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텔레비전 뉴스 앵커의 한 사람인 <ABC> 방송의 피터 제닝스씨가 7일 밤 폐암으로 타계했습니다.

제닝스씨는 지난 1964년 <ABC> 텔레비전에 입사한 이래 40여년 간 기자, 해외 특파원, 그리고 저녁 뉴스를 전하는 앵커로 활동하면서, 역사의 주요 고비마다 현장을 지키면서 미국인들과 호흡을 같이 해 왔습니다.

제닝스씨가 방송인으로서 한 역할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는 언론에 무엇을 남겼는지 등에 대해 알아봅니다.

문: 피터 제닝스씨에 대해 사람들은 지난  22년 간 저녁 뉴스 앵커로 활동하면서 차분한 진행이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방송인 제닝스씨에 대해 좀더 설명해 주십시요.

답: 제닝스씨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방송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캐나다 국영 텔레비전 방송의 뉴스 책임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방송에 관심을 갖게 돼 9살 때 캐나다의 한 어린이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제닝스씨는 26살 때인 1964년 미국으로 이주해  <ABC> 방송 기자로 일하면서 잠시 앵커를 거쳐, 베이루트와 런던, 로마 등지에서 특파원으로 일한 뒤 1983년부터 폐암 발병을 공식 발표한 지난 4월까지 이 방송의 저녁 뉴스 프로인 "월드 뉴스 투나잇"의 앵커로 일했습니다.

그러니까 그의 방송경력은 무려 58년에 이릅니다. <NBC>방송의 저녁뉴스 앵커로 오랜 친구이자 경쟁자였던 톰 브로커씨는 제닝스씨에 대해 "타고 난 앵커"라고 회고했습니다.

문: 이처럼 오랜 제닝스씨의 언론 경력에서 특히 주목을 끄는 보도들은 어떤 것들인가요.

답:  제닝스씨는 미국 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있을 때면 어김없이 현장에 있었습니다. 

1960년대 미국 남부의 민권운동, 1960년대의 베트남 전쟁, 70년대와 80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철폐운동, 1990년의 베를린 장벽 붕괴 등이 그것입니다.

그는 텔레비전방송으로는 처음으로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의장을 인터뷰했고, 또 1972년 뮌헨올림픽 당시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이 이스라엘 선수들을 살해하고 인질로 삼는 사건이 터졌을 때는 인질극이 벌어지는 선수촌에 숨어들어 생생한 현장을 전달했습니다.

그가 속한 <ABC> 텔레비전은 이 보도로 방송계에 확고한 위상을 굳혔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방송보도와 관련한 상이란 상은 거의 다 수상했습니다.

문: 미국인들에게 제닝스씨는 어떤 방송인으로 기억되고 있습니까?

답: 미국의 신문과 방송들은 제닝스씨의 사망 소식을 많은 지면과 시간을 할애해 보도하면서 그에 대해 "품위있고 냉정하며, 균형감을 갖춘 방송계의 슈퍼스타"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가 9/11 테러사태 직후 60시간을 쉬지 않고 앵커 마이크를 놓지 않은 일은 유명한 일화로 방송에 대한 그의 열정을 엿보게 합니다.

그는 또 분쟁지역을 찾아 방송한 뒤에는 반드시 후속취재를 통해 문제점 등을 살피고 대책을 촉구하는 것도 잊지 않은 방송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닝스씨는 특히  평소 "동전에는 양면이 있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고 방송을 한다"는 말을 하면서 보도의 균형감을 강조했습니다.

제닝스씨의 학력은 고등학교 중퇴이니 그야말로 보잘 것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그 자신의 표현대로 "세계와 세계의 문화, 그리고 세계인을 공부"해 경쟁이 치열한 방송의 세계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문: 저녁뉴스 앵커로 일하던 지난 20여년 간 제닝스씨는 수퍼스타 연예인처럼 미국민들로부터 엄청난 인기를 누렸지요. 어느 정도였습니까.

답: 제닝스씨의 전성기였던 1992년~1993년 대 그의 뉴스는 매일밤 1천4백만명의 미국인들이 지켜봤습니다.  최근들어 시청률이 많이 떨어졌다고 해도 3대 공중파 텔레비전의 시청자 수는 매일밤 2천5백만명을 넘었습니다.

그런 만큼 인기와 명예와 상응하는 부도 주어져서 제닝스씨의 경우 지난 몇 년 간 연봉이 평균 1천만달러, 한국 돈으로 1백억원에 달했습니다.

문: 그의 방송에 대해 비판론도 없지 않았을 텐데요.

답: 당연히 있었습니다. 그에 대해 보수주의자들은 진보주의 관점을 갖고 보수적 주장들에 대해 비판적이라고 공격했습니다. 또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인사들은 그가 팔레스타인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에서 아랍사태를 보도한다며 줄곧 비판을 가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 개표 당시 앨 고어 민주당 후보가 플로리다주에서 승리한 것으로 보도하는 실수를 저지른 바 있습니다.

이와 함께 일부에서는 캐나다인으로서 지난 2003년에야 비로소 미국시민권자가 된 그에 대해,미국의 역사와 문화적 배경에 정통하지 않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 이들도 있었습니다.

문: 제닝스씨의 사망이 미국 방송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까.

답: 미국 3대 공중파 텔레비전의 저녁뉴스는 지난 60년 대 이래 제닝스씨의 <ABC >, 톰 브로커씨의 <NBC>, 그리고 댄 래더씨의 <CBS> 가 이른바 `트로이카 체제'로 지배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들 모두가 지난 연말과 올 초 사이에  은퇴한데다,  24시간 뉴스만 전달하는 케이블 텔레비전 방송이 다수 생겨나면서 이제 `앵커 전성시대'는 막을 내렸다는 분석들이 많습니다. 텔레비전 뉴스의 또 한 세대가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