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영국과 전재을 시작한 것은 영국이 계속 프랑스와 교역을 하는 미국 선박을 나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프랑스는 영국의 적이었습니다.

영국에서 정부가 개편된 후, 미국에 대한 정책도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에 따른 후속조치가 너무 늦어져 미국은 전쟁을 선포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미국 해군은 임전 태세가 갖추어지지 않았었습니다.  진짜로 전쟁을 할만한 전함은 겨우 한두척에 불과했고  함포를 장치한 선박수도 많지 않았습니다. 미국은 전쟁에서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영국 해군을 이긴다는 희망을 가질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미국의 전략은 영국의 통치령인 캐나다를 점령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국경을 지키는 영국군은 2,500명이었습니다.  미국의 장군들은 이는 쉽게 이길수 있는 상대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었습니다.

미국의 윌리암 헐(William Hull) 장군은 2천명의 병력을 이끌고 캐나다 국경을 넘어섰습니다.  이에 대비하던 영국군은 미군을 격퇴했습니다. 영국군은 워낙 잘싸워 헐 장군은 결국 디트로이트(Detroit)에서항복하고 말았습니다. 다음으로 미군은 온타리오(Lake Ontario)호에 접한 뉴욕(New York)주의 한 기지로부터 나이아가라 요새(Fort Niagara)를 공격했습니다.  소수의 미국군이 나이아가라 강을 건너 영국군을 공격했습니다.  뉴욕의 주 병력은 강을 건너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영국군이 공격해오는 미군에게 총을 쏘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었습니다.

제 3의 시도는 헨리 디어본(Henry Dearborn) 장군이 지휘했습니다.  그는 플랫즈버그(Plattsburgh)와 뉴욕에서 온 주 병력을 이끌고 캐나다 국경으로 행했습니다. 디어본은 국경을 건너 몬트리얼(Montreal)을 공격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주 병력은 국경을 건너기 거부했습니다.  디어본 장군은 아무것도 할수 없었고 격국 플랫즈버그로 퇴각했습니다.

이번 전쟁에서는 영국군이 이겼습니다. 이들은 북부의 미시간에 있는 미군 기지를 점령했습니다. 영국군 편에서 싸웠던 인디언들도 오늘날의 시카고에 있는 기지를 점령했습니다.

미국군은 어려움 없이 캐나다로 행군하기는 커녕 오하이오주로부터 영국군을 물리치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잠시동안 이기는 했지만 미국 해군은 육군보다는 약간  나은 전황을 보여주었습니다. 전쟁이 시작된지 불과 두달만에 미국 전함 컨스티튜션(Constitution)호는 영국 군함 한척의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여러달후 또 다른 미국 함정 와스프(Wasp)는 영국 군함 프롤릭(Frolic)을 나포했습니다.  이어 합중국(United States)이라는 이름을 가진 프리기트함은 영국의 가장 유명한 전함중 하나인 마케도니안(Macedonian)  과 싸워 이겼습니다. 마케도니안은 바다에서 패한후 미국 해안으로 끌려왔습니다. 바다에서는 또 다른 승리가 있었습니다. 전쟁 6개월째 미국 해군은 6척의 영국 선박을 나포하고 미국 선박은 한척만 잃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자 미국의 민간 선박들도 무장을 갖추었습니다.  이들 선박도 영국 해군을 상대하는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300척 이상의 영국 상선들을 나포했습니다.

이같은 성공을 거두자 영국은 더 많은 전함을 미국과의 전쟁에 투입했습니다. 전쟁 발발 1년후인 1813년 중반, 영국 해군은 미국 해안을 완전 장악했습니다. 뉴잉글랜드 남쪽에서는 단 한척의 미국 선박도 항구를 드나들수 없었습니다.

육지의 서부에서는 군사적 상황이 개선되고 있었습니다. 인디아나 테리토리의 윌리암 헨리 해리슨(William Henry Harrison) 지사는 영국군으로부터 디트로이트를 탈환하기 위해 대규모 군대를 조직했습니다.  동시에 올리버 페리(Oliver Perry) 해군 대령은 에어리(Lake Erie) 호에서 5척의 전함을 건조했습니다. 이들 5척과 그가 이미 갖고 있던 4척의 함정은 영국해군을 맞아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페리의 승리와 해리슨의 대 병력은 영국군을 디트로이트와 캐나다의 몰든(Malden) 기지로부터 물러나게했습니다. 해리슨 부대는 적을 계속 추격했습니다. 이들은 테임스 전투에서 영국군을 괴멸시켰습니다. 이 전투에서 영국군에 합세해 싸운 유명한 인디언 추장 테쿰세(Tecumseh) 가 죽었습니다.

미국군은 다시 한번 온타리오(Lake Ontario)호를 장악하고 나이아가라 강을 건너 캐나다를 공격하려는 작전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성취되지 못했습니다.

1813년말 영국군은 강을 건너 나이아가라 기지를 점령했습니다. 이들은 가까운 거리에 있는 버팔로(Buffalo)시를 불태웠습니다.  1814년 4월,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몰락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은 끝났습니다. 이렇게 되자 영국은 유럽의 병력을 미국과의 전쟁에  투입할수 있게 됐습니다.

만 4천명의 병력이 캐나다로 파견됐습니다. 그보다 적은 수의 병력은 미국 해안을 항해하는 영국 선박에 배치됐습니다. 또 다른 영국군 병력이 뉴 오를리언즈(New Orleans)를 공격하기 위해 자마이카(Jamaica)로 배치됐습니다.  영국은 만 천명의 병력을 캐나다로부터 뉴욕으로 진군시킬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에 앞서 해안선에 있던 영국 함정의 병사들은 체사피크 (Chesapeake) 만을 공격하고 워싱턴(Washington)과 발티모어(Baltimore)를 위협했습니다.

약 4천명의 영국군이 워싱턴 남동쪽 체사피크 해안에 상륙했습니다.  이들은 빠른 속도로 수도로 향했습니다. 미국의 윌리암 윈더 (William Winder) 장군은 영국군의 두배가 되는 병력으로 이들을 맞았습니다. 윈더는 유능한 군인이 못됐습니다. 그의 병사들도 영국군을 잘막아내지 못했습니다. 양국군은 워싱턴에서 약 10 km 떨어진 블라덴스버그(Bladensburg) 에서 부딛쳤습니다.  영국군이 첫 전방 방어선을 공격했습니다.  미국군은 처음에는 이를 막아냈습니다. 그러나 곧 영국군은 미국 저지선을 돌파했습니다.  저지선이 무너지자 미국군은 모두 도망했습니다.

윈더 장군은 병사들에게 워싱턴으로 후퇴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일단의 미국 해군 병사들은 야포를 갖고, 퇴각 명령을 거부했습니다. 죠수아 바니(Joshua Barney) 의 지휘하에 약 400명의 미국군은 끝까지 싸우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4천명의 영국과의 대결은 오래 갈수가 없었습니다.

바니는 약 30분 동안을 버텼으나, 영국군은 그의 배후를 돌아 야포를 장악했습니다. 이 전투에서 바니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영국군은 바니의 용맹을 높이 평가해 블란덴스버그(Bladensburg)에 있는 자기들의 병원으로 옮겨 그를 치료했습니다. 바니는 영국군이 자신을 형제처럼 보살폈다고 말했습니다.

일단 바니의 해군을 물리친 영국군은 그곳에서 워싱턴에 들어올때까지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았습니다.  영국군은 국회의사당에서 0.5 km 떨어진 곳에서 밤을 지샜습니다. 영국군 사령관 로버트 로쓰(Robert Ross) 장군과  죠지 코크번(George Cockburn) 제독은  일단의 병사들을 거느리고 국회의사당으로 가 건물을 불태웠습니다.  두 사령관은 백악관을 불태우기 위해 그곳으로 갔습니다.

대통령 관저를 불태우기전 코크번은 매디슨 대통령의 모자 하나와 부인 돌리 매디슨의 의자 하나를 차지했습니다.  코크번 제독은 대통령의 식탁에 저녁 준비가 됐있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장난끼가 발동해 와인을 한잔 따른 다음 대통령의 건강을 위해 건배를 들었습니다.  

매디슨 대통령은 미리 백악관에서 대피했습니다. 그는 포토맥 강을 건너 버지니아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매디슨은 이튿날 피난 길에서 부인과 합류했습니다.  이들은 워싱턴에서 약 25km 떨어진 곳에서 다른 대피자들과 함께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대통령은 3일후 다시 수도로 돌아왔습니다.  영국군은 대부분의 관청에 불을 지른 다음 퇴각했습니다. 다음으로 영국 해안 부대는 발티모어를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방어가 튼튼해 공격에 실패했습니다. 발티모어 항은 맥헨리 (Fort McHenry)기지에 의해 방어되고 있었습니다. 영국 전함들은 기지 가까이 접근해 함포로 진지를 파괴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함포 사격은 거의 피해를 주지 못했습니다.

영국군이 25시간이나 포를 쏘아댈때 영국 배에는 프란시스 스캇트 키(Francis Scott Key)라는 젊은 민간인이 타고 있었습니다. 스카트 키와 그외 몇명의 미국인들은 매디슨 대통령의 멧세지를 갖고 영국 배에 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멧세지는 영국군이 억류하고 있는 미국인 의사를 석방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젊은 미국인은 뱀새도록 영국군이 퍼붓는 야포와 로케트가 기지 위에서 작렬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날이 밝아지자 그가 맨처음 본것은 아직도 휘날리고 있는 미국 기였습니다.  그는 뒷 주머니에 있는 낡은 편지를 꺼내 글을 썼습니다. 그 글의 제목은 별이 빛나는 기(The Star-Spangled Banner)습니다.  스카트가 쓴 글은  미국 국가의 가사가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