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행을 시도하다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강제북송된 탈북자들이 북한내 최악의 인권유린 장소인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고 있다고 증언한 북한 요덕 수용소 출신 탈북자 김수철씨의 기자회견내용을 서울에 있는 미국의 소리 [김민수]통신원이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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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단법인 북한민주화운동본부(공동대표 강철환, 김태진)는 22일 서울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 요덕수용소 탈북자출신 수감자’ 34명의 명단을 공개했습니다. 증언자는 탈북자 김수철 씨(43,남, 2004년 5월 입국), 김 씨는 2000년 2월부터 2003년 4월까지 함경남도 요덕수용소(15호 관리소) 구읍지구 서림천지역에서 “한국 행 시도가 탄로 난 탈북자” 40여명과 같이 수감되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요덕수용소에서 내가 본 탈북자들은 대체로 한국으로 오려고 시도하다가 수용소에 잡혀온 탈북자들이 많았습니다. 제가 수감생활을 한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탈북자들이 많이 수감되었는데 하루에 20명 내지 30명씩 잡혀온 경우도 있었습니다. 내가 생각해보건대 서림천지역 수감약 약 200여명 중 그 중에 같이 생활하던 탈북자가 40여명 되었으며 그 외에 죽거나 이름을 모르는 탈북자들이 서림천지역에만 140여명은 더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수철 씨가 서림천지역에 수감되어 있는 탈북자 숫자를 180여명으로 추산한 근거를 들어보겠습니다. 

 “서림천지역에서는 우리가 사람 죽게되면 이런 비석이 아니고 자그마한 말뚝을 꼽아 놓는데 그 말뚝이 탈북자들 죽은 것이 한 70개가 탈북자였습니다.”

이 외에 김수철 씨가 출소되어 나오기 전인 2003년에, 정치범수용소에 처음들어 온 사람들에게 수용소 내 질서와 습관을 익히게 하는 장소인 ‘외래(外來)에 70여명의 ’탈북자 출신 수감자‘가 대기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사망자 70명과, 외래자(外來者) 70여명, 김수철 씨와 함께 생활했던 탈북자 출신 수감자 40여명을 합하면 180여명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김수철 씨가 수감되어 있었던 요덕수용소는 구읍리, 립석리 대숙리, 용평리, 평전리 이상 5개 지역이 있고 약 5만명이 수용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서림천지역은 요덕수용소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김수철 씨 또한 요덕수용소에 얼마나 많은 탈북자 출신 수감자들이 수감되어 있는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현재까지는 정확히 몇 명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섯구역까지 합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현재 그렇게 수용되어 있는지 짐작은 못하겠습니다. 근데 제가 많은 사람들이 수감됐다는 것을 알게됐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탈북자들이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어 있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99년 11월 중국을 거쳐 러시아로 입국하려다 러시아 국경수비대에 체포되었던 허영일(33세)씨 일행 7명 중 5명은 요덕수용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이들 다섯 명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는지 김수철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여기서 허영일의 처 박영순이는 수용소에 들어와 2개월만에 사망하였습니다. 제가 출소할 당시 이 사람들은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박영순(30세)씨와 당시 18세의 김성일 씨는 영양실조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허영일 씨와 이동명(22세)씨, 장호영(22세)씨는 아직 수감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김수철 씨는 말했습니다. 요덕수용소에 끌려오지 않은 나머지 두 명인 김광호(28세)씨와 신원미상의 한 사람은 “조사과정에서 죄질이 무겁다고 판명돼 종신수용소인 회령관리소로 끌려갔다”고 합니다. 2000년 베이징 한국대사관에 진입했다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강제북송된 노광철(32세) 씨도 요덕수용소에 수감되었습니다.

 “또한 베이징 주재 한국 대사관에 진입하려다가 끌려나온 탈북자도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노광철이라고 당시 32살이었는데 함북도 온성군 남양구에 살았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이야기하기를 한국 대사관에 진입했다 체포되어, 대사관 마당까지 갔는데 중국 공안이 자기를 붙잡아 끌고나와 수용소까지 오게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몽골 국경을 넘던 광선, 광일 형제도 2002년 11월 요덕수용소에 끌려왔습니다. 

 “2002년 11월 성은 정확이 지금 기억나지 않는데 어린 애들까지도 잡혀왔습니다. 형제인데 형 이름은 광선(19세)이고 동생 이름은 광일(16세)이었습니다. 집은 라진선봉시라구 하였습니다. 몽골 국경을 넘다가 잡혀서 수용소에 왔다고 하였습니다.”

심지어 관계기관 요원들이 실적과 승진을 위해 탈북자들을 유인납치하는 행각도 벌였다고 합니다. 보위부 공작조를 투입해 북한 주민들 중 대상을 선정해 한국행을 시켰주겠다고 유인한 후 체포해서 자신들의 실적을 올린 사례도 있었습니다. 북한 주민 김일태(38세)씨 가족(아내 최경희, 12살 아들, 9살 딸)이 이 공작조의 유인납치에 걸려 한국행을 시도했다는 혐의로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었다고 김수철 씨는 증언했습니다.

한편 중국에 나가 기독교를 접했다는 이유로 모진 구타를 당해 사망한 탈북자도 김수철 씨는 목격했습니다.

 “(제가) 회령시 보위부 구류장에 있을 때 안권순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중국에 와서 기독교를 접했다고 하여 구타와 고문을 받아 거의 죽게됐는데, 옆 사람들이 어떻게 의사를 불러다가 좀 치료 안된겠냐 하고 물어보니까 보위원이 ‘하나님을 믿는 놈이니까 하나님보고 고쳐달라고 해라’고 하여 그렇게 방치해 둠으로써 겨울에 얼마 못가 죽고 말았습니다.”

최근 일각에서는 정치범수용소가 80-90년대에 존재했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수철 씨의 증언으로 북한 내 최악의 인권유린 장소인 정치범수용소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과 수많은 탈북자들이 한국행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기독교를 접했다는 이유로 재판절차 없이 수감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보내드린 탈북자 통신이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