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건강하게 지내다가 통일되면 보자 그런 이야기지요. ~ 고모님하고 아버님은 상당히 많이 닮으셨더라구요, 글쎄 눈매는 잘 모르겠는데 코하고 입 주위가 많이 닮으셨더라구요. 북측에서는 며느리, 그다음에 손녀 둘이 나왔어요, 우리쪽에서는  아버니하고 아버지 동생, 고모하고 나하고 남동생. 여동생. 이렇게 다섯명이 나갔습니다."

제4차 이산가족 화상상봉 행사가 오늘(27일) 아침 8시에 시작됐습니다. 남한의 9개도시 13개 상봉실와 평양 고려호텔의 10개 상봉실에 이루어진 남북 이산가족의 만남은 내일까지, 남북한 각기 40가족씩 모두 80가족, 575명이 광케이블로 연결된 화상회의 시스템을 통해 감격의 상봉을 하게 됩니다. 이산가족 화상상봉 소식을 도선미 통신원 연결해 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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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A:제 4차 화상상봉 첫날 일정이 모두 끝났지요?

서울: 그렇습니다. 오늘 아침 8시부터 시작된 화상상봉이 두시간 간격으로 상봉실에 들어가는 가족들이 바뀌면서 오후 6시 첫날 일정을 마쳤습니다. 화상상봉은 ’가족 대 가족’ 만남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한 상봉실에는 적게는 2~5명의 가족이 참여했습니다.

VOA: 이제 화상상봉이라는 형식도 횟수를 거듭하면서 상봉자들의 만남의 형식도 안정되어 가는 듯 보이군요. 차분한 가운데 진행되었다구요.

서울: 그렇습니다. 앞서 3차례의 화상상봉의 경험이 이산가족들 스스로 화상상봉이라는 형식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남한의 각 지역 대한적십자사 지사에 마련된 상봉실에 안내 직원의 인솔로 대부분 조용한 가운데 담담히 치러졌는데요. 서울 상봉실에서 북한의 형을 만난 69살 권모씨가 맨 정신으로는 만날 수 없다며 상봉전 술을 마셨던 모양입니다 상봉을 하면서 술이 달아올라 말다툼이 있었는데요.

남측 가족들은 북측가족들에게 술을 먹어서 그렇다고 양해를 구하고, 북측의 형님은 돌아가신 아버지도 술 때문에 고생 많이 시켰는데 안타깝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술에 취한 권씨는 며느리 부축에 이끌려 상봉장에서 퇴장하는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VOA: 반세기 만에 만나는 가족들을 보게 되는 마음이 그만큼 힘들었다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정해진 2시간도 지난 세월을 이야기하기는 턱없이 짧은 시간이었을 텐데... 소식을 듯는 사람들도 안타깝기는 마친가지네요..자, 오늘 상봉을 마친 몇몇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셨다구요?

서울: 네 먼저 대한적십자사 인천지사에 마련된 화상상봉장을 찾은 70살의 이근재씨 가족입니다. 누나 72살 근옥씨와 여동생 60살 근순씨가 꿈에도 그리던 북측의 맏형 74살 리근영씨를 TV화면을 통해 만났는데요. 이근재씨는 오전 상봉을 마치고 댁에서 있으면서도 정말 내가 형님을 만난것인지... ‘꿈인지 생시인지 아직도 긴가민가 하다’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전화가 왔을 때는 장난 전화인줄 알았어요. 그냥 이북에서 누가 연락한다고 그러기에 우리는 이북에 간 사람이 없는데.. 그랬어요. 그랬더니 이북에 형이 있다고 가족을 상봉하겠다고 연락이 왔다고 해서 깜짝 놀랐지요. 그래서 밤새 잠도 못자고 했지요. "

VOA: 북측에서 남측가족을 찾은 경우군요.

서울: 그렇습니다. 남쪽 가족을 찾은 맏형님인 근영씨는 육남매의 맏이로 부모님을 도와 어린 동생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14살 때부터 남의 가게 점원으로 일했다고 하는데요. 6.25때 형님이 일하시던 문방구가 폭격을 맞아 잿더미가 된 것을 보고 돌아가셨다고만 믿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형제와 누이동생들은 한눈에 형님을 알아 볼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요 한눈에도 알아 보겠더라구요. 처음에는 6.25때 죽은 줄 알았거든요. 그래서 그냥 계속 죽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갑자기 나타났는데.. 갑자기 나타나니까 할말도 별로 없대요."

서울: 하지만 너무 오랜만이라 돌아가신 어머님이야기과 외국에서 사는 형제들 근황을 전하고는 이내 서먹서먹한 순간이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VOA: 너무 갑작스러운 만남이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경황이 없는 것이 당연하기도 할테지요. 만나기 전에 서로 편지라도 주고받는다면 화상상봉의 분위기가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구요.

서울: 물론입니다. 화상상봉에 나선 가족들은 정해진 두시간 서로의 안부를 묻고 또 친지들의 근황을 전하다보면 정말 속에 담아둔 그리움을 전하기는 어렵기도 하다고 말합니다. 오늘 통일부 이종석 장관이 화상상봉장을 찾은 뒤 화상상봉의 활용에 대한 여러방안을 연구하고 북측과 협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남북의 정보기술(IT)이 접목된 화상상봉이라는 것이 세계사에 유래가 없는 것인 만큼 북측과 잘 협의해 활용도를 높여야 할 것이라며 정부가 이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히는 자리에서 이산가족들이 만나기전 서신왕래를 하면 훨씬 자연스러워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VOA: 북측에 두고 온 아들 3형제를 찾는 남쪽 아버지의 상봉도 있었지요.

서울: 부산 상봉장에 나온 86살 이현부씨 가족입니다. 10살, 7살 3살 아들을 찾기 위해 10년 세월을 기다려왔는데 화상상봉 대상자가 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아들들은 다 사망하고 며느리와 두 손녀가 나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고 합니다. 아들 이영직씨는 이 소식을 사실대로 전하지 못해 형제들과 함께 10일을 망설였다고 합니다.

"그것을 우리가 아버지께 말씀을 못 드려가지고 한 열흘정도 뜸을 들이다가 말씀을 드렸더니만 “내가 살라고... 내 살려고 하다가 느그들 다 죽었구나” 하시더라구요. 지금은 그쪽 소식 며느리하고 손녀 둘이 와서 그쪽 소식을 듣고 나니까... 오히려 더 나은 것 같아요"

서울: 화상상봉이 진행되는 동안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다고 어려움은 없었다고 합니다. 다만 평생 처음 보는 시아버지에게 큰절을 올리려 해도 상봉실 구조상 불편함이 있었고 체제가 다르기 때문에 느끼는 체제선전을 하는 북측 가족들의 말과 혹 피해가 될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못한 남북 가족들간의 어색한 순간이 아쉬운 정도였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가족들의 이야기는 화상상봉의 기회도 없는 다른 이산가족에 비하면 좋은 일이지만 기왕에 만날거라면 손 맞잡고 얼굴이나 부비는 실제 만남이었으면 하는 생각이라고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그렇지요. 그게 좀 아쉽더라구요. 조금 실감이 덜 한 것 같아요. 그냥 손을 좀 잡고 얼싸 안기도 해보고 했으면 좋을텐데 그것이 아쉽더라구요. 지금은 뭐 화상으로 하니까는 그냥 담담하고 그러네요. 첫날 소식 들었을 때는 흥분하고 막 그랬는데..이제 시간이 지나니까 담담하고 그러네요.

서울: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단 두시간의 상봉 후 또 언제 만나게 될지 모르는 남북 가족들은 건강하고 통일이 되는 날 꼭 다시 보자는 기약 없는 인사로 마무리를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뭐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 건강하라는 말 밖에 더하겠습니까? 어떻게 내가 가겠다는 말도 못하고 주로 앞으로 건강하십시오. 통일되는 그날까지.. 만납시다.. 그때 봅시다... 그런 이야기 박에 없는 것입니다. "

서울: 인천의 이근재씨는 담담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그리움은 배가 되었다며 다시 만난다면 부둥켜 안고 덩실 춤이라고 추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한번 그냥 서로 어떻게 만나가지고 어떻게 끌어안고 얼싸안고 춤도 추고 그래봤으면 하는 그런 생각이 남네요.... "

VOA: 자, 이산가족 상봉 내일도 계속되지요.

서울: 그렇습니다. 비록 짧은 상봉시간이지만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고 혈육이 있다는 마음만으로도 그동안의 답답한 마음의 응어리가 풀리는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부산상봉장에서 아버지 92살 전경화씨와 함께 북측의 고모님과 고종사촌을 만남 전종진씨는 친지가 없는 명절이 쓸쓸했던 기억을 되새기며 다시는 만나지 못하더라고 가족 친지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마음이 흡족하다고 말하며 더 많은 고령의 이산가족이 생을 다하기 전에 가족 소식을 듣고 평안해지길 바란다고 전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가족들이랑 못 만난다는 가장 슬픈 비극 중에 하나가 아니겠습니까? 어자피 개인적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고 나라에서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산가족도 점점 더 없어지지 않겠습니까? 생사여부도 확인하고 가급적이면 만나서 이야기 할 수 있는 그것이 화상상봉이라면 좋겠고 그게 아닐지라도 서로 근황이라도 알 수 있는 그런 ~ 글쎄요. 그렇게 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지금까지 서울에서 전해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