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문제 논의를 위한 6자회담이 오랜 우여곡절 끝에 지난 19일 극적인 합의에 이르면서 이 협상에 미국쪽 수석대표로 참가했던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시아 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힐 차관보는 적극적이고 거침없으면서도 동시에 신중한 행보로 회담 분위기를 이끌면서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던 북한의 핵 포기 합의를 이뤄낸 주역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20일 사설에서 이번 합의 성사에는 `힐 대표의 빼어난 협상력'이 크게 작용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워싱턴포스트는 21일 인물란에 힐 대표를 크게 소개했습니다. 힐 대표와 관련한 최근 언론보도들을 통해 그의 면면을 자세히 살펴봅니다.

*********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도널드 그레그씨는 미국의 소리 방송과의 전화대담에서 자신의 최근 북한 방문에 대해 설명하면서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등이 힐 차관보를 "과거와는 다른 협상상대로 인정할 뿐 아니라 존경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지난 1995년 보스니아 전쟁을 종식시킨 데이토나 평화협정의 미국 대표로, 힐씨의 상관이었던 리처드 홀부르크 전 유엔대사는 저서에서 힐 차관보에 대해 "총명하고 겁이 없으면서 논쟁을 좋아 하는 사람"이라며 "매우 냉정하면서도 동시에 열정적인 그의 기질이 빼어난 협상력을 돋보이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외교관이자 협상가로서의 힐 차관보의 이같은 자질이 북한의 오랜 핵 야심을 일단 포기하게 만든 주요 요인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올해 53살인 힐 차관보가 20여년에 걸친 외교관 생활 중 갖게 된 확신이라며 밝힌 견해는 그의 뛰어난 협상 기술이 몸에 벤 것임을 엿보게 합니다. 힐 차관보는 자신은 협상에서 "가치판단은 배제한 채 상대의 목표를 예상하고 분석하면서, 나의 이해관계에 맞는 방향으로 상대방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습니다.

힐 차관보는 북한과의 양자회담에 부정적인 부시 행정부 관계자들을 설득해  6자회담 틀 안에서의 양자접촉을 최대한 활용한 결과 북한쪽으로부터도 신뢰할 수 있는 협상 상대라는 평가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힐 차관보는 워싱턴포스트와의 회견에서 국무부와 국방부, 백악관 등의 엇갈린 요구에 대해 묻는 질문에 "최선의 외교는 국내에서 출발하는 것이며, 그런 것들에 대처할 수 없으면 외국인들과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라면서 이에 대처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힐 대표에 대해 6자회담의 한국측 수석대표이자 그와는 가까운 친구사이가 된 송민순 한국 외교부 차관보는 "힐씨는 일을 관리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정말로 뭔가를 하려고 하는 사람"이라면서 "우리는 역사의 장에서 한가롭게 있기 보다는 함께 역사를 만들기로 작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자신의 일에 적극적인 힐 차관보의 성향은 외교관으로서의 그의 진로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그가 마케도니아에 처음 대사로 부임하게 된 것은 그의 업무추진력에 매료된 당시 마케도니아 대통령이 대사로 강력히 추천한 것이 주효했습니다. 또 부시 행정부에서는 폴랜드 대사로 재직 중이던 그를 당시 폴랜드 대통령이 한껏 추켜세우면서 부시 대통령에게 유임을 부탁했다고 합니다. 힐 차관보는 이 일로 부시 대통령의 주목을 받게 됐습니다.

힐 차관보는 언론과의 관계에도 능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대부분 고위 행정부 당국자들이 익명으로 언론을 상대하는 것과는 달리 그는 주로 보도를 전제로 직접 언론에 나서는 것을 선호합니다. 

6자회담 기간 중에는 하루에 2~3 차례 기자들을 만나 진행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이런 그에게 콘도리사 라이스 국무장관은  6자회담 당시 중요한 협상 권한을 부여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보도하고 있습니다.

힐 차관보가 적극적이다 보니 일부 비판적인 시각도 없지 않습니다. 클린턴 행정부 당시 관리들은 힐씨가 때때로 협상과 관련한 지시를 벗어나거나, 상부의 지시를 창조적으로 해석하는 것 같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는 힐 차관보가 차관보로 부임하기 전 대사로 재직한 서울에서의 행적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힐 대사는 미국대사로는 처음으로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이 묻혀 있는 망월동 묘지를 참배해 한국인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힐 대사는 또 주한 미대사관 사이트에 토론방을 열고 한국인들의 다양한 궁금증에 직접 답했으며, 대학 등 한국 내 반미정서의 주요 본거지들을 찾아 다니며 연설을 하거나 토론에 참석하는 열정을 보였습니다.

주한 미국상공회의소의 고위 관계자인 타미 오버비씨는 "힐 대사는 내가 서울에 머문 18년 간 부임한 미국대사 중 재임기간은 가장 짧았지만 영향은 가장 컸던 사람"이라면서 "그는 언제나 도전할 준비가 돼 있으며 규칙을 깨는 사람이었다"고 말했습니다.

힐 대사 재직 중 한국에는 `힐을 사랑하는 모임', 이른바 `힐사모'란 조직이 생겨났습니다. 이들은 그가 워싱턴으로 부임하자 힐 대사에게 한국이름을 지어주자는 캠페인을 통해 `한덕'이란 이름을 선사했습니다. `하느님의 사신으로서 하느님과 세상을 이어주는 언덕'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힐 대사는 이 이름에 큰 관심을 표시하면서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6자회담이 타결된 직후 주한 미대사관의 토론방에는 힐 차관보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한 네티즌은 '한-미 우호는 당신에 의해서 한국땅에서 더욱 빛나고 있다"면서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힐 차관보는 워싱턴포스트와의 회견에서 자신은 국무부 동아시아 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아니라 마치 '북한 담당 차관보' 처럼 느껴진다고 농담조로 말했습니다. 그만큼 북한 핵 문제에 온통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지금 한국인들은 물론 전세계는 그가 이제 막 올바른 방향으로 첫 진전을 이룬 북한 핵 문제를 어떻게 끝까지 잘 마무리할지 깊은 관심과 기대를 갖고 지켜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