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수기를 통해 한국 주요언론에서 화제를 모은 18세 탈북소년, 변종혁군의 북한 탈출에 얽힌 어려움을 소개해 드립니다. 

“두 번째 세 번째 가니까 이런 각띠를 혁띠를 빼가지고 치더라고요 사람을. 그래서 참 많이 아팠고 많이 속상했지요.”

탈북 청소년 변종혁(18살)군은 4번의 강제북송 경험이 있습니다. 중국 공안이 탈북자들을 북한 측에 인계하는 순간부터 탈북자들은 짐승 취급을 받습니다. 보위부에서는 감방에 탈북자들을 수감하고 취조를 시작합니다.

취조과정에 밀수와 같은 단순 월경자와 정치범 혐의자를 구분하는 데 이 예심기간이 매우 혹독합니다. 변군처럼 미성년자의 경우 보통 일주일 정도 조사를 받고 ‘꽃제비 구호소’로 이송이 되지만, 대부분의 성인들은 죽기 직전까지 조사를 받고 노동단련대나 교화소 등지로 보내집니다.

변종혁 군도 처음 북송 됐을 때는 가볍게 매를 맞았지만 2번째부터는 쉼 없이 매를 맞았다고 합니다. 변군은 수기에 “열심히 맞고 피투성이가 되어 구호소에 갔다”고 당시 상황을 적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미성년자라서 어른들보다는 적게 맞”았다는 구절도 보입니다.

그렇다면 강제북송된 미성년자들이 수감된다는 ‘꽃제비 구호소’의 상황은 어떨까요. 변군이 경험한 구호소는 배고픔과, 강제노동, 억압, 죽음의 공간이었습니다. 구호소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하루 종일 일을 해야 했습니다. 가을에는 수확을 하고 이삭을 줍고, 겨울에는 거름을 만들거나 산에 올라가 나무를 했습니다.

사계절, 매일같이 고된 노역을 했지만 배급되는 식량은 매우 적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지급된  식량은 ‘영양가루’라고 하는, 유엔에서 공급한 이유식 종류의 식품으로, 변군의 표현에 따르면 “가루로 밥을 만들어서, 주먹 절반만큼의 양”을 주었다고 합니다. 만성적인 영양부족에 시달렸던 아이들은 병들어 죽거나 굶어 죽었습니다.

“거의 영양실조지요. 그러니까 밥을 못 먹어서, 거의 대부분이 다 그래요. 밥을 못 먹어서 배가 고파서 굶어 죽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요 그리고 병에 걸렸다거나 그런 사람들이....”

구호소에서는 “거의 매일 2-3명씩” 아이들이 죽어 나갔다고 합니다. 죽는 아이들이 많아지자 아예 “시체실”까지 만들어졌고 죽은 아이들의 시체는 다른 아이들이 치워야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죽어도 다 아이들이 치우지요. 시체실이 있어요. 시체를 보관하는 곳이 있거든요. 거의 하루에 2-3명은 죽거든요.”

한편 재탈북을 해 중국을 떠돌던 변종혁 군은 어머니와 누나랑 재회를 했고 교회의 도움으로 은신처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대하던 한국으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한국행을 준비하던 변군의 가족 앞에는 당시 두 가지 길이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는 (한국으로) 가다가 잡히면 그대로 북한에 나가면 '총살'을 당할테고, 또 하나는 이대로 중국에서 정신적인 고통을 받으면서, 인간답지 않은 생활”을 하는 것, 두 갈래의 길에서 변군의 가족들은 한국행을 선택했습니다.

변군에게 “왜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한국에 오려 했느냐”는 질문을 하자 “한국에 오지 않으면 중국에서 어떻게 하겠어요”라고 반문했습니다. 그는 “북한으로 돌아갈 수 없고 갈 생각도 없는 우리들은 떠돌아 다니는 나그네와 같다”면서, 어디에서든지 떳떳하게 신분증을 꺼내 보일 수 있도록 국적을 취득하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처음부터 국적을 가지고 싶었고 중국 애들처럼 진짜 공부하고 싶었고, 학교에서 떳떳하게 공부하고 싶었고, 내가 어디를 가든지 신분증을 보자고 할 때 내 신분증을 꺼낼 수 있을 정도로 그런 생활을 해보고 싶어해요.”

변군의 가족들은 피말리는 이틀을 기차에서 보낸 끝에 무사히 북경 진입에 성공합니다. 그리고 다른 탈북자들과 함께 독일학교 진입을 시도했지만 학교 담장 앞에서 중국 공안에 연행되고 말았습니다. 변군의 가족들은 강제 북송된 후 기적적으로 큰 처벌을 받지 않았고 다시 탈북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올 수 있는 2번째 기회를 잡았습니다. 이번에는 라오스로 가야 하는 아주 먼 길이었습니다. 변군 일행은 중국과 라오스 국경 근처까지 오는 길에 8번이 넘는 검문을 통과해야 했고, 라오스에 도착해서도 10개의 산을 넘어 미얀마로 이동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태국을 거쳐 마침내 한국, 변종혁 군은 한국에 발을 디딘 순간 “전에 살았던 기억들이 다 사라졌다”고 합니다.

“전에 살았던 것이 모두 사라지고요, 전에 살았던 기억들이 다 사라지고 그냥 다시 태어났다 이런 느낌밖에 안 들었어요.”

많은 탈북 청소년들이 변종혁 군처럼 어려운 과정을 거쳐 한국에 입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겐 한국사회 정착이라는 또 하나의 어려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물론 굶주림이나 체포의 위협은 없지만 새로운 체제에서 새로운 인생을 개척해 나가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방황도 하고 주저앉고 싶을 만큼 힘겨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변군은 고생한 만큼 “열심히 하자는 생각”으로 씩씩하게 자기 인생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예전에 고생했던 걸 생각하면 막 울컥 하잖아요. 진짜 내가 열심히 살아야 겠다. 예전에 그렇게 살았는데 한국에 와서도 내가 방랑하면서 살면은 적응 못하고 살면은 진짜 그것은 내가 원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열심히 하자는 생각으로 잘 견딘 것 같아요.”

6번의 탈북과 4번의 강제북송, 수없는 난관을 돌파한 끝에 한국에 입국한 18세 소년은, 중국에서 떠돌고 있는 탈북자들과 북한 인민들에게 “희망”을 결코 잊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희망을 잃지 마시고 항상 자기의 목표를 꼭 가지고, 꼭 한 가지 말할 것은 절대 희망을 잃지 말라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보내드린 탈북자 통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