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에서 소방관은 이제 더이상 남자들만의 직업이 아닙니다. 1977년 여자도 소방관이 될 수 있도록 법이 바뀌면서 현재 미 전역에는 약 6천명의 여성이 소방관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2001년 9/11 테러 현장에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큰 활약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150만명에 이르는 남자 소방관에 비하면 그 수는 아직 미미한 수준입니다. 미국 내 여성 소방관의 역사와 이들의 역할 등에 대해 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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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1년 9월 11일에는 이슬람 테러분자들이 납치한 여객기 2대를 이용해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돌진했습니다. 소방관 등 구조요원들이 사고가 난 쌍둥이 빌딩 안으로 진입했고, 이 중 수백명이 사망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 두 채가 2시간만에 잿더미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세번째 여객기가 강타한 워싱턴의 국방부에서도 긴급구호 요원들은 부상자 구조를 위해 분주히 움직였습니다. 네번째 납치 여객기는 승객들이 납치범들에게 맞서 싸우면서 펜실베이니아 교외에 추락했습니다. 이 연쇄 테러공격으로 인한 사망자는 3천명에 달했습니다. 군인들과 마찬가지로 소방관들도 종종 "끈끈한 연대로 맺어진 형제"로 불립니다. 그렇지만 9/11 테러 당시 목숨을 무릅쓰고 구조활동에 나섰던 것은 남성들만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여성 구조대원들이 그날 부상을 입었고, 3명은 사망했습니다. <그라운드 제로의 여성들: 그들의 용기와 박애정신에 대한 이야기>란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9/11 당시 현장에 있던 여성 소방관들과 경찰관 등이 진술한 얘기들을 모은 것입니다. 뉴욕시 소방서의 간부인 브렌다 버크먼씨는 집에서 있던 중 9/11 테러공격 소식을 접했습니다.

버크먼씨는 그 날 휴무였습니다. 하지만 그 날 이래 두 달 간 버크먼씨는 무너져 내린 세계무역회관에서 일하면서,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가족들을 지원하는 일을 했습니다. 미국 내 여성 직업소방관은 6천여명에 달합니다. 이는 남성 소방관이 150만명에 이르는 것에 비하면 작은 수에 불과합니다. 그렇지만 파트타임으로 급여 없이 일하는 소방관들도 많으며, 약 4만명의 여성들은 의용소방관으로 일합니다.

브렌다 버크먼씨는 뉴욕시 소방국이 고용하는 여성들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습니다. 버크먼씨는 이민변호사였지만 소방관이 되기 위해 전직한 경우입니다. 여성들이 소방관이 될 수 있게 된 것은 1977년부터입니다. 그 때만 해도 여성들은 상당한 힘을 요구하는 체력검사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버크먼씨는 체력검사가 불공정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소방관들에게 요구되는 기술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습니다. 버크먼씨의 이런 견해에 연방법원도 동의함에 따라 시험내용이 변경됐습니다. 이로써 브렌다 버크먼씨의 소망은 이뤄져 그녀는 1982년 소방국에 입사했습니다.

오늘날 미국 대형도시의 소방관은 대체로 1만1천 명 수준이며, 이 가운데 여성은 약 30명 정도입니다. 소방국은 여성과 소수계가 너무 적은 데 대해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이에 대해 관계자들은 이들의 수를 늘이기 위해 더욱 노력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소방관이 되기 위한 요구조건은 미 전역이 다릅니다. 이 중 모든 지원자들이 해야 하는 것으로는 사다리를 들어올리고 여기에 올라가는 일이 있습니다.

지원자들은 또 무거운 소방호스와 부상당한 사람을 끌 수 있어야 합니다. 요즘은 화재는 줄어든 반면 의료지원 요청이 많습니다. 이에 따라 소방관에게 요구되는 업무도 변했습니다. 또 9/11 테러사태 이후 변한 새로운 요구사항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소방서들에서 전통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소방 일을 하는 여성'이란 이름의 단체는 여성들이 서로에게로 부터 도움을 얻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1980년 테레스 플로렌이란 이름의 오하이오주 소방관이 화재와 긴급구조 분야에서 일하는 여성들에 대한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누구도 이 분야에 몇 명이 있는지, 또 이들이 어디에서 일하는지 등에 대해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테레스 플로렌씨는 약 2백여명의 이름을 확보해 이들에게 편지를 썼는데 이 중 6명이 응답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테레스 플로렌씨와 또다른 소방관인 린다 윌링씨가 함께 여성들의 이름을 추가로 확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소방 일을 하는 여성'이란 단체가 1982년에 설립됐습니다. 3년 뒤 이 단체는 콜로라도주 보울더에서 첫 전국회의를 개최했고 이후 2년마다 회의를 열고 있습니다. 회의에는 미 전역에서 여성 소방관 뿐아니라 남성 소방관들도 참석합니다.

이 단체에 따르면 미국의 첫 여성 소방관은 몰리 윌리엄스씨입니다. 윌리엄스씨는 뉴욕시의 제 11 오세아누스 엔진회사 소속 한 직원의 노예였습니다. 1818년 극심한 눈보라 와중에 몰리 윌리엄스씨는 두텁게 쌓인 눈을 헤치고 로프로 물펌프를 끄는 일을 도왔습니다. 당시 뉴욕주에서 노예제도는 합법적이었습니다.

1820년대에 마리나 베츠라는 이름의 프랑스계 인도인이 펜실베이니아주에서 불을 끄기 위해 바께스를 줄지어 나르는 행렬에 끼었습니다. 이들은 일렬로 늘어서 소방관들에게 물이 담긴 바께스를 전달하는 일을 했습니다. 마리나 베츠씨는 돕지는 않고 구경만 하면 남자들을 보면 그들의 머리 위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릴리 히치코크 코이트라는 한 부유한 여인에 관한 유명한 얘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얘기 내용은 이렇습니다. 릴리 히치코크 코이트 여인은 1850년 어린 아이때 화재에서 구조를 받았습니다. 나중에 그의 나이 열다섯살 때 텔레그라프 힐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릴리는 크니커보커 엔진컴패니 제 5소방서에는 남자들이 많지 않아서 소방펌프를 언덕까지 끌고 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릴리는 이를 거들면서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도와달라고 소리쳤습니다. 소방펌프가 먼저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릴리는 화재가 발생할 때마다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엔진컴패니 제 5소방서는 릴리를 명예직원으로 임명했습니다. 릴리는 평생동안 [넘버 파이브]라고 쓰여진 소방관 금뱃지를 자랑스럽게 달고 다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