NEW MEXICO TERRITORY, AND BECAUSE IT CALLED FOR STRONGER LAWS ON THE RETURN OF SLAVES WHO HAD ESCAPED TO THE NORTH. VOICE TWO: EIGHT DAYS BEFORE HE FIRST PROPOSED THE COMPROMISE, CLAY VISITED SENATOR DANIEL WEBSTER OF MASSACHUSETTS. A FRIEND OF WEBSTER'S DESCRIBED THE MEETING IN THESE WORDS:

"MISTER CLAY CAME TO MISTER WEBSTER'S HOUSE AND HAD A LONG TALK WITH HIM ABOUT THE BEST WAY TO SETTLE THE DIFFICULTIES GROWING OUT OF SLAVERY AND THE NEW TERRITORIES. I HEARD PART OF THEIR CONVERSATION. "

MISTER CLAY LEFT AFTER ABOUT AN HOUR. MISTER WEBSTER CALLED ME TO HIS SIDE AND SPOKE TO ME OF MISTER CLAY IN WORDS OF GREAT KINDNESS. HE SAID HE AGREED GENERALLY WITH MISTER CLAY, THAT HE THOUGHT MISTER CLAY'S PURPOSE WAS GREAT AND HIGHLY PATRIOTIC.

"HE SAID MISTER CLAY SEEMED TO BE VERY WEAK AND HAD A VERY BAD COUGH, THAT HE WAS SURE MISTER CLAY WANTED TO DO SOMETHING FOR THE GOOD OF HIS COUNTRY DURING THE LITTLE TIME HE HAD LEFT ON EARTH. MISTER WEBSTER SAID FURTHER THAT HE THOUGHT MISTER CLAY'S PLAN WAS ONE THAT SHOULD BE SATISFACTORY TO THE NORTH AND TO THE REASONABLE MEN OF THE SOUTH. HE SAID HE BELIEVED THAT HE COULD SUPPORT ALL OF IT AND WOULD WORK FOR ITS APPROVAL IN THE SENATE."

VOICE ONE: WEBSTER PLANNED TO SPEAK IN SUPPORT OF CLAY'S PROPOSAL. BUT HE WOULD WAIT UNTIL THE BEST TIME FOR DECLARING IT. HE DECIDED TO MAKE IT ON MARCH SEVENTH, JUST THREE DAYS AFTER CALHOUN'S SPEECH WAS READ TO THE SENATE. WEBSTER WAS SIXTY-EIGHT YEARS OLD, AS OLD AS CALHOUN. HIS VOICE WAS WEAKER NOW. BUT HIS WORDS RANG WITH THE SAME STRENGTH AS YEARS EARLI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