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국이 지난 몇 년간 북한과의 국경 지대 경비를 대폭 강화하고 탈북자 단속을 집중적으로 펼치면서 중국내 탈북자 수가 크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약 밀매와 북한 여성들을 상대로 한 인신 매매 행위는 더욱 조직화되고 있는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중국 현지에서 VOA 기자가 보내온 자세한 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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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북한의 남양과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중국 변방 도시 도문!   아침부터 인근 중국 인민 해방군 부대에서 들려오는 군인들의 훈련 소리가  아직 물안개가 채 가시지 않은  두만강가에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4-5년전만해도 이곳 도문 세관 주변의 관광 단지에는 탈북자 꽃제비들이 관광객들을 상대로 구걸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의 모습은 흔적 조차 볼 수 없습니다. 지난 3-4년 동안 중국 당국이 인민 해방군 수 만명을 국경에 배치하는 등 경비를 강화하고  탈북자들을 대대적으로 체포해 강제 북송했기 때문입니다.

전 중국 공산당 지역 간부 출신으로 현재 기독교 단체와 함께 대북한 지원 사업을 하고 있는 조선족 장준성씨는 현 국경 지역의 분위기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옛날에는 국경지대의 수비가 아주 말이 아니었거든요. 그러나 지금 수비 상황은 사냥개까지 다 출동시키지 않습니까? 그리고 장비가 아주 그렇구, 군인수도 되게 많거든요. “

장씨는 중국 당국이 탈북자를 체포하는 공안 요원들에게 일계급 특진 등 여러 특혜를 제공하는 한편, 탈북자를 신고하는 주민들에게도 미화 6백달러가 넘는  포상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제는 돈을 걸고 합니다. 돈! 들었겠지만 5천원 아닙니까? 상금이! 돈을 걸고 하니까 모두 죽자 살자 하지요. 신고하는 차원이나 여러가지로.”

중국 공안에 체포된 탈북자 대부분은 북한 남양과 도문을 연결하는 이곳 도문 대교를 통해 북한으로 송환됩니다.

도문 대교앞 전망대에서 관광객들에게 북한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 조선족 리춘애씨는 올 봄까지만해도  탈북자 송환 차량을 자주 목격했다고 말합니다.

 “혹시 가다 건너갑니다. 아직도 있습니다….근간에도 갔습니다 더러. 한 차씩 싣고. 그 전에는 많았는데 요즘에는 적어진것 같아요.”

리씨는 송환용 승합차 한 대가 보통 탈북자 10명을 싣고 넘어간다며 현재는 덜 하지만 단속 바람이 거세던 작년과 올 초에는 일주일에 여러 대를 목격했다고 말합니다.

이곳 일부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최전까지 탈북자 수를 적어도 5천명 이하로 줄이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조선족 자치주를 중심으로 강도 높은 단속을  펼치고 있습니다. 탈북자 인권 문제가 자칫 올림픽 개최국 이미지에 손상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 당국의 이 같은 단속 강화로 5년여전, 10만에서 20만명 이상으로 추산되던 중국내 탈북자 수는 큰 폭으로 줄어든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비밀리에 탈북자 지원 활동을 하고 있는 주요 민간 단체 관계자들과 기독교 선교사들은 현재 중국내 탈북자수를 대략 5만명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이 곳은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주도 연길!

최근의 한류 바람을 상징하듯 거리 곳곳에서 남한 인기 가수들의 대형 사진과 노래들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인구 45만여명 가운데 조선족이 60 여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이 도시에는 중국어를 못해도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에 탈북자들이 많이 거주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 10년 이상 활동하고 있는 한 비정부기구의 관계자 소진숙씨는 중국 정부의 단속이 강화되면서 5만 이상으로 추산되던 연변의 탈북자 수가 지난 3-4년사이 3분의 2 이상 줄었다고 말합니다.

“ 지금 탈북자수는 연길은 만 2천여명..그저 추측하는거죠,. 안쪽으로 피신했을 겁니다.”

중국 당국의 집중 단속때문에 탈북자들은 연변 자치주를 벗어나  단속의 손 길이 비교적 덜한 흑룡강성 등 내륙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곳 연길에 남아 있는 탈북자들의 삶도 과거와 비교해 볼 때 더욱 힘들어졌습니다.

연길에서 탈북자들에게 거처를 제공하며 기술을 가르치고 있는 조선족 전도사 성미자씨는 연길 시내 탈북자들의 생활상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전에는 교회로 찾아오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제 정부에서 못하게해서.. 교회에서 NO 하니까, 이 사람들이 전부 노래방, 다방, 몸 파는데 전부 이런데 가 있어요.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중국내 탈북자수는 예전보다 많이 감소했지만 인신매매를 통해 중국으로 넘어오는 북한 여성들의 수는 여전히 줄지 않고 않습니다.

특히 북한 당국이 7.1 경제 개선 관리 조치를 단행한 이후 각 계층에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일반 주민들의 삶이 더 피폐해지자, 이제는 자신을 사 가라며 인신매매를 자원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습니다.

연길 중심가의 한 식당에서 지난 겨울 인신매매를 통해 중국으로 팔려왔다가 극적으로 탈출한 탈북자 박순이씨를 은밀히 만났습니다.  박씨는 북한의 인신매매 실태에 관해 이렇게 얘기합니다.

 “내가 만약에 가겠다하면 아는 분을 통한다말예요. 그 분도 또 다른 사람을 냄겨치기 한단 말예요. 물건을 냄겨야 하는 것처럼…..

기자: 내가 하겠다 하면 다리를 놓는건가?

여인: 예! 다리를 놔서 날 데려가시요!..

기자: 중국가서 어떻게 될것인지 알고 부탁하는 건가?

여인: 알고하죠. 우린 다 그걸 알고 오는 거예요.”

 

현재 선교 단체 보호아래 기술과 성경을 공부하고 있는 박씨는 북한의 어려운 경제 상황속에서도 가장 힘든 사람들이 여성들이라며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몸을 파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어쨌든 생활 형편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거예요. 고저 지난해보다 올해는 조금 낳아질까 하면 더하구, 또 더하구, 그리고 가다가도 이제처럼 애 엄마들이나 애들, 그리고 늙은 분들이 쓰러져 있는게 많아요. 길녘에. 그런데 누구 하나 들여다보는 사람이 없어요. 작년에도 그렇구, 올해도 더 한거예요.”

조선족 장준성씨는 인신 매매 조직수가 늘어나면서 최근 들어 매매 가격이 크게 상승했다고 말합니다.

 “은밀하고, 돈으로 계산하면 더 가격이 높아졌고, 과거에 중국돈 4천원했다면 이제는 만 원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중국측이 중시하고, 북한측도 국제사회에서 떠드니까 조심하거든..그래서 그만치 값이 올랐습니다.  (인신매매) 사건이 없어진것이 아니라 가격이 오른겁니다.”

장씨는 중국 당국의 단속이 강화되면서 인신매매 역시 과거보다 더욱 조직적으로 전문화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핸드폰이 국경지대에는 다 보급돼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 정보를 통해서 어느 도경으로 어느 시간에 어떻게 갈 것인지 다 짜고, 그 다음에 이 쪽에서 영접해 가는 것도, 택시도 어떻게 어떻게…군사 작전과 한 가지 입니다. 과거에는 한 무리씩 우르르 갔었지요”

인신매매를 통해 팔려간 여성들은 중국인과 강제 결혼을 해 살거나 술집 등으로 팔려갑니다. 탈북자 박씨는 팔린뒤에 남편에게 폭력을 당하는 등 생활이 어려워 자신처럼 도주하는 여성들이 적지 않다며, 그러나 잡히면 죽음을 각오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죽는거예요. 우린 중국 사람들한테, 만약에 남자분이 샀는데, 이 분 손에 다시 잡히면 죽는 것이다. 어짜피 죽는 거예요. 그래서 얼마 전에 조선에서 칼에 맞아 죽은 시체가 나왔잖아요.”

북한 여성들에 대한 인신매매 행위가 수 년째 지속되면서 이 곳 연변 지역에는 또 다른 피해자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바로 인신 매매된 여성들이 낳은 자녀들입니다. 이 들은 중국인 아빠와 결혼한 탈북자 엄마가 공안에 체포돼 북송되거나 외지로, 또는 한국으로 도망치면서 고아로 버려지고 있습니다. 

탈북자 여성과 결혼한 중국인 남성들은 대개 가난하거나 장애인들이 많기 때문에 자녀들을 돌볼 여력이 없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고아 몇 명을 은밀히 돌보고 있는 소진숙씨는 나이가 많은 아이들은 이제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됐다고 말합니다.

 “지금 현재 유치원, 빠르면 초등학교 1학년 들어갈 나이가 됐는데, 버림을 받고 ..가난하니까…그래서 유리하는 아이들이 많은편입니다.”

중국 당국은 중국 남성과 탈북자 여성 사이에 태어난 자녀들을 정식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불법 결혼이기 때문에 자녀들을 국민으로 인정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 자녀들은 호구도 받지 못한 채 아무도 반기지 않는 이방인으로 하루 하루를 어렵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두만강에는 다시 차가운 겨울이 찾아 왔습니다. 이 비극의 강이 얼어붙고 국경에 밤이 찾아 오면 박순이씨와 같은 이름 모를 사람들이 또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강을 넘어 올 것입니다.

 “엄마가 데리고 못가!  엄마가 저기가서 자리잡고 너를 데리러 올께! 나의 손을 꼭 잡고 엄마 나도 데려다 달라..여기 있으면 나도 죽는다 죽는다!….지금도 고저 밥을 먹을 때나 누워서 잘 때나. 그 얘들 생각할때면 하루 빨리 집에 돌아가야 하는데…돌아가야 하는데…하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가족을 그리는 탈북자 박순이씨의 흐느끼는 소리를 먹음은 채 두만강은 소리 없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