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이래 매년 1월 세째 월요일이면 미국 전역의 학교와 연방 사무실, 은행들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탄생과 생애를 기리기 위해 문을 닫습니다. 

미국 남침례교회 목사였던   킹 목사는 미국 남부에서의 인종차별실태에 전세계의 관심을 집중시킨 역동적인 민권운동 지도자로써, 비폭력 저항 전략과 인종주의 반대로 미국인들에게는  기억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1968년 테네시주 대도시, 맴피스에서 한 암살범의 총탄으로 유명을 달리한  킹 목사는 생전에 단순히  인종 문제에 대한 미국인들의 이해만을 촉구한 것은 아닙니다.

일부 역사가들은 킹목사는 생전에  미국의 경제 및 외교정책에도 반대했다고 지적하고, 그같은 킹목사의 실제 투쟁의 성격이 일반 미국인들기억속에 점차 희석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좀더 자세한 내용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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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 킹 목사의 탄생일을 연방 공휴일로 규정하기까지는 15년이 걸렸습니다. 미시간주 출신의 존 콘이어 하원의원은 킹 목사가  1968년 테네시주 맴피스시에서  암살된 지 나흘 뒤에 관련 법안을 제출했습니다.

하지만 킹목사의 생일을 연방정부 공휴일로 정하는  이 법안이 정식  법으로 제정된 것은 암살 15년만인  1983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서명에 의해서였고, 그나마 정식 시행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3년이 지난 뒤의 일이었습니다.  

 킹 목사의 가족과 추종자들은 공휴일 지정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 일부 역사가들은 이 공휴일이 민권지도자였던 킹 목사의 실제 역사적  유산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우려하고 있습니다.

킹 목사와 남부 기독교지도자회의에 대한 저술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데이비드 게로우씨는킹목사 기념일 행사와 관련해 가장 큰 위험은  "나에게는 꿈이 있다"는 연설을 몇번이고 되풀이 하는 데 있다고 말합니다.

개로우씨는 지난 1963년 워싱턴의 링컨기념관 계단에서 킹 목사가 한 이 연설은 생전에 킹목사가  주창했던 신념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면서 이 연설이 사실과는 달리 킹 목사를 장미빛 희망을 가진 낙관주의자로 잘못 그리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게로우씨는 이 한 차례의 연설에 너무 초점을 맞출 경우 젊은이들이 킹 목사에 대해 잘못된 인상을 가질 수 있으며, 아울러 경제적  불평등과 미국의 외교정책에 대한 비판자로서의 킹 목사의 실제 활동에는 종종 주목하지 않게 된다고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킹 목사는 암살 당일  미국남부  청소부들의 파업을 지원하기 위해 테네시주 멤피스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망하기 바로 전에  "미국이 지옥에 갈 수도 있는 이유"란 제목의 연설문을 작성 중이었습니다. 

킹 목사는 이보다 2년 전 시카고 북부 빈민지역으로 이사해 도시빈곤층에 대한 전국민의  관심을 촉구하는 한편  남부지역만이 미국에서  인종 문제를 지닌 유일한 지역이라는 생각이 잘못임을 역설했습니다. 킹목사는 또 1967년 뉴욕에서의 한 연설에서는 미국을 `세계 폭력의 최대 원인 제공자'로 비난하는 등 베트남 전쟁을 공개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스탠포드대학교의 킹 목사 연구자로 지난 20년 간  킹목사의 서한과 연설 등을 편집해온 크레이본 카슨씨는 민권 문제를  협의적으로 좁게  풀이하는 것은 대법원 판결에서 나타난대로  미국이 우선시하는 가치와  남부에서 흑인들이 받는 처우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문제해결에 가장 손쉬운 길이  었다고 말합니다.

카슨씨는 킹 목사는 남부에서와 마찬가지로 북부에서도 일상적이었던 이 문제들에 맞서기 시작하면서 큰 어려움에 직면했을 것이라면서, 미국은 아직도 이 문제와 관련해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미국인들은 왜 킹 목사가  경제정책과 베트남 전쟁보다는 인종과 비폭력 문제에만  주력했던 것으로 기억하는 것인지 이에관해  역사학자인 게로우씨는 이는 오늘날 킹 목사가 주창한 인종차별 종식에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게로우씨는 만일 킹목사생일과 생전의 업적을 기리는 연방 공휴일이 민주사회주의자,  혹은 베트남과 동남아시아에서의 미국의 군국주의에 대한 혹독한 비판자로서의 킹 목사를 기리는 것이라면 이  날을 맞아 미국인들은 미국사회가 1968년에 비해 경제적 평등상황이 나아졌는지, 혹은 1968년 이후 미국의 외교정책이  킹 목사가 강력히 비판했던 군국주의와 일방주의에서 근본적으로 달라졌는지를 또다시 깊이 성찰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게로우씨는 킹 목사의 생일이 연방 공휴일이 된 상황에서 그의 역사적 평판이 순화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게로우씨는 가장 보수적인 정치 지도자들마저도 킹 목사의 유산인 인종차별 반대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이 때문에 킹 목사 기념일은 두 가지 서로 상충되는  의미를 주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게로우씨는 킹목사의 생애를 재조명하는 새해 정월 세번째 월요일 생일 기념일은   미국 내 역사적으로 그치지 않고 있는  인종 문제에   미국민의 관심을 다시 한번 불러 모으는  다른 한편으로 아직도  경제적 불평등 속에 싸우는 젊은 흑인들에게는, 이들이 태어나기 전에 세상을 떠난 침례교 목사, 마틴 루터  킹 목사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영문)

INTRO: On the third Monday of every January since 1986, schools, federal offices, and banks across the United States have been closed, so that Americans can celebrate the birth and life of Martin Luther King, Jr. Reverend King was the dynamic civil rights leader who focused the world's attention on the problem of racial segregation in the American South. He is remembered for his strategy of non-violent resistance and his opposition to racism. But before he was assassinated in 1968, Reverend King had begun to challenge more than just America's understanding of race. And as VOA's Maura Farrelly reports, some prominent historians fear that the civil rights leader's opposition to American economic and foreign policy is being forgotten.

TEXT: It took fifteen years to create the Martin Luther King, Jr. federal holiday. Congressman John Conyers of Michigan introduced the legislation just four days after the civil rights leader was assassinated. But it wasn't until 1983 that President Ronald Reagan signed the holiday into law, and that legislation didn't take effect until three years later. Reverend King's family and followers fought hard for the holiday - but 20 years after it was first celebrated, some historians worry that Martin Luther King, Jr. Day may be doing a great disservice to the civil rights leader's legacy.

AUDIO: CUT ONE: GARROW
The greatest danger by far with King birthday celebrations is the umpteenth re-playing of the 'I have a Dream' speech.

TEXT: David Garrow is author of the Pulitzer Prize-winning book, Bearing the Cross: Martin Luther King, Jr. and the Southern Christian Leadership Conference. He calls the now famous 'I have a Dream' speech, which Reverend King delivered in 1963 on the steps of the Lincoln Memorial in Washington, D.C., an unrepresentative sample of what the civil leader stood for. Professor Garrow says that speech makes Martin Luther King look like a rosey-eyed optimist, which he was not.

AUDIO: CUT TWO: GARROW
I'm very fearful that younger people are left with a quite misleading impression of King that focuses too much on that one very upbeat speech, and often-times gives no attention whatsoever to King as a critic of economic inequality and American foreign policy around the world.

TEXT: On the day he was assassinated, Martin Luther King was in Memphis, Tennessee, supporting a strike that had been launched by sanitation workers there. He was writing a sermon entitled 'Why America May Go to Hell' just moments before he died. Two years earlier, he had moved into a slum in the northern city of Chicago, calling attention to urban poverty - and challenging the notion that the South was the only region that had a problem with race. Reverend King had also become an outspoken critic of the war in Vietnam, calling the United States 'the greatest purveyor of violence in the world today' during a sermon he delivered in New York in 1967.

AUDIO: CUT THREE: CARSON
In some respects, the civil rights issues, narrowly conceived, were the easiest to resolve, because there you had a distinction between the way black people were treated in the South, and the dominant values of the nation, as expressed by the [U.S.] Supreme Court in the Brown [vs. Board of Education] decision [which outlawed segregation.]

TEXT: Clayborne Carson is director of the King Papers Project at Stanford University. He's been editing the correspondence and speeches of Martin Luther King for the last 20 years.

AUDIO: CUT FOUR: CARSON
When King started to confront the issues that were as common in the North as in the South, then I think he faced a much greater challenge. And I think that's the challenge we still face today.

TEXT: So why is it that public remembrances of Reverend King have been so focused on the issues of race and non-violence, rather than on his criticisms of economic policy and the Vietnam War? Historian David Garrow says it's because nowadays, very few people object to Martin Luther King's call for an end to racial segregation.

AUDIO: CUT FIVE: GARROW
If, on the other hand, King holiday events addressed King's identifying himself as a Democratic Socialist, or King emerging as a very outspoken critic of American militarism in Vietnam and Southeast Asia, then holiday celebrations would have to confront whether American society today has any greater level of economic equality than it did in 1968, and whether American foreign policy in the years since 1968 is fundamentally different than the militarism and go-it-alone attitudes that King criticized so forcefully.

TEXT: David Garrow says the so-called sweetening of Martin Luther King's historical reputation was unavoidable once the man's birthday became a federal holiday. He says even the most conservative political leaders have had to find a way of embracing Reverend King's legacy-and an emphasis on the Baptist preacher's opposition to racial segregation has been that way. For this reason, David Garrow says, Martin Luther King, Jr. Day has been a mixed blessing. On the one hand, it calls national attention to America's problematic history with race. But on the other hand, he says, the holiday has made it difficult for young African-Americans struggling with economic inequality to identify with the civil rights leader who was killed before they were born. I'm Maura Farr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