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요덕 정치범 수용소에 4년간 투옥당했다가 2004년 5월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 김수철씨를 통해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실태를 서울에 있는 [강혁]통신원이 전해드립니다.

정치범수용소, 과거의 유물처럼 느껴지는 이 말이 21세기 북한에서는 현재진행형에 있습니다. 수령의 사진을 잘 보관하지 못했다는 죄로, 할아버지가 지주였고, 기독교인이었다는 죄로,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친척이 반동이라는 이유로, 살기 위해 중국으로 탈출해 한국행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남조선 노래를 흥얼거렸다는 이유로 수많은 북한 주민들이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수십만의 북한 주민들이 신음하고 있는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실상을 탈북자 김수철(가명, 43세) 씨를 통해 들어봤습니다.

 김수철 씨는 2000년 2월부터 2003년 4월까지 함경북도 요덕수용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다 2004년 5월에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우선 김씨가 증언을 하게 된 동기부터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증언을 하게 된 동기는 북한의 정치범수용소가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며 아직까지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합니다.” 김수철 씨는 수용소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것이 ‘강제노동’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수용소 생활에서 가장 힘든 것이 강제노동입니다. 여름에는 아침 6시부터 저녁 8시까지 겨울에는 아침 8시부터 저녁 5시까지 견디기 힘든 강제노동을 시키고 있습니다. 동절기 작업시간이 짧은 이유는 “일찍 해가 떨어져 도주우려가 있기 때문에 바깥에서의 작업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대신 오후 5시부터 저녁 8시까지는 실내에서 ‘새끼꼬기’를 했습니다.

하루 평균 12시간이 넘는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지만 수감자들에게 지급되는 식량은 옥수수 600그램에 불과합니다. 

 “식사는 하루에 강냉이 600g, 끼당 200g씩을 지급하고 있지만 다른 영양을 섭취할 만한 그 어떤 다른 것도 제공되지 않으므로 영양실조와 그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한 경우가 허다하고 있습니다. 강철환(북한민주화운동본부 공동대표) 씨의 수기 ‘수용소의 노래(시대정신)’를 보면 강 씨가 요덕수용소에 있었던 10년 동안 매년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100명의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요덕수용소에 4년 6개월 동안 수감되었던 김태진(북한민주화운동본부 공동대표)씨도 영양실조와 관련된 질병으로 매주 한 명 이상씩 죽어나가는 것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바 있습니다. 혹독한 노동과 열악한 식량사정으로 여성들은 생리조차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특히 여자들은 힘든 수용소 생활에 몸이 허약하다나니 생리를 전혀 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정치범수용소에서는 인간성마저 파괴되고 있습니다. 김수철 씨는 “일반적으로 사람이 죽으면 눈물이 나고 슬퍼야 하는데 수용소에서는 사람이 죽기를 기다리는 현상까지 나타다고 있다”는 충격적인 증언을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죽으면 눈물이 나고 슬퍼야 하는데 우리 수용소에서는 그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이 죽으면, 죽기를 기다리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죽고 나가면 그 사람을 묻어주면 수용소 측에서 식량공급을 조금 더 해줍니다. 그 덕분에 밥을 많이 먹고 되거든요. 그러니까 죽기를 기다리는 사람도 일부 있었습니다. 저 역시도 그렇게 해가지고 한번 배불리 먹어본 날이 있습니다.”

죽음이 일상화 되어 있는 곳,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는 이유로 사람이 죽기를 기다리는 곳이 바로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인 것입니다. 김수철 씨는 공개처형과 비밀처형도 여전히 존재한다고 증언했습니다. 

 “공개처형은 제가 수감되어 있는 기간 두 차례나 체험하였는데 2003년 3월 5일, 이날에 김호석이라는 사람이 우연히 도주시도를 하려는 것이 하니라 대열을 이탈하였다고 하여 15분간 찾다가 찾지 못하니까 도주자로 낙인되어 공개처형 당했습니다.” 2000년 8월 26일엔 함경북도 부령군 부령화학공장 자재지도원 최광호라는 사람이 도주자로 몰려 공개처형 당했다고 합니다.

김수철 씨에 따르면 공개처형은 모든 수감자들을 모아놓고 20-30미터 앞에서 바로 공개처형을 실시한다고 합니다. 김수철씨는 밤에 담당보위부원에 끌려가 돌아오지 않는 사람도 수감기간 다섯 명을 목격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경우가 제가 지금 이름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 이야기 못하는데 제가 수감된 기간 한 다섯 명 정도가 있었습니다. 밤에 끌려나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이...” 김 씨는 이들 다섯명이 비밀처형된 것으로 안다며 “수용소에서는 그런 경우가 비일비재하며 그런 경우는 백발백중 비밀처형된다”고 말했습니다. 강냉이 600그램으로 하루 평균 12시간이 넘는 강제노동을 견뎌야 하는 곳, 공개처형과 비밀처형, 죽음일 일상화 되어 있는 곳, 바로 그곳이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보내드린 탈북자 통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