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전망대, 이번에는, 다음달 9월 20일  우크라이나 [우주관제센타]에서 열리는 [외계 메시지 송출식]에 참석해, 자기 가족의 소망을 우주에 뛰어보낼 예정인, 탈북자출신 세모녀에 관해 서울에 있는 [강혁]탈북자통신원이 전해드립니다.

서울의 탈북자통신원 강혁입니다. 오늘은 우주에 소생의 희망을 띄워 보내는 탈북 세 모녀의 소식을 전하려고 합니다. 남조선 연합뉴스와 조선일보는 지난 31일 병마에 시달려온 탈북자 양신옥 씨와 양씨의 두 딸이 내달 20일경, 우크라이나 ‘우주관제센터’에서 열리는 “외계 메시지 송출식”에 참가하게 된다고 밝혔습니다.

2001년 북한을 탈출해 현재 부천에 거주하고 있는 양신옥씨(36살)와 양씨의 두 딸 명지(12살)ㆍ은지(10)양은 북에서 생활할 때부터 병마에 시달려 온 사람들입니다. 이들 모녀가 하루빨리 병마에서 벗어나 건강한 생활을 하고 싶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우주로 날려 보낸다는 소식이 남한 언론에 소개된 것입니다.

먼저 결핵과 ‘원발성항인지질항체증후군’을 앓고 있는 두 딸의 현재 상태와 언론에 공개된 경위를 들어보았습니다.

 “겉보기는 환자라고 안 느껴요. 사람들이...지금 당장 죽는병도 아니고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는 것도 아니고... 아이 상태는 점점 악화되고 있어요.  이번에 불시로 악화 된게 아니고 희귀병 단체 여울돌협회라구... 작년에 TV 나간 다음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 보였어요. 여울돌 협회가 희귀난치병 협회가 1년 넘었어요. 전화도 하고 메일도 보내고 격려도 해주고 찾아오기도 하고 그러다가 이번에 하나사랑 사무국장에 연락 한 것 같아요.”  

작년 이맘 때 ‘원발성항지질항체증후군’을 앓고 있는 양씨의 막내 딸 은지양이 언론에 소개된 바 있습니다. 당신 언론들에서는 국내에 이 병과 유사한 사례가 없고, 정확한 치료법도 밝혀져 있지 않아 영양제와 면역강화 주사를 맞는 것 외에 다른 치료법이 없는 안타까운 사연을 전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호소한 바 있습니다. 그때부터 지속적으로 연계되어온 한국의 대학생 봉사단체인 “여울돌”협회의 노력에 의해 다시 한 번 세인들의 관심이 모아진 것입니다.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여울돌 협회의 노력에 의해 전국직장인연합 자원봉사단체인 ‘하나사랑회’를 통해 알려진 뒤 모바일 게임업체인 게임빌이 1년간 치료 비용을 후원하기로 하고 다음 달에 있을 ‘외계 메시지 송출식’에 이들을 초대했던 것입니다.

한편 이번 양씨모녀의 외부 메시지 송출식을 주선한 모바일 게임업체 (주)게임빌 측은 세 모녀가 다음 달 우크라이나 우주관제센터에서 열리는 ‘외계 메시지 송출식’에 참석해 우주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게 되어 있지만 본인들의 병 상태 때문에 심히 우려하고 있었습니다. 이들 모녀가 겪는 아픔이 어떤 것인지 양씨를 통해 들어보았습니다.

“희귀병이라는 건데요, 북한에서 백혈병 진단을 받았거든요. 한국에서는 아직 그 병에 대해서 어떻다고 딱히 이야기를 못 내려요. 진단을 내린 게 일차성 항질성 중후군 진단내렸거든요, 그것이 지금 1차인데 2차 넘어가면 안 좋다고 하더라구요”

둘째 딸 은지양의 경우는 북에서 백혈병 진단을 받았으나 한국에 와서 정밀진단을 받은 결과 ‘원발성항인지질항체증후군’이라는 특이병 진단을 받았다고 합니다. 맏딸 명지의 경우는 늑막 때문에 약 10센티의 폐를 잘라내야 했다는 양씨, 본인도 척추결핵을 앓고 있어 걷기도 힘든 상태임을 안타깝게 호소했습니다.

“늑골 결핵이라고 했는데 한국에 오니까 폐결핵이 왔더라구요. 갈비 결핵이 있잖아요. 갈비 잘라내야 하는데 1cm 잘라야 하더라구요. 저도 북한에서 척추결핵 수술받았거든요. 그래서 오래 앉아도 못 있고 서도 못 있고 그저 아이들 밥이나 해줘야 편한 상태고 조금 기대 있으면 꼼짝 못하고 힘들고 더 아프죠.”

이어 양씨는 2001년 두 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남한 행을 결심했었던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2002년도 5월 달에 우리 작은 애가 백혈병 진단을 받고  잘 먹이라고 하는 거예요. 애들 둘 다 잘 먹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북한에 무슨 돈이 있습니까? 애가 백혈병으로 입원해 있으며 돈을 다 썼는데 결국 우리 은지한테 잘 먹이라는 말은 가망이 없다는 말이나 같아요, 이북에서는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결심한 것이 이렇게 앉아 가만히 죽지말자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2002년도 1월 달에  눈이 엄청 많이 왔어요. 허리 치는 눈이 왔는데 저는 빠져서 맨발로 걸었는데 허리 아파서 걷지 못 했어요. 그때 울며 걸었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걸은것은 이 길만이 자식을 살릴 수 있는 길이니깐 건너 걸었죠.“

“명지도 결핵을 심하게 앓고 있어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고 기운을 못 차릴 정도”라며 눈물을 머금은 양씨, 그는 “은지를 돌보느라 명지는

제대로 챙겨 주지도 못해 속상하다”고 이야기 하면서 이번 우크라이나 우주관제센터의 방문 배경을 설명합니다.

“우리 은지는 사실 먼 길을 힘들어 하거 든요, 솔직히 제가 언제 애들을 데리고 관광 가겠어요, 그런데 은지보도 힘들어도 가겠는가고 했더니 가겠다고 해요. 속상하죠, 병원에 가면은 그저 잘 먹이라는 말밖에는 없고요, 나는 보면요 알 같은 게 짚이는 게 알리는데 남들이 보기에는 환자처럼 안 보는 거예요.

차라리 백혈병이면 백혈병이라고 말이라도 해주면 약이라도 가지고 갔으면 좋겠는데 이거는 그저 사람이 시한탄을 안고 사는 심정이니까, 애가 피가 터질때면은 또 놀라요. 저는 각오는 했거든요, 너는 병이 안 좋다 각오는 하고 운명에 맡기고 산다고 하지만은, 저는 교회 다니니깐 하나님께 맡기고 산다고 하지만은 순간순간 부딪 힐 때마다 그 심정을 솔직히 다 말 못해요. 그때마다 사방에 막 전화해요, 너무도 겁이 나가지고 ...이번에 가는 목적은 애? ?얼마 살지도 못하겠는데 힘들어도 그런 기회를 마련해 주고 싶어서 가는 겁니다”

현재 남한정부로부터 받는 보조금 90만원으로 생계를 유지해 가고 있다는 양씨에게 목숨을 걸었던 탈북이 혹시 후회되지 않는 가고 물어보았습니다. 

“후회는 안 해요, 우리 애들이 북한에 있었다면 언제 이런

생활을 누려보다가 죽겠어요. 아니에요? 저는 우리 은지가 옷을 어머니 해 주세요, 하면은 해주고, 먹을 것 뭐 해 주세요 하면은 해줘요, 그 애한테 후회남기지 않기 위해서요. 만약 우리 애들을 이북에 두었다면 언제 이런 생활을 누려볼 수 있었겠어요, 솔직히 애들이 이북에 있다면 언제 세상을 누려볼 수 있겠어요. 솔직히 꿈도 못 꾸잖아요.”

메아리처럼 허공중에 날려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일지라도 주변 사람들의 고마운 마음에 떠 받들려 우크라이나로 떠나는 양씨 모녀의 행복을 빌며 서울에서 보내드리는 탈북자 통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