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6년은 미국 정치에 큰 변화가 인해였습니다. 이해에 신생국 미국은 세번째 대통령 선거를 치렀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후보자들이 경쟁을 벌였습니다. 처음 두 차례 선거에서는 죠지 워싱턴이 경쟁 후보 없이 당선됐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두개의 정당이 경합을 벌이게 됐습니다.

연방당은 전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이 이끌었습니다. 공화당은 전 국무장관 토마스 제퍼슨이 수석이었습니다.

대부분 미국인들은 죤 아담스가 승리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전국에 걸쳐 잘 알려진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영국의 통치로부터 미국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유럽에서 외교관으로 활약했으며, 영국 주재 초대 미국 대사를 지냈습니다. 그는 워싱턴에 의해 부통령으로 발탁돼 2차 임기동안 봉직했습니다.

아담스는 연방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연방주의자들과 달리 그는 해밀턴을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해밀턴은 그를 반대하는 운동을 폈습니다. 해밀턴은 자기가 내세운 인물, 즉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토마스 핑클리를 지지했습니다.

드디어 투표가 실시됐습니다. 연방당은 해밀턴이 지지한 후보가 저조한 표를 얻은데 놀랐습니다. 선거인단중 71명이 죤 아담스를 지지했습니다. 69명은 공화당의 토마스 제퍼슨을 지지했습니다. 해밀턴이 추천한 토마스 핑클리는 60표를 얻는데 그쳤습니다. 당시 제도로는 가장 많은 표를 얻은 후보가 대통령이 되도록 돼있었습니다. 그리고 차점자가 부통령이 됐습니다. 따라서 아담스가 대통령이 되고 제퍼슨이 부통령이 되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제퍼슨은 약 2년전 공직에서 물러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부통령직을 수락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는 친구인 제임스 매디슨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나는 아담스 대통령 아래서 기꺼이 봉사하겠다. 나는 아담스가 1800년 대통령 선거에서 알렉산더 해밀턴을 제압할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 생각한다.”

제퍼슨은 아담스에게 자신과의 오랜 우정을 높이 평가하며 그것이 오래 지속되기를 희망한다고 썼습니다. 공화당 신문들은 처음으로 연방당인 아담스에 호의적인 글들을 게재했습니다.

아담스와 제퍼슨이 1797년 장관으로 취임했을때, 일부 연방주의자들은 이들의 정치적 힘은 사라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알렉산더 해밀턴은 뉴욕의 법률 사무소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직도 의회의 연방당 최고위 지도자들을 장악할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해밀턴은 더 나아가 죤 아담스 대통령도 좌우할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새 대통령은 해밀턴의 계획이 쉽게 풀리도록 했습니다. 아담스는 워싱턴 대통령때의 각료들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워싱턴 대통령의 최고위 관리 세명은 이제 아담스 대통령 행정부의 장관으로 일하게 됐습니다. 앞서 워싱턴은 해밀턴의 요청에 따라 이들을 기용했었습니다. 이들은 언제나 해밀턴이 하라는대로 행동했습니다.

역사가들은 알렉산더 해밀턴을 좋아하거나 신뢰하지 않던 죤 아담스가 왜 이들 세명의 관리들을 기용했는지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었다면 이해가 될수도 있었으나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그중 한사람은 국무장관이면서도 외교 문제에는 아는것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두번째 인물인 재무장관도 재정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세번째 인물은 전쟁 장관이었습니다. 그는 국방이나 군사 문제에는 완전 문외한이었습니다. 아담스는 아마 당의 결속을 위해 이들을 기용했을수 있습니다. 아니면 다른 적당한 인물이 없어서 그랬을수도 있습니다.

이유야 어쨋던 그같은 결정은 정치적으로 큰 댓가를 치렀습니다. 왜냐하면 이들 세 사람은 아담스 대통령에 반대하는 길을 갔기 때문입니다. 아담스 대통령은 각료들에게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렸습니다. 그말을 들은 다음 각료들은 해밀턴에게 가서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같은 비밀스런 행동은 끝내 연방당의 몰락을 가져오는 요인의 일부가 됐습니다. 이로써 죤 아담스 대통령 행정부는 미국 역사상 가장 흥미롭고 중요한 시기를 형성했던 것입니다.

앞서서도 말한것 처럼 아담스는 훌륭한 인물이었고 진정한 애국자였습니다. 그는 1735년 매사츄세스주 브레인트리(Braintree)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농사를 짓기 원했으나 부모들은 그를 하바드 칼레지로 보내 목사가 되도록 했습니다. 그는 목사 생활을 싫어해 변호사가 됐습니다. 미국 혁명이 발생하기전 아담스는 영국 통치의 부당함을 알리는 글들을 썼습니다. 그는 제 1차 대륙회의의 대표가 됐습니다. 그는 의회에서 죠지 워싱턴을 아메리카 혁명군의 총사령관으로 임명하자고 촉구했습니다. 그는 미국 해군의 창설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미국의 독립을 선언하기 위한 결의안을 만드는데도 힘을 보탰습니다.

그는 독립 전쟁 기간중 대부분을 유럽에서 보냈습니다. 그는 네델란드가 미국의 독립을 승인하도록 만드는데 기여했습니다. 그는 네델란드 정부로부터 차관을 얻어냈으며 우호 조약과 통상 조약을 성사시켰습니다. 아담스는 미국군이 영국군을 물리친 다음 두 나라의 평화 조약 체결에도 기여했습니다.

다른 연방당원과 마찬가지로 아담스도 돈과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 미국을 다스려야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일반 대중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민주주의를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한때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보스톤 시에는 네개의 귀족 가문이 있다. 이들은 스페인이나 영국의 귀족과 같은 고귀함을 지니고 있다. 이같은 귀족이 존재한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

그러면서도 아담스는 조국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미국을 자유로운 나라로 만드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용의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담스는 지극히 명석하고 사려깊은 인물이었으며, 생동감있는 글을 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주 냉정하게 행동했으며 말이 없었습니다. 그의 가장 가까운 친구는 아마도 부인 아비게일(Abigail)이었을 것입니다. 그외에는 친구도 별로 없었습니다. 아담스의 개인적인 약점은 대통령직 수행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연방당에 소속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당의 논쟁에는 개입하기 원치 않았습니다. 그는 세계 정치를 위해 필요한 타협도 일체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연방당원들은 그에 반대하는 행동을 했습니다.

이처럼 까다롭고 귀족적인 인물을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토마스 제퍼슨만은 그를 좋아했다는 사실입니다. 아담스가 제시한 모든 정책에 반대를 했던 제퍼슨이 그를 좋아했다는 것은 특이한 현상이었습니다. 어쩌면 제퍼슨은 그의 명석함을 좋아했을수 있습니다. 미국 혁명을 위해 심혈을 기울인 점을 잊지못했던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의 약점과 고자세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한 정직한 인물을 존경했을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제퍼슨 같은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단연코 아담스를 싫어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점을 무기로 이용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무기로 인해 제퍼슨이 기억하고 있는 사실, 즉 아담스는 선한 마음을 갖고 있으며 나라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망각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애중 오랜 세월을 나라를 위해 바쳤고 그것을 국민들은 존중해야 했습니다.

특히 연방당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지지를 얻기위해 아담스의 약점에 호소했습니다. 예를들어 아담스는 워싱턴에 대해 질투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아담스는 워싱턴이 너무 많은 존경을 받고 있는 반면 자신은 존경을 별로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담스는 어떤 문제에 대해 워싱턴의 의중을 알고 있을 경우, 워싱턴과는 다른 해결책을 구상했 습니다. 그러나 제퍼슨과 마찬가지로 워싱턴은 아담스의 명석함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워싱턴은 신생국을 위해 그같은 재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아담스는 1796년에 대통령으로 선출됐습니다. 그러나 그의 임무 수행은 어려웠습니다. 그는 자신의 당, 즉 연방당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은 그를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일반 대중으로부터도 지지를 받지 못했습니다. 대중은 그가 자신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담스는 대통령직이 쉽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한때 이렇게 썼습니다.

“정치하는 사람이란 언제나 깨어진 유리위를 걷는것 같고, 벌겋게 달군 쇠붙이 위를 걷는 것과 같다. 신발을 신지 않고는 그렇게 걷는 일이 쉽지 않다. 그러나 특정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을수 없다. 이 위험한 시대에 우리 나라를 위하여 수행해야할 여러가지 위험한 일들이 존재한다.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한다면 나 혼자서라도 그 일을 하겠다”