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지원 활동가’ 김태학 씨는 최근 한 선교단체의 부탁으로 중국을 방문해 한국행을 희망하는 탈북자 4명을 지원하고 돌아왔습니다. 중국과 몽골 국경 근처까지 동행한 김씨는 탈북자들의 비참한 처지를 미국의 소리 방송에 전해왔습니다.

김태학 씨를 통해 탈북자들이 목숨을 걸고 한국행을 시도한 이유와 그들의 사연을 들어봤습니다. 김태학 씨는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역에서 탈북자 4명을 만났습니다. 탈북자들은 비참한 기억 때문인지 지난 일을 떠올리기를 꺼려했지만 동행하는 과정에 김태학 씨는 그들의 사연을 조금씩 들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인터뷰1] “정말 산에서 6-7년 살면서 돈 한 푼 못 받고 노예노동 한 남자도 있는 가 반면에, 인민폐 중국돈 1만원, 아마 한국돈으로 130-140만원 될까요. 그 액수에 청도(靑島 칭다오, 산둥성[山東省])지역에 팔려간 분도 있고, 한 여자 같은 경우에는 원치 않은 결혼이니까 말이 결혼하지 인신매매로 가서 성 노리개로 사는 거지요.”

또한 탈북자 4명은 모두 북송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한 여성의 경우에는 5차례나 북송되었고 보위부에서 모진 고초를 당했다고 합니다.

[인터뷰2] “대체로 다 북송 경험을 가지고 있고, 한 여자의 경우에는 다섯 차례 북송됐어요. 다섯 차례 북송됐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지요. 보위부 가서 두드려 맞으니까는 처음에는 이빨이 그 자리에서 즉시 떨어지드래요 2대, 위에 이빨이. 그래서 두드려 맞고 얼굴이 부어서 누워 있었는데 허리도 군홧발에 얻어맞아서 허리도 못쓰고 누워있으니까 5일 지나니까 이빨이 다 떨어지드래요. 그 여자 사진보면 이빨이 전혀 없잖아요.”

이 탈북여성은 보위부에서 풀려난 뒤 한동안 허리를 쓰지 못해 기어다니며 동냥질을 하다가 기력이 조금 회복되자 다시 중국으로 탈출했습니다. 김태학 씨에 따르면 이 탈북여성은 강제북송되어 받은 고문 후유증 때문에 지금도 허리 통증을 호소하고 있고, 두려움과 공포심 밖에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극도의 심리적 불안 상태에 있다고 합니다. 이런 심리 상태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북송 경험이 있는 다른 탈북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인터뷰3] “그런 분들의 경우에는 이제 북한 하면 공포심이 먼저 작용합니다. 정말 어디 데리고 다니려도 그 사람의 불안한 눈빛, 그거 보면 저도 진짜 불안하고 두려움이 오고....”

김태학 씨는 동행하는 기간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들처럼 도움을 바라고 있을 숨어사는 탈북자들의 처지가 생각나 가슴이 답답했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인터뷰4] “같이 여행하는 기간 이야기 해보니까 다 가슴에 멍이 맺힌 사람들이고 정말 말하면서 계속 눈물만 흘리고 그런 광경을 봤을 때, 아직도 우리 사람들이 이렇게 숨어살고 이런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다 도움을 바라고 그러겠는데 누군가 그들을 도와주겠는가 그런 안타까운 마음도 있고...”

탈북자들은 ‘한국행을 시도하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하다’는 김태학 씨의 설명에도 모두 한국에 가기를 희망했습니다. 처벌이 기다리고 있는 고향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언제 체포되어 강제북송을 당할지 모르는 중국에서의 삶도 더는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5] “그러나 그들이 바라는 것은 한결같이 더는 그 안에(북한에) 들어가서 살 수 도 없고 또 받아도 주지 않고 거기 들어가서 죽음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더라도 한국 가는 길을 택하겠다. 제가 그분들이 아니래도 많은 탈북자들을 만나본 경험에 의하면 탈북자들이 한결같이 그렇게 말하거든요.”

김태학 씨는 4일 동안 함께한 탈북자들과 중국과 몽골 국경에서 헤어져야 했습니다. 이제 탈북자들은 밤을 틈타 중국 국경경비대의 경비를 뚫고 사막을 건너 몽골 국경까지 가야 합니다. 탈북자들의 눈은 두려움에 젖어 있었지만 그들의 눈에는 핏발선 자유가 꿈틀대고 있었습니다. 김태학 씨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간절히 기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