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월간조선 대표 조갑제 기자가 18일 자정부터 탈북자들이 운영하는 자유북한방송을 통해 대북방송을 시작합니다.

인터뷰1) 이 방송을 들으시는 북한동포 여러분, 특히 노동당 간부, 국가안전보위부, 그리고 인민군 군관 여러분! 저는 조갑제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조갑제 기자는 첫 대북방송에서 앞으로 북한 동포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겠지만 “주로 박정희 대통령과 관련된 이야기를 통해서 오늘의 남북관계와 민족의 미래를 함께 생각”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조 기자는 먼저 올해 북한의 “신년사”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는 “아직도 북한 당국의 가장 큰 당면 문제는 먹고 사는 것, 즉 식량문제”라면서 “이 신년사를 읽으면서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인터뷰2) 이 신년사를 읽으면서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올해 겨울은 12월부터 강추위가 몰아치고 있습니다. 서울에선 한강이 벌써 얼어붙었고, 영하 14도까지 내려갔으며 이상하게도 전라도 지방에 눈이 많이 내리고 서울보다 더 추운 이상 한파가 몰아닥쳤습니다.

남쪽도 이러한데 여러분들이 보내시는 북녘 땅 겨울은 얼마나 지독하게도 춥겠습니까. 우리는 흔히 춥고 배고프다는 말을 합니다만, 그 말도 다 옛날 이야기가 되었지만 북녘동포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잊었던 그 말부터 떠오릅니다.

올해 로동신문 신년사를 읽으면서 조갑제 기자는 1963년 10월 5일 김일성 군사대학 제7기 졸업식에서 패기 넘치던 지도자 김일성의 한 연설문이 생각난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남한은 농업부문뿐 아니라 발전량, 시멘트 생산량, 철강생산량 등 중공업 부문에서는 북한과 비교되 되지 않을 만큼 뒤떨어졌다고 합니다.

김일성은 이 우위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습니다.

인터뷰3) “「남조선에서 박정희가 중농정책을 쓰고 자립경제를 건설하자는 목소리가 울려나오는 것만 해도 좋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찬성합니다. 그러나 그 자립경제는 미국과 일본의 돈을 꿔다가 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하면 식민지로 됩니다. 우리 북반부와 합작을 해야만 자립경제가 됩니다. 남조선당국이 남북합작을 하자고만 하면 우리는 『합작을 하면 우리는 당신네 군대도 먹여 살릴 수 있다.』” 김일성은 “남조선당국은 우리에게 북조선 군대를 먹여 살릴 수 있다는 말을 한 마디도 하지 못합니다.

이와 같이 물질적 힘, 경제적 자립이란 중요”하다고 큰 소리를 쳤습니다. 그리고 1960년대 김일성은 군사력 건설에 매진했습니다. 반면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력 건설에 집중했습니다. 조갑제 기자는 “1961년 5월 16일 군사혁명으로 집권한 박정희 소장은 군인으로서는 참 이상하게도 군사력 건설보다는 경제발전에 더 열심이었다”고 소개했습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은 “외화를 벌어와서는, 지금 김정일처럼 인민의 생활과 관계 없는 곳에 낭비하지 않고 공장을 지어 수출을 늘리는 데 알뜰히 썼다”고 덧붙였습니다. 다른 노선을 선택한 남과 북은 1970년대에 들어서 상황이 반전됩니다. 1963년 김일성이 박정희에게 식량원조를 주겠다고 자랑스럽게 제안한 지 14년 만에 박정희가 김일성에 대해서 식량원조를 받으라고 선언하게 되었습니다.

인터뷰4)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은 중화학공업 건설, 중동의 건설시장 진출, 그리고 농촌새마을운동을 힘차게 밀고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1976년부터는 한국의 국방비 지출도 북한을 앞서게 됩니다. 식량문제도 해결하게 됩니다. 수출도 1977년에 100억 달러를 돌파하게 됩니다. 지금 북한의 연간 수출이 20억 달러 정도 아닙니까. 한국은 30년 전에 벌써 그 다섯 배를 수출한 겁니다.

자신감이 붙은 朴대통령은 드디어 북한을 상대로 식량원조를 해주겠다고 제의하기에 이르는 것입니다. 조갑제 기자는 1970년대부터 북한 사람들의 생활이 나빠졌다면서 그 이유가 김정일의 사상통제 강화에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인터뷰5) 김정일은 1973년부터 후계자로 확정되자 아버지 김일성을 우상화하고 유일사상확립을 위한 10대 원칙 같은 것을 만들어 여러분들에 대한 사상통제를 강화해갑니다. 이때 여러분들이 받은 교육의 거의 전부는 김일성 주석의 혁명역사 아닙니까. 소련군이 아니라 김일성이가 북한을 해방했다고 새빨간 거짓말을 배우지 않았습니까.

여러분들은, 이런 거짓말을 배우는 데 시간을 너무 쓰다가 보니 정작 먹고사는 데 필요한 과학, 기술 교육은 받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되니 공장을 짓고 상품을 만들고 수출을 하는 일을 맡아 할 기술인력이 부족하게 되었지요. 이런 지나친 사상교육이 여러분들을 가난하게 만든 큰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수십년이 지난 2006년, 북한은 퇴보의 길을 걸어왔다고 조갑제 기자는 주장했습니다. 인터뷰6) 다시 시간이 흘러 2006년 로동신문 신년사는 식량문제 해결이 아직도 가장 큰 과제라고 고백합니다. 북한의 역사는 지난 40년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뒤로 밀려갔습니다. 퇴보의 역사였습니다.

물론 김정일은 자신이 진보세력이라고 자처합니다만 실제는 어떻습니까. 박정희가 진보세력이고 김정일은 퇴보 또는 수구반동세력이 되고 말았습니다. 역사의 흐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 40년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수백만 명의 동포들이 굶어죽었고 여러분들이 이 겨울을 춥고 배고픈 상태에서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조갑제 기자는 이 한겨울을 춥고 배고프게 보내야 하는 이유가 북한동포들의 잘못이 아니라면서, 그 책임자에 대해 언젠가 계산을 해야 할 날이 올 때까지 절대로 절망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보내드린 탈북자 통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