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월북했던 주한미군 탈영병 찰스 젠킨스씨가 가족과 함께 오는 14일 미국을 방문, 병상에 있는 노모와 상봉할 것이라고 10일 밝혔습니다. 남북 분단과 대치 그리고 일본에 대한 북한의 치열한 정보 공작 등 거의 반세기 전의 한 시대를 상징하는 젠킨스씨의 인생 역정을 재조명하는 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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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일본에 살고 있는 올해 65세의 젠킨스씨가 고국 땅을 밟는 것은 지난 1965년 1월 부대를 탈영한 후 처음입니다.

노스캐롤라이나주 리치스퀘어출신인 젠킨스씨는 10일 발표한 성명에서 “어머니를 다시 보는 것은 내가 오랫동안 간직해온 간절한 소망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미국에 약 1주일 동안 머물면서 누이와 친척들을 만나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미군  사상 최장기 탈영병으로 기록된 육군 중사출신의  젠킨스씨는 지난 해 주일 미군 군사재판에서 불명예 재대 판결을 받고  일본에 있는 미군 구치소에서 25일을 복역했습니다.

젠킨스씨는 지난 1978년 북한 간첩에 납치돼 북송됐다가 2002년 일본에 귀환한 46세의  피랍 일본인 아내, 소가 히토미씨및 두딸과 작년 7월 일본에서 합류했습니다. 젠킨스씨와 아내 소가씨는 북한에서 만나 결혼했고 두 딸을 낳았습니다.  

노약해진 젠킨스씨는 미국에 영주 귀국할 생각은 없다고 얼마 전 말했지만 가족과 함께 노스캐롤라이나의 고향 리치스퀘어를 방문하고 싶다고 말해왔습니다.

젠킨스씨는 금년초 가진 기자회견에서 양노원에 살고 있는 91세의 노모를 가능한 빨리 만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도쿄에 있는 주일 미 대사관은 지난 달 젠킨스씨에게 여권을 발급했습니다.

젠킨스씨는 도꾜에서 열린 군사재판중에 비무장 지대 부근에서 근무할 때 당시 한창이던 베트남전쟁에 전투병으로 차출되는 것이 두려워 탈영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젠킨스씨는 북한에 살면서 인민군 생도들에게 영어를 가르칠 것을 강요받았고 최소한 한 편의 영화에 사악한 미국인으로 출연하는 등 공산 정권의 선전도구로 이용됐습니다.

젠킨스씨의 파란많은 인생은, 아내 소가씨가 북한 간첩 교육을 위해 납치된 최소한 열두 명의 일본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일본에서 전국적인 화제가 됐습니다.

소가씨가 1978년 검은 자루에 넣어져 쾌속선에 실려 북송됐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19세였으며 납치되던 날 밤에 실종된 그의 어머니는 아직도 행방불명 상태입니다.

젠킨스 부부와 두 딸 그리고 다른 네 명의 납북 일본인들은 각각 2003년과 2004년 마침내 일본에 귀환했습니다. 이들이 일본에 귀국할 수 있었던 것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북한측에 인도적인 측면에서 개인적으로 호소하는 등  끈질기게 펼친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일본의 대북한 외교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젠킨스씨는 일본에 도착한 후 미군 당국에 자수했습니다.

젠킨스씨는 현재 도쿄에서 서북쪽으로 약 3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외딴섬,  사도에서 아내와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