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권운동의 대부인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부인인 코레타 스캇 킹 여사의 장례식이 전 현직 대통령들과 상하원 의원 주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7일 성대하게 거행됐습니다. 

문: 지난 달 30일에 타계한 코레타 스캇 킹 여사가 어떤 인물인지 간단하게 소개해 주시죠?   

답: 네, 미국 인권 운동의 대모로 널리 알려진 코레타 스캇 킹 여사는 지난 1953년에  마틴 루터 킹 목사와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지난 1950년대 말과 1960년 대초 미국 민권 운동의 지도자로 떠오르자, 남편의 든든한 지지자가 됐습니다.  

그러다가, 남편이 지난 1968년에 암살을 당한 이후에는 남편 대신 국내외에서 사회 정의를 위한 활동을 활발하게 펼쳤습니다.

킹 여사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웅변가로 간주되는 킹 목사와는 달리 조용하게 활동했지만, 남편의 유산인 인종 차별과 빈곤을 극복하기 위한 비폭력 투쟁이 지속되도록 하는데 커다란 공헌을 했습니다. 

난소암과 뇌졸증 후유증으로 투병했던 킹 여사는 지난 달 30일 향년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문: 킹 여사는 생전에 남편의 유산을 계승했을 뿐 아니라 그 밖에도 스스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중요한 것들로 어떤 것들을 꼽을 수 있겠습니까?

답: 킹 여사는 인종 차별과 빈곤 극복을 위한 남편의 비폭력 투쟁 메시지를 전파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킹 여사는 지난 1995년 미국의 소리와의 인터뷰에서 전 세계가 함께 들었던 [내게는 꿈이 있습니다.]로 시작되는 남편의 연설은 인류가 달성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하고 숭고한 목표에 대한 보편적인 호소였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킹 여사는 남편이 암살된 이후 조지아 주  아틀랜타에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기념관이 건립되도록 하는데 기여했고, 또한 1월의 마틴 루터 킹 목사 기념일이 연방 공휴일로 지정되도록 하기 위해 쉬지 않고 노력했습니다.

킹 여사는 지난 1985년 워싱턴에서 열린 인종 차별 반대 시위에 참가했다가 세 자녀와 함께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킹 여사는 또한 여성 문제 운동가로도 활동했고, 흑인과 다른 소수 인종들이 교육과 취업에서 차별을 받지 않도록 배려하는 어퍼머티브 액션을 옹호하는데도 앞장섰습니다.

킹 여사는 인생이란 단지 이기적인 개인 자신의 목표만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그렇게 할 경우 인생이 풍부해진다고 덧붙였습니다. 

문: 지난 7일 거행된 킹 여사의 장례식에는 전 현직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급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거행돼 관심을 끌기도 했는데, 이번 킹 여사의 장례식에는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습니까?

답: 네, 미국 시간으로 7일 낮에 조지아 주의 새 생명 침례교회에서 6시간동안 계속된 킹 여사 장례식은 조지 부쉬 대통령은 물론 빌 클린턴, 조지 H 부쉬, 그리고 지미 카터 전 대통령 등 전현직 대통령 4명이 참석했고, 수 십명의 상하원 의원들과 민권 운동 지도자들, 그리고 친지 등 만 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습니다.

그리고, 교회 밖에는 자리가 부족한 안으로 들오가지 못한 추모객들도 많았습니다. 미국 언론들은 킹 여사의 장례식을 계기로 미국 사회가 다시 한 번 킹 여사가 평생 투쟁했던 가치인 인권과 평등의 의미를 되새겼다고 풀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