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종류의 토론과 격렬한 논쟁, 그리고 타협을 마친 제헌회의 참석 대표들은 이제 일을 거의 마무리 지었습니다. 회의가 시작된지 4개월만이었습니다. 날씨는 더웠습니다. 감정도 뜨거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상했던 것들이었습니다. 필라델피아에 모인 대표들은 국가의 장래를 결정짓는 중차대한 일을 수행했습니다.

9월초 제헌회의는 다섯명의 대표들로 Committee of Style 즉 형식 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이 위원회가 할일은 제헌회의에서 결정된 모든 사항들을 문서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코네티커트의 윌리암 사무엘 죤슨 대표가 위원장이 됐습니다. 그외 위원은 뉴욕의 알레산더 해밀턴, 펜실바니아의 구베니어 모리스, 매사츄셋즈의 루퍼스 킹, 버지니아의 제임스 매디슨이었습니다. 이들 다섯람중에서 구베니어 모리슨은 미려한 문장가로 알려진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죤슨 위원장은 그에게 헌법을 문장화하도록 요청했습니다.

제헌회의는 23개 헌법 조항을 승인했습니다. 그러나 모리스는 이들 내용을 다시 정리해 7개 항으로 줄였습니다. 첫번째 항은 국회의 권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 조항은 대표를 선출하기 위한 선거구민의 수를 어떻게 계산하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또 상원, 또는 하원 의원에 출마할수 있는 자격, 그리고 의원의 임기가 포함됐습니다.

제 헌법 제 2조는 대통령의 권한에 관한 규정입니다. 이 조항은 대통령 후보의 자격과 선출 방법을 아울러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 3조는 사법부의 기능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상 세 조항은 정부 부서간의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는 체제를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 이유는 입법, 사법, 행정부중 어느 한 부서에게 지나치게 많은 권력이 편중되는 것을 막기위한데 있었습니다.

제 4조는 새로운 중앙 정부 체제에서 각 주가 어떤 권리와 의무를 갖는가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 5조는 헙법 수정을 위한 제도를 마련해주고 있습니다. 제 6조는 헌법이 지상 최고의 법이라는 점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제 7조는 9개 주만 승인하면 헌법은 효력을 발생한다고 규정했습니다. 7개 조항에 덧붙여, 헌법은 서문을 첨부했습니다. 그리고 대표들은 출신 주와 자신의 서명을 각각 기록했습니다.

Committee of Style 은 모든주의 이름을 다 기록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왜냐하면 로드 아일랜드 같은 주는 대표조차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모든 주가 이 헌법을 승인할 것인지 장담할수 있는 대표는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구베니어 모리스는 서문을 “우리 아메리카 합중국 국민은” 이라고 시작했습니다.

이 간단한 한 문장은 위원회의 문제를 해소시켰습니다. 이것은 국가의 권력은 주가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을 명확히 한것이었습니다. 서문은 “보다 완전한 연방, 사법제도, 가정의 평화 유지, 공동의 방위, 모든 사람의 복지를 위한 노력, 그리고 우리 자신과 후손을 위한 자유의 축복을 계승하기 위해 헌법을 만든다”고 헌법 제정의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9월 17일, 대표들은 마지막으로 자리를 같이 했습니다. 이제 모든 일이 끝난것 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매사츄셋즈의 나타니엘 고람 대표가 일어서서 발언을 시작했습니다.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나는 일부 수정을 원합니다. 우리는 주민 4만명당 하원 의원 한명씩을 뽑기로 동의했습니다. 나는 그 수를 3만명으로 했으면 합니다. ”

고람의 발언은 극심한 논쟁을 불러올 소지가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죠지 워싱턴이 일어섰습니다. 대표들은 놀랬습니다. 4개월 동안의 회의 내내 죠지 워싱턴은 거의 발언을 한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수정 제의를 지지하는 발언을 해야만 하겠습니다. 그것이 이 나라 모든 국민의 소리를 좀더 잘 대변할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워싱턴 장군의 영향력은 대단했습니다. 대표들은 워싱턴의 발언에 영향을 받아 수정 제안에 전원 동의했습니다. 이제 이 문서에 서명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또한 대표들이 헌법을 반대하는 발언을 할수 있는 기회도 이번이 마지막이었습니다. 다수은 대표들은 헌법의 일부 조항들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반대 발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나라를 위해 헌법에 서명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명은 여전히 헌법에 자기들의 이름을 기재하는것을 거부했습니다.

버지니아의 에드먼드 랜돌프는 헌법이 승인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며 서명을 거부했습니다. 매사츄셋즈의 엘드리쥐 게리는 헌법이 승인될 것으로 보이나, 그렇게 되면 내전이 벌어질 것 같다면서 서명을 거부했습니다. 버지니아의 죠지 메이슨도 서명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부 이유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는 대신 자신의 생각을 글로 썼습니다. 그의 주된 거부 이유는 헌법이 국민의 권리를 직접 보장해주지 못한다는데 있었습니다. 이 문제는 나중에 다시 논쟁 거리로 등장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메이슨의 지적에 동의했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첫번째 10개 수정 조항입니다. 이것이 바로 권리장전, 즉 The Bill Of Right입니다.

랜돌프, 게리, 매디슨 세사람은 필라델피아 제헌 회의장에 있으면서도 헌법에 서명을 하지 않은 대표들입니다. 헌법에 찬성을 하지 않고 서명도 하지 않은 또 다른 네명의 대표들은 회의가 끝나기전 고향으로 돌아갔었습니다. 이들은 메릴랜드주의 루터 마틴, 죤 머써 대표, 뉴욕의 로버트 예잇즈, 죤 랜싱 대표입니다. 헌법을 지지했던 9명도 일찍 돌아가 서명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제헌 회의 대표들은 헌법이 국가 최고의 법으로 승인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수가 없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건국 선조로 추앙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점도 확신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대표들은 나중에, 이 헌법은 자신들이 할수 있는 최상의 것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그것이 없었으면 새로운 이 나라는 붕괴될 것이 분명했던 것입니다. 아메리카 합중국은 성공할 가능성이 보이기도 전에 사라질수도 있었습니다.

대표들이 서명을 하러 앞의 책상으로 닥아가자 벤자민 후랭클린은 의장석 뒤에 있는 그림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는 주위에 서있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그는 저녁해와 다르게 보이는 아침해를 그리는 것은 어렵다며 이렇게 계속했습니다.

“회의가 열린 지난 4개월 동안, 나는 종종 저 그림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림속의 해가 아침해인지 저녁해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을 알수 있게 됐습니다. 나는 저 해가 아침해, 새로운 날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고 기쁜 마음을 금할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