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원장이 3일 밤, 지병인 갑상선 암으로 80세의 일기로 타계했습니다. 렌퀴스트 대법원장은 지난 33년간 미 대법원 판사와 대법원장으로 활동하면서 미국 역사의 산 증인이 되어 왔습니다. 렌퀴스트 대법원장의 사망 소식과 그의 삶을 조명하는 보도를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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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렌퀴스트 미국 대법원장이 3일 밤 워싱턴 근교, 버지니아주 알링턴 자택에서 3명의 자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했습니다. 렌퀴스트 대법원장은 1년 전에 갑상선암 진단을 받고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대법원장의 직무를 계속 수행해 왔으며 지난 7월에는 퇴임할 계획이 없음을 밝히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며칠간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결국 3일 밤에 타계했습니다. 그의 사망 소식을 접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4일 아침 백악관에서 행한 특별 연설에서 렌퀴스트 대법원장의 사망은 미국의 법조계와 국가에 대한 지대한 손실이라고 말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고 렌퀴스트 대법원장이 법치에 대한 깊은 헌신과 강한 지성으로 큰 존경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1924년 미국 중북부, 위스콘신주에서 태어난 렌퀴스트 씨는 제 2차 세계 대전 중에 미 육군 항공대에서 복무했습니다. 1952년 스탠포드 대학에서 법학 학위를 받은 이후 렌퀴스트씨는 제 2 차 대전 종전 후에 나치 전범들에 대한 누렌버그 재판에서 검사장으로 활약했던 로버트 잭슨 대법관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법조계에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그러다가 1971년에 리차드 닉슨 대통령에 의해서 대법관에 지명됐으며 이듬해인 1972년에 대법관에 공식 취임했습니다. 렌퀴스트 대법관은 임기 초반에 당시 대법원내 소수계였던 보수파 성향을 나타냈습니다.

예를 들어서 그는 1973년 찬성 5표 대 반대 4표로 낙태를 합법화하는 로 대 웨이드 (Roe versus Wade) 판결에서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그리고 1986년 당시 로날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서 대법원장에 임명된 이후에는 다른 보수 성향의 대법관들과 함께 대법원을 더욱 보수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갔습니다.

렌퀴스트 대법원장은 지난 1999년 미국 역사상 2번째였던 대통령 탄핵 재판을 주재했습니다. 렌퀴스트 대법원장은 미국회 상원이 빌 클린턴 대통령에 관한 탄핵 혐의를 기각함으로써 클린턴 대통령이 잔여 재임 임기를 끝까지 채울 수 있게 됐다는 결정을 발표했습니다.

렌퀴스트 대법원장은 상원 의원 3분의 2의 무죄 표결로 미 국회 상원은 탄핵 제 1조항에 대해서 피고, 윌리엄 제퍼슨 클린턴 대통령을 무죄로 판결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렌퀴스트 대법원장의 경력 가운데 가장 논란이 됐던 사례는 지난 2000년 대선에서 플로리다 재검표 중단을 명령한 판결일 것입니다.

대법원은 조지 부시 공화당 후보와 알 고어 민주당 후보가 막판까지 치열한 접전을 벌인 2000년 대선에서 플로리다주에서 재검표를 계속하도록 허용할 것을 요청하는 고어 후보의 청원을 기각함으로써 부시 대통령의 당선을 확정하는데 기여했습니다.

진보계는 이 판결이 대법원의 정치 개입이라고 비난한 반면에 보수계는 미국 헌법과 맥을 같이하는 판결이라며 환영했습니다. 한편, 부시 대통령은 4일, 렌퀴스트 대법원장의 공석을 신속하게 채우는 것이 미국에 대한 최상의 이익이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조만간에 후임자를 지명할 것임을 시사했습니다.

렌퀴스트 대법원장의 사망으로 대법원에서는 9명의 판사들 가운데 산드라 데이 오코너 판사가 지난 7월 1일 은퇴를 밝히면서 공백이 생긴지 2달여 만에 다시 두 번째 공석이 생기게 됐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오코너 판사의 후임으로 렌퀴스트 대법원장의 법률 서기를 지낸 존 로버츠 판사를 선택했습니다. 로버츠 지명자에 대한 상원 인준 청문회는 6일 부터 시작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