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흑인 민권 운동의 대표적 인물인 로사 팍스( Rosa Parks) 여사가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팍스씨의 생애와 업적에 관해 알아 보겠습니다.

문: 로사 팍스씨 하면 흑인 민권 운동의 도화선이 됐던 버스 사건이 먼저 떠오르는데요. 먼저 버스 사건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죠?

답: 버스 사건을 말씀드리려면 당시 시대 상황부터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링컨 전 대통령의 노력으로 미국에서 흑인 노예 제도가 오래전 철폐됐지만 1950년대에도 여전히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인종 차별이 매우 극심했습니다. 당시 남부 알라바마주 몽고메리시에서는 공공 장소에서 흑백의 분리를 규정해 백인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것을 골자로 하는 짐 크로법이 시행되고 있었습니다.

이 법의 조항가운데는 버스 승차시 앞자리 10번째 줄까지는 백인들만 않을 수 있고 그 뒷자석에만 흑인들이 않을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습니다. 또 앞자리 백인들의 좌석이 만원일 경우 그 뒷자리도 흑인들이 양보하도록 조례로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955년 12월 당시 버스의 11번째 좌석에 않아있던 로사 팍스씨는 좌석을 요구하는 백인의 요구를 거절해 경찰에 체포되는 운명을 맞았습니다. 팍스씨가 생존해 있을때 증언했던 말을 잠시 들어보시죠?

팍스 여사는 버스 운전사가 와서 자리를 양보하라고 요구했고 주위에 않은 다른 흑인들은 일어섰지만 자신은, 요구를 거부할 경우 체포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거절했다고 말했습니다.

문: 당시 상황으로 봤을때 팍스씨의 거부는 대단히 용기있는 행동이었을것 같은데 체포를 감수하고 여성으로서 불의에 대항했던 이유에 대해 팍스씨는 어떻게 설명했나요?

답: 로사 팍스 여사는 한 인간으로서 예의와 존중을 받고 싶었다고 회고했습니다.

팍스 여사는 자신과 백인이 똑 같은 가격의 승차료를 냈는데도 불구하고 차별 대우를 받는데 몹시 불쾌했었다며 자신은 버스와 그 밖의 장소에서 백이들과 똑같이 인간으로서 존중을 받길 원했다고 말했습니다. 팍스씨는 결국 버스 운전사의 신고로 경찰에 체포됐고, 이에 분노한 흑인들은 하나로 결집해서 대대적인 버스 승차 거부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이 운동을 주도하던 26살의 인물이 훗날  미국 흑인 민권 운동의 아버지로 불린 마틴 루터 킹 목사였습니다. 결과적으로 한 여성의 작은 용기가 전국적인 흑인 민권 운동으로 확산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던 것입니다.

문: 당시 승차 거부 운동으로 흑인들이 얻은 결실은 어떤 것들이었습니까?

답 : 흑인들은 1956년 12월, 연방 대법원이 몽고메리시 정부에 버스 인종 차별 대우를 철폐하라고 판결할때까지 무려 382일이나 승차 거부 운동을 계속했습니다.  

버스 승객의 70 퍼센트를 차지하는 흑인들의 승차 거부 운동으로 사업에 큰 타격을 입은 버스 회사들도 대법원의 판결을 환영했습니다. 그리고 몽고메리시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은  다른 지역에도 연쇄 반응을 일으켜 결국 미국 전역에서 흑인들에 대한 갖가지 인종 차별 제도가 폐지되는 촉매 역할을 했습니다. 그 결과 1964년 미국 의회는 인종과 종교 차별 금지를 골자로 하는 민권법을 통과시켰습니다.

문: 로사 팍스 (Rosa Parks) 여사는 그 후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답:  팍스 여사는 버스 사건때문에 유명인이 됐지만 정작 본인과 가족은 고향을 떠나야하는 운명을 맞게됩니다. 그 이유는 백인 우월 집단인 KKK와 지역 백인들의 위협때문이었는데요. 당시 남부지역에서 흑인들에 대한 백인들의 구타와 살인, 테러 행위가 자주 발생했습니다. 팍스 여사 가족은 결국 북부 디트로이트시로 이주했고 그곳에서 팍스씨는 하원 의원 사무실 직원으로 일했고 이후 민권 운동의 대변인 역할을 하며 다양한 사회 활동을 펼쳤습니다.

미국내 여러 대학과 사회 단체들은 팍스 여사의 용기를 기려 명예 학위와 감사패를 수여했고 ‘네빌 브라더스’ 라는 그룹 가수는 ‘팍스 자매’라는 노래를 만들어 그녀의 업적을 찬양하기도 했습니다. 팍스 여사는 지난 1984년 한 라디오 프로그램과의 대담에서 자신을 가리켜  ‘자유를 원했던 인물, 그리고 다른 사람들 또한 자유롭게 되길 원했던 사람’으로 기억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