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남부 지중해 지역 안달루시아는 서기 700년대 초부터 거의 8세기 동안 회교도들의 지배하에 있었습니다. 회교도 지배하에 있던 안달루시아에서는 상당히 오랜 기간에 걸쳐 세파르딤 유대인들과 지중해 기독교인들 그리고 아랍 회교도들의 복합문화가 평화롭게 공존하며 번성했었습니다. 오늘 날의 복합문명 사회가 안달루시아의 다문화 공존 황금기 사회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지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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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포르투갈계 유대인과 지중해 기독교인, 그리고 아랍인들의 전통이 복합된  세 개의 독특한 문화들의 집합은 스페인 이슬람 지역에서 경제와 과학, 문학과 미술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의 생활 속에 숨쉬고 있었습니다.

안달루시아가 이슬람의 지배하에 들어간 것은 서기 711년 부터입니다. 당시 탈리크가 지휘하는 아랍인들과 베르베르 족이 스페인과 서북 아프리카 사이의 지브랄타 해협을 건너 스페인 남서부 이베리아 반도의 대부분을 정복했습니다. 당시 이베리아 반도 지역의 안달루시아에서는 유럽의 다른 지역들과는 대조적으로 개화되고 관용적인 사회였습니다. 조지타운 대학, 오스만 빈 바카르 교수의 말입니다.

안달루시아는 당시 유럽에서 아브라함계 신앙인 회교와 기독교, 유대교 신자들이 평화롭게 함께 살면서 공통의 관습과 문화를 오랫 동안 형성했던 아마도 유일한 지역이었을 것이라고 바카르 교수는 지적합니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다양한 문화들이 혼합 공존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지역을 정복한 아랍계 ‘우마야드’ 왕조가 온건한 형태의 이슬람을 실천했던 결과였습니다. 안달루시아에서는 그로부터 2세기 동안에 문화와 정치발전, 번영과 세력이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당시 안달루시아의 수도인 코르도바의 주택 수는 약 20만 채에 달했고 600 개의 회교사원과 900개의 공중 목욕탕, 50개의 병원들이 있었으며 포장된 거리에는 밤이면 불이 밝혀졌었습니다.

또한 회교도 통치하의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에는 도서관들과 연구기관들이 번창했던 것에 비해 유럽의 다른 곳들은 대부분 문맹지역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당시 안달루시아 사회가 종교적, 문화적 관용 사회의 이상형은 아니었습니다.

이슬람으로의 개종이 장려되는 가운데 때로는 강요됐으며 아랍 문화가 생활의 거의 모든 부분을 압도했었습니다. 저항하는 사람들과 지식인들은 종종 처형되기도 했습니다. 안달루시아는 300년이 지나면서 세비야, 그라나다, 말라가, 코르도바 등 도시를 중심으로 세 개의 작은 나라들로 분열됩니다. 중세 스페인 역사 권위자인 영국인 역사학자 리처드 플레쳐 씨의 말을 들어봅니다.

11세기 안달루시아의 소국들은 작고 취약했었으며 소국들은 주변의 강자들로부터 기민한 외교와 전쟁을 통해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안달루시아의 분열로 이슬람 지배자들의 통치력이 약화되면서 이슬람 통치자들은 점점 억압적으로 바뀌었습니다. 12세기에 이르러서는 안달루시아의 종교적 관용도 사라져 갔습니다. 뉴욕 시립대학, 제인 거버 역사학 교수의 말입니다.

거버 교수는 12세기, 13세기의 안달루시아를 말할 것 같으면 그땐 이미 스페인의 이슬람 지역에서 사는 유대교 신자들은 없었고 사실상 이들은 강제로 개종하거나 탈출해야만 했었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불화가 심화되자 북쪽의 기독교 세력이 13세기 초부터 안달루시아를 공략하기 시작했습니다. 1492년에 페르디난드와 이사벨라, 두 카톨릭 왕들이 마지막 남은 이슬람 지배 지역인 그라나다에 입성합으로써 아랍의 지배는 종식됐습니다.

그리고 그라나다가 함락된 지 3개월 안에 카톨릭교로 개종하지 않은 유대교 신자들은 추방됐고 이슬람교는 금지됐습니다. 그렇지만 아랍어로 알-안달루스라 불리웠던 안달루시아의 황금기 유산은 이 지역에서 농업과 과학, 음악과 시 등 여러 분야의 발전에 오래도록 영향을 끼쳤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슬람 세계는 다른 문화와 교류하고 협력할 때 번성했던 반면 민족적, 종교적 충돌이 있을 때는 이슬람 세계의 창의력이 쇠퇴하는 경향을 나타냈다고 지적합니다. 죠지타운 대학의 오스만 빈 바카르 교수는 이슬람 지배하의 스페인 안달루시아 역사는 오늘 날 회교도들에 중요한 교훈이 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바카르 교수는 친화력이 중요하다면서 과학적 발전을 위해서는 친화력이 있어야만 한다고 강조합니다. 바카르 교수는 또 다른 중요한 것으로 보편주의를 들면서 안달루시아에서 이슬람의 보편적 국면이 강조됐던 점은 오늘 날 회교도들이 본받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합니다.

종파주의 사고방식에 치우치기 보다 보편주의는 과학발전의 유일한 길이라고 보고 있으며 과학의 국제화, 세계화도 마찬가지라고 바카르 교수는 덧붙입니다. 유엔의 최근 인간개발 보고서에 따르면 오늘 날 아랍인들은 과학과 교육, 경제개발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뒤떨어져 있는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오스만 빈 바카르 교수는 어쩌면 많은 회교도들이 자신들의 역사에서 알-안달루스를 자랑스러운 황금기로 회상하는지도 모른다면서 그런 자랑스러운 역사의 교훈을 오늘 날 회교 사회를 위해 잘 활용해야 한다고 촉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