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 중국으로 탈출했다가 북한 공안당국에 체포되 다시 북한으로 끌려가 보위부와 안전부에서 매질과 온갖 곤혹을 당한뒤 다시 두만강을 넘어 중국으로 밀입국한 한 탈북여성의 역경을 서울에 있는 [정세진]탈북자 통신원이 현재 중국에 머물고 있는 그 여성과 직접 이동전화기를 이용해 통화를 가진뒤 다음과 같이 전해드립니다.

현재 중국에 있는 탈북 여성 정희정(가명) 씨는 많은 탈북자들처럼 북한에서 생계를 꾸려가기가 힘들어지자 2004년 여름, 북한을 탈출했습니다. 중국에서 돈을 벌어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나라 없는 백성은 개만도 못하다”는 북한의 속담처럼 탈북자들은 “어딜 가도 사람 대우”를 받지 못했습니다.

신분이 불안정하다보니 일자리조차 구하기 힘들었고 가정 보모나, 농촌의 삵일, 병자 수발 같은 일들도 겨우 구할 수 있었습니다. 힘겹게 일을 했지만 정씨가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하루에 중국돈 15원 남짓, 일감이 좋아 30원을 벌 때는 운이 좋은 경우입니다. 먹고 입는 것을 아끼며 부지런히 돈을 모았지만 정희정 씨는 자신의 몸 하나 추스르기도 힘에 겨웠습니다.

정씨는 그렇게 몇 달을 지내다 우연한 기회에 한국 사람을 만나 북한에 있는 가족과 전화연결을 시켜주는 대가로 중국돈 2천원을 벌게 되었다고 합니다. 목돈을 쥔 정희정씨는 고향에 돌아가 새집을 구하고 자식들과 함께 살 생각으로 다시 북한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정씨의 꿈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버스를 타고 북한 국경쪽으로 이동하던 중 중국 공안의 단속에 걸려 강제북송을 당하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2천원이 화근이었습니다. 북한 보위부원들은 2천원이 한국과 연관된 것이 아닌가며 정씨를 추궁했고 “덮어 놓고 중국에서 한국 사람, 안기부 사람, 목사를 만났느냐”며 혹독한 심문을 진행했습니다. 고문을 견디지 못한 정희정 씨는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정희정] “한달 동안 다 맞을 대로 맞고, 무릎이 다 썩살(굳은살)이 배기고 얼굴이 다 맞아서 없을 정도로 세게 맞았단 말입니다. 가시방망이(몽둥이) 갖고 때리고, 그리고 사람을 세워 놓는데 사람이 서지 못하니까 머리 기울면 발로 딱 차고, 걸상에 앉아서 발로 면상을 차니까 계속 이 면상 맞아서, 투항할 수밖에 없더라구요. 맞으니까.” 생전 처음 보위부 구류장을 체험한 정희정 씨는 모든 것이 낯설었습니다.

그래도 자신의 조국이고 “사회주의 우월성”을 선전하는 북한에 대해 일말의 기대를 갖고 있었지만,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중국에서도 겪어보지 못한 인권유린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보위부 구류장에서의 인권유린 상황을 계속해서 들어보겠습니다.

[정희정] “딱 서서 90도로 섰지 않습니까. 이거는 그저 맞는 것 보다 더 아프더라구. 계속 이렇게 해서 딱 90도로 허리를 굽혀 섰는데, 그렇게 한 시간쯤 되면 허리가 아프고 목이 아프면 조금 펴지 않습니까. 그럼 (계호원들이) 앉아서 지킨단 말입니다. 사람이 허리 굽히면, 조금 펴면 발로 올려다 찬단 말입니다. 그 다음에 몽둥이가 있습니다. 몽둥이 갖다 놓고 조금만 움직이면 움직이는 대로 따라 때린단 말입니다. 그 다음에 묶어 놓고 무릎 꿇려 앉혀 놓고 또 때리고..”

정희정 씨는 한국 문제와 관련이 있었지만 운이 좋게도 안전부로 넘겨졌습니다. 교화소나 그보다 더한 것을 생각하고 있었던 정씨는 안도의 숨을 내 쉬었습니다. 그러나 안전부 구류장은 또 다른 지옥이었습니다.

[정희정] “안전부 구류장에 두 달 있는 어간에 완전히 개죽음 다 만나서 마지막엔 사람이, 나 원래 체질상 약합니다 지금은 조금 부었단 말입니다 약하단 말입니다. (내가) 백골이 되어 허옇게 됐는데, (안전원들이) 막 개처럼 끌어다가..., ○○에 가면 강제노동대라는 게 있습니다. 거기로 6개월 가 있었습니다.

6개월 채 못 되게.” 보위부, 안전부를 거쳐 강제노동단련대에서 수감 생활을 마친 정희정 씨는 각종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부실한 영향공급과 불결한 환경 때문에 위병과 영양실조, 안질에 시달려야 했고 배에 가스가 차, 먹는 것도 숨 쉬는 것도 힘들었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앉아 있어야만 했던 수감생활의 후유증 때문에 다리를 펴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고향에 있는 언니들의 도움으로 겨우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된 정희정 씨는 채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2005년 중순, 다시 두만강을 넘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탈북 외엔 다른 길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무사히 북한을 탈출한 정씨는 몸이 회복되기 전까지 교회의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정희정] “거의 한달 두 달은 교회에서 쌀 타고, 아파서 그저 가만히 아무것도 아니 하고 그저 교회에서 돈 조금씩 100원, 200원씩 줄 때도 있고, 약 주고 이래서 먹고 있다가 이번에 (2005년) 9월달부터 가을(걷이) 하는데 있지 않습니까. 일하는데 거기 가서 악 품고 죽을 둥 살 둥 해서 그래 그저 요새는 조금 생활했습니다.” 중국에 있는 많은 탈북자들이 그렇듯 정희정 씨의 가장 큰 걱정은 중국 공안에 체포되는 것이고 다음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이었습니다.

[정희정] “지금 그저 첫째고 둘째고 (공안에) 잡혀갈까봐 안전이 제일 불안하고, 그 다음에 그저 어디 다니자면 차비도 솔직히 말해 없고 걸어다니고, 흔히 말하면 딸도 앓지 또 추우니까 석탄도 조금씩 사서 떼야지, 돈도 없고 재정적으로 좀 딸리지. (딸이 앓지만) 그저 약도 못 쓰고.....” 정희정 씨는 늘 독약을 품고 다닌다고 합니다. 강제북송되어 처벌을 받을 바엔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중국에선 늘 불안에 떨며 숨어다녀야 하는 정희정 씨, 그녀의 소망은 한국에 가서 “자유”를 찾는 것입니다.

[정희정] “이렇게 살 바에는 우리 한국 좀 데려가게 도와줬으면 좋겠다. 그저 그것 밖에 없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여기서 자유가 없이 살지 못하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서울에서 보내드린 탈북자 통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