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평양 류경 정주영 체육관에서 열린 한국가수 조용필의 단독공연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어제 (4일)밤 한국의 SBS 텔레비전을 통해 방송 되었습니다.

이 공연은 당시 한국에 생중계되기도 했지만, 어제 방송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는 조용필씨의 평양공연이 이루어 지기까지의 배경과 무대와 객석사이에 오갔던 한국과 북한 문화의 차이점을 극복해 가는 과정이 진솔하게 담겨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Q : 프로그램 제목이 평양에서 부른 꿈의 아리랑이라구요?

A : 네. 조용필씨의 평양공연을 공동 기획한SBS -TV의 광복 60주년 기념 특집HD 다큐멘터리『조용필, 평양에서 부른 꿈의 아리랑』입니다.

한국에서는 국민가수로 불리는 가수 조용필씨가 평양에서 부른 아리랑에는 남북한 사람들의 느끼는 아리랑은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데 의미를 두고 있고, 가수 조용필씨로서도 방송사의 특집프로그램 형식이 아닌 가수 개인의 콘서트로 또 꼭 한번 만나고 싶었던 북한 사람들 앞에서의 공연이 뜻깊었다고 말했습니다.

Q : 감정도 통했고 눈물도 흘렸다... 평양에서의 조용필 콘서트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더 궁금해지네요. 거의 1년만에 이뤄진 평양무대라고 알고 있습니다 자세히 전해주시죠?

A : 네. 지난 7차례 연기된 끝에 성사된 무대였습니다. 먼저 북측에서 조용필씨의 단독 콘서트를 제의해 왔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미뤄져 오다가 광복 60주년을 맞는 지난 8월에 역사적인 공연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조용필씨는 여느 가수들의 무대와는 달리 광복이나 통일의 의미만을 부각시킨 무대가 아닌 한국가수 조용필의 콘서트, 한국의 영상기술와 무대장치 등 더 넓고 풍부하게 다양하게 경험하지 못했던 한국 문화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A: 공연 하루전인 22일 조용필씨와 한국의 관계자가 탄 비행기가 서해 직항로로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한지 55분만 이었습니다.

낯설지만 늘 와보고 싶었던 평양에 도착했다는 기쁨에 조용필씨도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제주에서부터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월드컵 경기가 열린 스타디움을 중심으로 투어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는 조용필 씨였기에 제주에서 평양까지 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 컸다고 합니다,

Q : 그럼 평양공연의 무대장치나 기술효과들도 모두 한국에 가져간 것들이군요. 장비만 해도 적지 않았을 텐데, 설치하는 데 시간도 많이 걸렸을꺼구요.

A : 무대장치들은 공연 엿새 전에 출발했습니다. 5톤 트럭으로 35개 양입니다. 거의 대부분이 전자장비이기 때문에 23시간을 가야하는 뱃길이 부담스럽기도 했다고 합니다.

출발하면서 지체되는 바람에 남포세관원들까지 평양에서의 세관검사를 배려해주기도 했지만 무대설치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무대가 설치되어야 조명과 음향이 점검되고 총리허설을 할 수 있는데.. 북측에서는 리허설 시간을 제한했기 때문에 스텝들의 마음은 더욱 바쁘기만 했습니다.

Q: 조용필씨 사실 평양 공연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만을 갖고 있었던 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공연이라는 것이 원래 무대와 객석이 함께 어우러져야 하는 것인데... 말이죠. 평양관객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가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다구요?

A: 맞습니다. 조용필씨 역시 서울에 돌아와 가지 언론과이 인터뷰에서 가장 뜻깊은 공연이었지만 역시 너무나 어려운 공연이었다고 말했습니다. 평향공연을 위해 스탭들과 회의를 하면서 나눈 이야기에는 평양관객을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나타납니다.

A : 실제 평양공연을 하고 난 뒤 조용필씨의 느낌은 더 강한 표현으로 나타납니다. “딱 보는 순간 제가 표정이 없어서~ 사람이 왜 인사를 할 때 반갑습니다하고 인사하면 저쪽에서도 반가운 표정을 지어야 하는 데 전혀 표정이 없으니까 내가 숨이 딱 멎는 느낌~”

공연내내 무대 위에서7천명 평양 관객을 지켜본 남쪽 관계자는 마치 인형같았다고 말했습니다.

“뭐라 그럴까 그냥 가만히 앉아 있는 인형 같았다고 할까요? 사람이 앉아 있는 건지 인형인지 처음엔 놀랬어요. 그쪽에서도 놀랬을 꺼예요. 모든 장비라든가 사운드라든가 깜짝 놀랬을 꺼예요.. 우리도 미리 예상은 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라서 놀랐고,...서로가 놀랬죠.”

Q : 아무래도 여든 첫 곡이 중요하지 않나요? 평양 관객들에게 선사하는 음악이 어떻게 선곡이 되었을 지가 궁금하네요.

첫곡이 ‘위대한 탄생’이라는 곡인가요?

A : 네 그렇습니다. 여느 때 같으면 강렬한 사운드 만큼이나 큰 함성이 뒤다라 올법도 한데 평양에서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기에 무대도 관객도 놀랐던 것이고 어우러지는 것이 아는 무대에 압도되는 느낌이 가까웠습니다. 조용필 씨는 먼저 가장 화려한 영상으로 형형색색 조명이 관객들 위에 쏟아졌고 현란함에 관객들은 더 조용해 졌습니다.

이어 과거의 히트곡인 ‘단발머리’와 ‘못찾겠다 꾀꼬리’ 등 흥겨운 노래가 나왔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여전히 담담했습니다. 원래 농구경기장으로 지어진 정주영 체육관 한편에 노래가사를 볼 수 있는 대형 스크린이 있었지만 쳐다보기만 할 뿐 별 반응은 없었습니다.

관객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 바로 ‘친구여’라는 노래가 흘렀을 때 부터였습니다. 서정적인 가사가 평양사람들의 마음에도 다가왔던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1/3정도가 지나니까 서서히 풀리는 모습을 민감하게 느꼈거든요. 마치 사랑을... 조금 성숙되지는 못했지만 확인하고 눈빛을 맞추고 가는 느낌! 서로 이렇게 이제는 눈빛 맞추고 기분이 통하는~

A : 이어서 북한사람들에게도 인기가 있다는 그 겨울에 찻집이라는 노래가 흐르고 허공에 이서 꿈에라는 노래가 나오자 분명 따라 부르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소리를 들리지 않았지만 분명 움직이는 입술은 가사를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조용필씨의 소박한 유머가 더해지면서 그제서야 관객들이 소리를 내게 되었습니다.

“ 지금 느낌이요. 어렵습니다. 저도 음악생활을 굉장히 오래 했습니다. 37년간을 음악생활을 했습니다만 나이가 40이거든요... (웃음)...3살때부터 했어(웃음) 여기처럼 이렇게 떨려본 적이 없어~”

Q : 네.. 이정도면 방송후의 시청자들의 반응도 좀 특별하지 않았을까 하는데요. 어떻습니까?

A ; 네. 요즘 한국사람들은 TV로도 방송을 보지만 인터넷을 통한 방송을 보기도 하죠. 물론 휴대전화로 보기도 하구요. 해외에서도 인터넷을 통해 봤다면서 감정을 자제하고 있는 북한사람들이 서글퍼 보이기도 하고 .. 처음에는 얼음장 같았던 분위기가 점점 녹고 있다는 것이 짜릿한 느낌이었다면서 관객들이 일어나 앵콜을 청하며 기립박수를 치는 순간, 눈물이 날 정도였다고 글을 남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느낌은 한국에 살고 있는 탈북자들도 이례적인 반응이라 놀랍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전에 같으면 옆에 사람들이 무서워서 라고 이렇게 표현 못해요. 가서 대줄까봐...보고할까봐. 지금은 누구나 다 인상을 자기 나름대로 표현하쟎아요. 나도 보면서 자 신기할 정도예요. 제가 평양에서 인민반장으로 10년 있었거든요. 제가 통제하고 돌아다녔는데.. 나도 신기할 정도예요.”

A ; 북한 관객들을 사로잡은 노래는 무엇보다 조용필시가 직접 골랐다고 하는 북한 가수 전혜영이 부른 자장가였습니다. 노래가 끝나자 기립박수가 나오더니 이내 ‘험한 풍파되어 다시 만나네‘에서는 장단에 맞춰 박수가 나오더니 ’봉선화‘, ’황성옛터‘에 서는 눈시울이 젖는 관객도 있었습니다.

A:  조용필씨의 평양 콘서트는 북한에서 요청한 홀로아리랑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아쉬움도 많았지만 노래라는 문화로 얼어붙었던 마음을 녹일 수 있었다는 데 큰 성과를 거둔것이라고 공연관계자는 말했구요.

이 평양공연이 남북한 사람들의 마음을 어우러지게 하는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앞으로의 더 깊은 문화교류를 다짐했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전해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