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2년 선거로 앤드류 잭슨은 대통령으로서 두번째 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두번째 임기의 가장 중요한 일은 은행과 맞서 싸우는 일이었습니다.

잭슨은 은행의 힘이 너무 커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의회에 은행 인가를 연장해주지 말도록 촉구했습니다. 또한, 그는 정부의 자금을 합중국 은행에 넣는대신 각 주의 은행에 넣었습니다.

합중국 은행의 총재는 니콜라스 비들(NICHOLAS BIDDLE) 이었습니다. 비들은 은행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여 싸웠습니다. 그는 경제적 충격을 일으키고, 그것을 잭슨 대통령의 책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비들은 개인 대부금을 급작스럽게 거두어드리므로서 이러한 재난을 유도했습니다. 사업체들은 경제적 도움이 없게되어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근로자들은 그들의 직업을 잃게 되었습니다.

잭슨 대통령은 폭거에 경고를 했지만 아무 효과도 없었습니다. 합중국 은행에 맞선 싸움들은 대부분 의회에서 일어났습니다.

은행 지지 세력을 주도한 사람은 켄터키 출신 헨리 클레이(HENRY CLAY)상원의원이었습니다. 클레이는 야당인 공화당의 총재였습니다. 클레이는 의회에서 삼일동안이나 이 안건에 대해 발언을 하면서 은행인가를 갱신하자고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지금 미국은 혁명의 와중에 있습니다. 아직 피흘리는 희생자가 있는 혁명은 아닙니다. 그러나 순수한 우리 공화 정부의 헌장에서 볼때는 전체적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모든 권력이 한사람의 손에서 움직여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잭슨 대통령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클래이는 덧붙여, “만약 의회가 행동하지 않는다면 정부는 실패할 것이며, 우리는 모두 노예처럼 죽어갈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다음 클레이는 상원에게 잭슨이 국가의 헌법과 국가의 법률을 침해한데 대해 규탄하기를 요구했습니다. 상원은 그같은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켰습니다. 하원에서는 잭슨의 입장이 약간 나았습니다. 제임스 포크(JAMES POLK)는 잭슨 대통령의 은행 반대 입장을 대변해 주었습니다.

“합중국 은행은 자신들을 거대하고 무책임하며 정부와 힘 을 겨루는 경쟁자로 만들었습니다. 만약 은행이 이 싸움에서 이긴다면, 아무도 이 나라에서는 은행에 먼저 항복하지 않고는 선거에서 이겨 정부의 요직에 진출한다는 것은 기대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과연 우리가 은행 없는 공화국을 가질 것이냐 공화국 없는 은행을 가질 것이냐 하는것 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업가들은 은행이 필요 이상으로 자금 유통을 줄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됐습니다. 그들은 심각한 경제상황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잭슨 대통령이 아니라 비들이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비들은 경제난에 아무런 책임도 없다고 주장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구제는 의회 단 한곳으로부터 나와야 합니다. 은행이 끔찍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잘못을 고쳐야 할 필요는 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대통령은 은행이 어떻게 돌아가야 할것인지 자기 마음대로 할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잘못입니다.”

비들은 그런다음 아주 심각한 실수를 범했습니다. 그는 펜실베니아 주지사에게 주 의회에서 은행을 지지하는 연설을 해주도록 부탁했습니다. 동시에 그는 펜실바니아 주가 요청한 30만 달러의 융자를 거부 했습니다. 주 지사는 격분했으며 연설에서 은행을 지지하는 대신 날카로운 비판을 가했습니다.

펜실베니아 상원도 주 지사와 의견을 같이 했습니다. 비록 니콜라스 비들이 모든 조치를 다하겠다고 위협했으나 주 상원은 연방의회가 은행 인가를 갱신해주어서는 안된다는 결의문을 통과시켰습니다.

이틀 후, 뉴욕 주 지사는 주 은행들을 지원하기 위해 4백만 달라에서 5백만 달러의 주식을 파는 안을 의회에 제출했습니다. 뉴욕 주 의회는 오히려 더 많은 액수를 팔아도 좋다고 승인했습니다. 이 조치는 주 은행들을 강하게 만들었으며 합중국 은행의 힘을 줄이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니콜라스 비들은 자신이 싸움에서 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사업체들에 더 많은 돈을 빌려주기 시작했고 경제난은 서서히 끝나갔습니다. 은행과의 싸움에서 잭슨의 승리는 확실했습니다. 비들은 많은 의원들의 지지를 잃기 시작했습니다.

하원 의원들 중 제임스 포크는 은행에 관한 네 가지 결의안을 상정했습니다. 첫째는 합중국 은행이 새로운 인가를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둘째는 정부의 자금이 그 은행에 적립되어서는 안된다는 것. 셋째는 정부가 계속적으로 자금을 주 은행에 넣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 넷째는 은행에 대해 그리고 경제난의 이유에 대해 조사를 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네 가지 결의안 모두 통과가 되었습니다. 비들의 한 측근은 은행 관계자들의 심정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날은 우리 공화국의 역사에서 없어져야 할 날입니다. 미국의 대통령은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 국가의 재무를 탈취했습니다. 그리고 국민의 대표들은 그의 행동을 인정했습니다.”

잭슨의 답변은 간단했습니다. “나는 영광스런 승리를 거두었다.”가 전부였습니다.

앤드류 잭슨 대통령의 두번째 임기 동안 중요한 또 다른 사건은 텍사스 주의 상황이었습니다. 1819년 스페인과 체결된 조약에서 미국은 텍사스의 소유권을 포기하는 대신 스페인은 미국에게 플로리다 전 지역을 받기로 했었습니다.

1821년, 멕시코가 스페인에서 독립을 한 후에 미국은 텍사스를 사려고 시도를 했습니다. 멕시코는 팔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앤드류 잭슨 또한 대통령이 되고난 다음 텍사스를 사려고 했지만 멕시코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텍사스는 아주 비옥하고 자원이 풍부한 곳이었지만 비어있는 땅이었습니다. 멕시코는 미국 사람들이 텍사스에 식민지를 건설 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었습니다. 1822년 스테판 오스틴 (STEPHEN AUSTIN) 이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그곳에 식민지를 건설했습니다.

식민지의 각 가족들은 대략 80 헥타르 씩의 대지를 소유할수 있었습니다. 목장을 원하는 가족은 대략 2,000 헥타르 씩의 대지를 분배받았습니다. 텍사스의 거주자들은 거의 공짜로 대지를 사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로마 카톨릭을 믿어야 했고 멕시코 법을 따라야 했습니다.

대부분의 거주자들은 테네시(TENNESSEE)나 미시시피(MISSISSIPPI), 루이지에나 (LOUISIANA)주에서온 사람들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노예를 가지고 있었고 그 노예들을 텍사스로 데리고 왔습니다. 1820년대, 미국인들은 땅 값이 싼 텍사스에 많은 투자를 했습니다.

미국 식민지 지도자인 오스틴과 멕시코 정부와의 사이에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는 추방령을 받았으나 그 명령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몇몇 지지자들과 함께 나코도치스 NACOGDOCHES라고하는 시를 장악했습니다. 그는 텍사스를 독립 시켜 달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곳을 프레도니아(FREDONIA)라고 칭했습니다.

그는 다른 미국인 식민지인들도 멕시코에 대항해서 그와 합류해 줄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식민지인들은 그를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식민지인들 중 몇몇은 멕시코와 힘을 모아 그의 반란을 저지하려 했습니다. 그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 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반란은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멕시코의 지도자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미국인들을 텍사스에 살하게 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인식시켜 주었습니다. 멕시코 정부는 미국과의 국경지역의 상황을 시찰하도록 관리 한명을 파견했습니다. 이 관리는 텍사스의 북쪽을 돌아본 결과 멕시코 사람들이 차츰 줄어들고 미국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어떤 고장에는 멕시코 사람들이 거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멕시코 사람들은 극도로 가난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미국인 거주자들은 멕시코 사람처럼 되고 있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스페인 말을 쓰지도 않고 로마 카톨릭도 아니며 멕시코 전통을 받아들이고 있지도 않다고 이 관리는 말했습니다.

현장을 시찰한 이 관리는 이러한 상황은 멕시코 전체를 혁명의 소용돌이로 몰아갈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군대를 동원해 텍사스를 점령하라고 멕시코 정부에 촉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